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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이상한 계산법(연중 20주 수)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8-23 조회수1,926 추천수15 반대(0) 신고

 

2000, 8,23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20,1-6 (포도원 일꾼과 품삯)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돈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아홉 시쯤에 다시 나가서 장터에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당신들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그러면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니 그들도 일하러 갔다. 주인은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에 다시 나가 보니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기만 하오?' 하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차례로 품삯을 치르시오.' 하고 일렀다.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런데 맨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은 품삯을 더 많이 받으려니 했지만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밖에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돈을 받아 들고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그러자 주인은 주인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고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묵상>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또 다른 하늘 나라의 비유를 듣습니다. 오늘의 비유를 묵상하면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과 하느님의 자비, 인간의 정의와 하느님의 정의가 서로 부딪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 아침 9시,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에 일꾼을 부릅니다. 날이 저물어 하루 일한 품삯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대충 이 시간을 오후 6시 정도라고 생각해봅시다. 오후 5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일한 시간을 따져보면 오후 3시에 온 사람은 세 데나리온을 받아야 하고, 아침 9시 온 사람은 아홉 데나리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 대충 오전 8시 쯤이라고 하면, 이 시간에 온 사람은 열 데나리온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람들의 공정한 계산 방식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제) 정의입니다. 사람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인간들의 물질적인 경제 정의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이러한 정의가 항상 지켜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가 정당한 임금을 받고 일을 하는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일꾼들은 자신의 정당한 주장, 적어도 인간의 정의로는 타당한 주장을 포도원 주인에게 합니다. 이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의 자비로운 마음에서 보면, 이들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포도원 주인은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한 사람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주고,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일한 시간만큼만 계산하면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살펴 본 계산을 역으로 하면 되죠. 아침 아홉시에 온 사람에게는 10분의 9 데나리온을, 오후 3시에 온 사람에게는 10분의 3데나리온을, 그리고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는 10분의 1 데나리온을 주면 되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주었다면 일찍부터 나와 하루 종일 일한 사람으로부터 항의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포도원 주인은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자신과 가정을 꾸려가야 할 일꾼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하루종일 초조한 마음을 졸이며 막막한 생계를 걱정했을 오후 5시에 온 일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고 싶었던 것이 포도원 주인의 마음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산 방식이고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일보다 사람을 먼저 봄으로써만 가능한 생명력있는 삶의 경제 정의이지요.

 

사람들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상황을 이것 저것 조목조목 따져 거기에 맞는 대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도 오늘 포도원 일꾼들이 일한 시간을 따져서 거기에 맞게 품삯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바로 온전한 한 사람 자체이고, 이 사람의 삶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일꾼들이 일한 시간을 따지지 않고 하루 생활할 수 있는 품삯, 즉 한 데나리온을 모두에게 나누어 준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후 5시에 불려온 일꾼이라면 주인에게 항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의 자비로움에 감사하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른 아침에 불려온 일꾼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주인의 처사가 못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처사가 몰상식한 것이라고 불평하겠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일을 돕기 위한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우리의 삶은 곧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먼저 불릴 수도 있고, 나중에 불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언제부터 언제까지 한 것이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품삯을 치러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그리고 주님께서 치러주실 삶의 열매를,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여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일꾼으로 불러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품삯을 치러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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