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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은 것이 아름다워(사순 5주일 강론)
작성자황인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0-04-08 조회수2,450 추천수12 반대(0) 신고

사순5주일 강론

황사가 파아란 하늘을 누렇게 물들이던 날 서울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곤지암을 지나서 동서울 톨게이트를 들어서는 순간 서울 하늘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코 알레르기로 고생하다가 이제 좀 나았는가 했는데 또 다시 코가 따끔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옆에 앉았던 동창신부님도 그 때부터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4월 5일 식목일을 이용해서 본당에서 MBTI 교육차 왔다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던 고교동창생이자 미아5동 주임신부 친구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것을 실감한 모양입니다.

 

차 안의 라디오에서는 강원도 고성에 산불로 강풍을 타고 울창한 숲 수천 정보와 가옥 수십채를 태우며 번지고 있다는 속보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어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우리가 잠시 여행을 했던 그 웅장한 태백산맥의 아름다운 광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서로 할 말을 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주일 강론에서 황사의 피해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는데 그 말이 또 한번 실감하게 되어서 저 자신도 놀라고 있습니다. 또 한식을 맞이해서 산소를 찾았던 성묘객들의 실수와 부주의라는 인간의 편의주의에서 산불이라는 대재앙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런데 황사와 산불은 둘 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흙먼지와 작은 불씨로부터 비롯되는 재앙이라는 점입니다. 작은 것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말, 행동 등은 우주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않고 살아고 있습니다.

 

대가족 제도 속에서 살았던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가장 고생하는 분들은 며느리였습니다. 한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시집살이 10년에 위장병에 안 걸린 며느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개 며느리들의 복부 명치와 배꼽 사이에 있는 ’중완’부터 배꼽 아래 ’석문’까지 딱딱한 덩어리가 생기는데, 이것은 십년간의 스트레스의 결과라고 진단합니다. 이 병을 치료하려면 백약이 무효하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니 어떻게 치료해 드려야 하는지 난감하다고 합니다. 시어머니와의 작은 갈등이 오래 지속되게 되면 치료가 불가능한 위장병으로 발전된다는 것을 보면서 나의 작은 말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본당에는 많은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손님들 중에서는 성전 짓는데 도움을 주었던 은인들도 있고, 신문이나 잡지에 본당이 ’아름다운 예술성당’이며 ’가볼만한 곳’으로 소개되자 일부러 찾아오는 외부에서 온 손님들입니다. 얼마 전에 몇 개월 전부터 ’행복이 가득한 집’이란 잡지를 보고 꼭 오려고 벼르고 벼르다가 찾아오셨습니다. 대도시에서 이곳까지 오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쉽지 않지만 특별하게 잘 난 것도 없고 그저 작은 아담한 성전을 찾아와서 잠시 기도하고 싶다는 이런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나는 잠시라도 녹차를 대접하면서 따뜻이 맞이하려고 노력합니다.

 

많게는 한 번에 100여명에서 부터 홀로 찾아오는 수많은 손님들을 맞이하다 보면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는 날도 많습니다. 월요일에는 신부님 수녀님들까지 합세해서 찾아오시니 휴일을 잊은지 언제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돌아가면서 고향에 찾아왔다가 가는 것처럼 마음에 평화를 얻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하나의 작은 노력이 얼마나 큰 일을 하는지 점차 깨닫고 있습니다.

 

한 사제의 작은 희생과 노력을 통해서 이 시골성당을 방문하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따스한 인간적인 정과 영혼의 평화를 회복하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느낀 그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이웃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나는 산골의 이 작은 성당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신자수가 많은 본당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경험을 통해서 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몸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는 점점 미사 강론 때 듣는 말씀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가끔 특별강론을 부탁받고 여러 본당을 다녀 보지만 이 역시 어떤 행사를 잘 끝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결과를 받곤 합니니다. 하지만 다도(茶道)에 따라서 내가 정성껏 끓인 녹차를 마시면서 마주앉아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마음에 잔잔한 평화를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새 인터넷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데, 사이버 세계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는 세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방은 못 들어가 봤지만, 자주 전자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는 훌륭한 복음전파 매체가 틀림없습니다.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하던 20세기의 유물은 지나가고 새로운 세기에는 작고 적은 것이 중요한 가치로 등장할 것입니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작은 것들, 황사, 작은불씨 그리고 하잘 것 없는 나의 말과 행위들이 재앙이나 질병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묵상을 하면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흔히 우리는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은 제쳐놓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도 사랑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이웃에 대한 미움, 폭력, 사기 등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지나친 음주와 흡연 그리고 과도한 컴퓨터 게임이나 일을 하다가 건강을 잃는 사람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은 신앙인도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이웃을 믿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하느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나 하나’를 하찮게 여기면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기게 되며, ’나 하나’를 귀하게 생각하면 이웃도 사랑할 수 있고 하느님도 믿을 수 있게 되는 법입니다. 이 세상이 하느님 나라로 변하느냐, 지옥으로 변하느냐는 바로 하잘 것 없는 작은 나의 말과 행위에서 비롯된 다는 것을  예수님은 작은 밀알 하나의 중요성을 통해서 가르치시려고 하십니다.

 

다시 대화로 돌아와서 보니 서울처럼 개나리 진달래 꽃소식은 요원하지만 새소리가 들리고 하늘이 맑습니다. 황사의 여파가 남아있긴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게 됩니다. 오늘도 나는 이런 혜택을 누리면서 오염된 공기 속으로 잔뜩 찡그리며 돌아간 서울 친구 신부에게 웬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서울은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다가 그 아름다운 곳이 가장 추한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공터만 생기면 나무를 심기 보다는 빌딩을 짓고, 발에 흙을 묻히지 않으려고 세멘트 포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겨울에는 칼바람이 매섭게 불고, 여름에는 복사열 때문에 숨미 막히게 되었습니다. 작은 풀 한포기, 작은 돌맹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혹시 제가 쓰는 글들을 보시려면 저희 성당 홈페이지 www.artchurch.or.kr에 방문하시면 오늘의 묵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자유게시판에도 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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