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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로 불러올려질 희망 살기(성모승천대축일)
작성자상지종 쪽지 캡슐 작성일2000-08-15 조회수2,533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0, 8, 15 성모 승천 대축일 복음 묵상

 

 

루가 1,39-56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마리아의 노래)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묵상>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면서 광복절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 공동체 모두에게, 특별히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날입니다.

 

성모님께서 영광스럽게 하늘로 불러 올라가심을 축하하는 오늘, 우리는 그저 성모님만을 바라보고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하늘로 불러 올려질 것을 간절히 희망하게 됩니다. 사실 오늘은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통해 우리를 똑같이 초대하시는 날이며, 주님의 초대에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맞추어보는 다짐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희망, 즉 하늘로 불려 올려질 것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그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이들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꿈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향해 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응답을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확실한 약속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희망을 산다"라는 말을 합니다. 희망은 먼 곳에 있는 목표가 아니라 우리 삶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이 희망의 산 증인을 만납니다. 성모 마리아가 그분이시죠. 그런데 이 희망은 주님과 주님의 뜻에 대한 확고한 믿음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천사가 예수님의 잉태 사실을 당신께 전하였을 때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응답하심으로서 희망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혼인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낳을 때 돌에 맞아 죽어야만 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성모님의 이러한 응답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과 목숨을 내건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했던 응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당신의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신 성모님은 당신의 희망을 "마리아의 노래" 를 통해 아름답게 주님께 봉헌하고 계십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이스라엘의 한 여인, 생명까지도 주님께 온전히 내어놓았던 성모님의 희망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대신한 부귀영화가 아니라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이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무는 것이 바로 성모님의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사회적, 종교적 위계질서가 명확했던 당시에 이러한 희망을 노래한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겼던 성모님의 용기와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담은 희망은 궁극적으로 죽음을 하느님에 의해 하늘로 부러 올려진ㄴ 영광으로 실현되었습니다.

 

하늘로 불러 올려진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죽고 난 후에 일어나는 기적같은 사건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고단한 삶 가운데서 주님과 함께 사는 기쁨을 누리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내려질 주님의 은총을 희망하며 살아갈 때, 우리가 주님의 자녀로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바로 이렇게 받아들여짐으로써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늘로 불러 올려지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부정과 불의가 만연한 오늘, 자유와 정의와 민주를 외치다 감옥에 갇힌 양심수들은 여전히 묶여있으면서, 부정부패의 주범들은 조건없이 풀려나는 이 시대에 인간적인 기쁨과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삶의 기쁨과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두운 이 세상 한 가운데서에 살아가면서도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니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만연한 부정과 불의를 거슬러 살아가는 우리를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몸짓을 외면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들고, 주님의 따르는 정의로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때가 성모님을 떠올려야 할 때입니다. 성모님의 용기있는 응답을 우리의 것으로 되새김해야 할 때입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삼아 힘차게 불러야 할 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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