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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아이들이 좋아요!(연중 19주 토)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8-19 조회수2,498 추천수17 반대(0) 신고

 

2000, 8, 19  연중 제19주일 토요일 복음 묵상

 

 

마태오 19,13-15 (어린이들을 축복하신 예수)

 

그 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였다. 제자들이 그들을 나무라자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시고 나서 그 곳을 떠나셨다.

 

 

<묵상>

 

"유치부 친구들, 신부님께 물어볼 것이나 원하는 것 있어요?"

유치부 선생님께서 유치부 어린이들에게 말합니다.

 

"저요! 저요!"

귀여운 꼬마 친구들은 너도 나도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를 시켜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선생님께서 한 친구에게 손짓을 하자, 이내 이 꼬마 친구가 제게 청을 합니다.

"신부님!  안경 한 번 벗어 보세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요."

 

무척 난감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안경을 써 온 저는 잠 잘 때를 빼고는 거의 안경을 벗지 않습니다. 안경을 벗으면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 거의 25년 넘게 안경을 써 왔기 때문에 안경을 벗은 제 얼굴이 조금은 어색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글쎄! 신부님이 안경을 벗으면 굉장히 이상하게 생겼거든. 그래서 안 벗는 것이 나아. 미안해."

 

"그래도 벗어보세요. 진짜 궁금해요."

이제 다른 꼬마 친구들까지 덩달아 소리를 지르면서 벗으라고 난리입니다.

 

"그래, 잠깐이야, 아주 잠깐. 친구들! 잘 봐."

 

아주 짧은 시간,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씁니다. 아이들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저의 얼굴을 살핍니다. 제게 청했던 꼬마 친구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합니다.

 

"야! 진짜 이상하다. 그치."

 

"맞아! 맞아!"

 

다른 친구들이 모두 맞장구칩니다. 자기들끼리 낄낄대기도 하고, 선생님은 당황스러운가 봅니다. 조금은 황당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꼬마 친구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봐! 신부님이 이상하다고 했잖아. 이젠 이런 부탁하지 않을 거지?"

 

"예!"

 

꼬마 친구들 모두가 힘차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간식을 함께 먹습니다. 여기저기서 고사리 손들이 제 입 앞으로 다가옵니다. 사탕, 과자.....하나씩 집어 들고 말입니다.

 

두어달 전에 제 방에 온 귀한 손님들, 유치부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안경벗은 제 모습이 진짜로 이상했는지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상하다고 얘기해서 덩달아 이상하게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제게 지금도 생생한 것은 "신부님! 진짜 이상해요."라는 깜찍한 음성입니다.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습니다.

 

어린이들을 만나면 좋습니다. 가끔 너무나도 버릇이 없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자기식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꺼리낌없이 마구 안기는 모습이 좋습니다. 나이 차이는 많이 나고, 생각하는 것, 보는 것... 모든 것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 차이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일뿐 어린이들과 저 사이에는 다른 보이지 않는 벽, 흔히 어른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런 벽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은 남잔데 치마를 입었네. 이상하다." 그리고 나선 슬금슬금 뒤에 다가와 수단 자락을 슬쩍 뒤집어보면서 히히덕거리는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이 좋습니다. "두목, 두목"하면서 졸졸 쫓아오면서 귀찮게구는 조금 큰 녀석들의 천진난만함이 좋습니다. 제 손을 쫙 펴보라고 하면서 무엇인가 움켜 쥔 자기의 자그마한 손을 겹쳐 놓고는 사탕 하나 건네 주고선 쑥스러운듯 뒤돌아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니다. "신부님! 아!" 제 입에 과자하나 슬쩍 집어넣고 뭔가 보람있는 일을 했다고 흐뭇한 표정을 짓는 아이의 모습이 저를 맑게 합니다.

 

어린이의 눈으로 어린이를 보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이의 눈을 가진다는 것,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어린이들이 귀찮게 여겨지나 봅니다.

 

어린이들을 한 품에 안으신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께서 지니신 어린이의 마음을 떠올려봅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신 어린이의 눈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오후에 귀여운 꼬마 친구들을 만날 것입니다. 귀찮게 굴겠지요. 그것이 그들의 사랑 표현인 것을 어떻게 말릴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좀 더 진하게 우리 어린이들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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