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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로마서24) 그리스도의 사랑 (로마8,31-39)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4-01-13 조회수65 추천수1 반대(0) 신고

[신약개론]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 / 침신대 강의록

 

 

2024. 1. 13. (토요일)

 

로마서24) 그리스도의 사랑

 

(로마8,31-39)

31 그러니 이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32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33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 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35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36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 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 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하느님께서 이 모든 구원을 준비하시고 작정하시고 이루시고 그 결과를 완성하셨다는 선언을 29절과 30절에 걸쳐서 확인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증언하듯이 구원은 이미 역사 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우리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실 때 구원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보면, 우리는 그 후 2,000여년이 지나 태어나고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간상의 역순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구원을 결단코 변개(變改)하거나 취소하거나 타협하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미리 정하셨고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듯이 부름을 받았고 그리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인데 그것이 완료형으로 선언되어 있다고 30절을 소개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부르심과 그리고 영광이라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준 승리의 운명, 사이를 살아가고 있죠.

그 사이가 로마서 5장에 의하면 고난(苦難)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것이 현실인데, 각각의 신앙생활의 과정은 가장 특징적으로 고난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 고난 때문에 우리는 늘 우리에게 일어난 이 구원과 우리의 희망들이 흔들리지요. 로마서 5장에서는 그 부분을 5절에 보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고 얘기합니다.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가니 걱정마라. 그렇게 얘기하는 셈이죠. 아무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다. 우리는 늘 그 사랑을 이렇게 이해하지요. 그렇다면 우리 마음이 늘 넉넉해야 할 것 아니냐?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 마음에 늘 확신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는데 성경은 사랑을 그렇게 풀지 않습니다.

사랑은 최고의 의지이며 호의이며 인내이며 능력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831절 이하의 이야기지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는가? 이게 이제 부르심이라는 현실과 약속된 희망, 아니 결정된 승리 사이를 사는 우리, 그리고 고난이라는 특징으로 이어지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준 성경의 위로요, 확신입니다.

"하느님이 사랑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죠. 그 사랑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우리가 기대하는 사랑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우리는 그 사랑으로 넉넉하지 않다고 늘 얘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니 이 사랑을 풀어야지요. 31절 이하에서 39절까지, 오늘의 본문은 그 사이가 하느님이 우리를 편들고 있고, 결국을 결정하였으니 걱정하지 마라라는 결정론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 마음에 늘 일어나는 이런 괘씸한 생각, 운명은 결정되었으니 내가 아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사이에서 어떻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성경의 이 말씀을 우리의 힘으로 가질 수 있을까요?

31절에서 39절까지의 오늘의 본문의 중요한 표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 라는 이 말의 강조점을 봐야 됩니다. 31절부터 다시 봅니다.

 

(로마8,31-39) 31 그러니 이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32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33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 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35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36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 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 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의지, 하느님의 능력, 이런데 강조점이 홀로 있지 않고, 그것이 모두 '우리'라는 대상을 갖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로마서 831절 이하의 이 약속은 하느님이 우리를 대상으로 놓고 하는 얘기라는 걸 놓치면, 하느님 홀로 그 속성과 능력에 있어서 신실하시며 전능하시며 이것으로 그치게 됩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하느님의 얘기가 되고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나는 늘 자신 때문에 죽어납니다.

그 얘기가 아니고 사랑은 사랑할 대상을 빼놓고 얘기하는 건 다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계속 '우리'가 나오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하느님이,’ 이겁니다. 34절에, ‘누가 단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느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계속 나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으리요.‘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성실과 능력을 높이는 것으로 우리는 이렇게 너무 간격이 넓어질 뿐이지, 못 미치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지, 힘이 되지 않는데, 사랑은 대상을 빼놓고는 결단코 홀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쳐서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입니다. 늘 놓치는 깊은 내용이 이것이지요. 사랑이 추상명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공허한 명분이 되죠.

앞에 세 번 반복적으로 추상명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하죠. 그것은 환상이 아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것 아니다. 산을 옮기는 능력 아니다.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정열 아니다. 뭐냐? 오래 참음이다. 그게 무슨 소리? 오래 참음, 상대를 참는 거다. 대상이 있는 거다. 혼자 멋진 거 아니다. 사랑은 대상이 없이 혼자 개인을 치장하는 말로는 쓰일 수 없습니다.

그게 하느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상대를 놓고 하는 얘기입니다. 상대를 위하여 혼자 자신을 치장하는 단어들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는 것은, 사랑이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나 없이 혼자 할 수 없는 사랑, 십자가로 보인 사랑, 우리를 위해서 찾아온 사랑, 우리를 놓지 않은 사랑, 그게 성경이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대상이 없는 사랑이 난무하죠. 이런 말들 자주 하잖아요. ‘우리 교회는 사랑이 없어.’ 본인이 사랑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받아야 됩니다. 사랑은 꺼내놓고 명분으로 강요하고 잣대를 가지고 심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 각자가 하는 겁니다.

웃어, 웃게 만드십시오. 얼굴을 펴, 펴게 오시오. 사랑을 하시오. 인류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지 말고, 안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고,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시오. 성경이 지금 하는 얘깁니다.

저 유명한,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홀로 있는 것이 무서운지 오빠 생각이라는 동요가 있습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그게 무슨 노래예요? 생각을 해보세요. 비명이지. 뭐라는 비명이에요? 슬프다는 거예요. 무섭다는 거예요. ? 나를 호의를 가지고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하나 더 해볼까요. 제일 많이 부르는 술집에서의 노래,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면은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으리

기뻐야? 외롭단 말이야? 아무도 나를 인간으로 대접을 안 하고 대상으로 품어주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러니 그 쓰라린 가슴을 소주로 적셔야지. 어떻게 견딜 거야.

사랑이 뭐냐?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봤죠? 안 봤다고? 그게 영어 원제에서는 쇼생크 리뎀션(The Shawshank Redemption) 이에요. 쇼생크 구원이요. 탈옥하는 얘기가 아니라, 쇼생크라는 그 감옥이 구원을 받는 얘기예요. 사뭇 달라 보이죠.

앤디 듀프레인이라는 주인공이 아내를 죽인 살인범으로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고 들어오는 거야. 종신형을 두 번 살아야 돼. 감형을 받아도 다시 종신형인 거예요. 그 안에 먼저 와있던 죄수인 레드가 이제 그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 식으로 풀어나가는 영화예요.

그래서 우리 관객은 모두 레드를 통해서 엔디라는 주인공을 만나요. 엔디의 속을 몰라. 그의 생각도 몰라. 옆에 있는 동료 죄수인 레드를 통해서 우리는 듣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우리를 우리 모든 관객을 대표하고 그래서 궁금해요. 신비를 더하고 그래서 많은 내용이 그 안에 자리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로저 에버트라는 영화 평론가가 위대한 영화 백 편을 썼어요. 그 중에 쇼생크 얘기가 나와요. 재밌으니까 보세요.

로저이버트(Roger Ebert)는 미국의 영화 평론가다. 생몰년 1942618~ 201344. 영화 평론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인물이지만 대중적으로 굉장히 재밌게 평론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시스켈 과 86년부터 진행한 평론쇼인 At The Movies도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 시스켈의 사망 이후로는 리처드 로퍼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성경 읽다가 재미가 없거든 보세요. 근데 그 쇼생크라는 이름이 기이한 이름이에요. 아마 로저 에버트도 몰랐었던 거 같애요. 그 얘기 없는 거 보니까 어 쇼생크는 이집트 왕의 이름이에요. 이집트 왕 이름은 보통 우리가 황제, 천자, 천황, 그런 식으로 공식 직함을 파라오라 그러고 실제 왕 이름은 다 달라요.

쇼생크는 이집트에 22대 왕조를 연 왕이고 성경에서는 이게 세숑크로 나와요. 열왕기에 르호보암에 반기를 들었다가 망명을 하게 되는 나중에 왕이 되는 여로보암이 정치적 망명을 한 게 세숑크에요. 그렇게 한번 등장을 해요. 우리 말에는 시삭이라고 나옵니다.

 

거기 쇼생크 리뎀션은 그런 의미에서 애굽의 구원이에요. 애굽은 핍박자였잖아요. 핍박을 당한 자가 아니라 핍박을 한 자인데, 쇼생크 리뎀션이 됐죠.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적 유산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 영화를 이해할 수가 사실은 없는 거죠.

앤디는 무죄이지만, 다른 강도가 들어와서 자기 아내를 죽였는데 앤디의 총으로 죽였기 때문에 엔디가 범인이 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하죠. 그리하여 정말 죄수들과 함께 있게 되요. 그는 은행가였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속이 깊고 우울하게 살고 있죠. 왜 우울할까요?

그 영화 속에도 나오듯이 결국 그가 아내는 결국 내가 죽인 거야. 내가 쏴 죽인 건 아니지만 나는 남편 노릇을 못했어.” 말하자면 후회를 하죠. 그리고 말 없이 이렇게 저렇게 다른 죄수들과 살다가 탈옥을 합니다.

그가 탈옥을 하자, 그가 탈옥을 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남은 모든 죄수들이 그의 탈옥을 즐깁니다. ? 그가 한때 동료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의 탈옥은 남아있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이 됩니다.

이런 유명한 사건이 있죠. 들어와서 초기에 감옥을 나가 바깥에서 일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건물 옥상에 방수 타르를 칠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경비 대장이, 간수장이 먼 친척이 죽으면서 삼만 불의 유산을 남겼는데 세금으로 홀딱 뺏기게 됐다는 겁니다.

일을 하다가 감시하는 간수들이 지나가면서 간수장이 하는 얘기를 듣고 가까이 가죠. 레드가 말려.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서 저 그거 찾아드릴 수 있는데요.” 간수장이 화를 벌컥 내면서 멱살을 잡고 건물 옥상 밖에 세우죠. “넌 사고로 죽은 거야.” “부인을 믿으시죠? 부인에게 증여하면 한 푼도 안 내도 됩니다.” “뭐라고?” 그렇게 됐습니다. “오만불까지는 부인에게 증여하실 수 있고 한푼도 안내도 됩니다.

그저 간수장께서 알아서 하시겠지만 어차피 서류를 작성해야 되는 일이니까 제가 해드리죠. 다른 보상은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동료들에게 맥주 두 병씩만 주십시오.”

그래서 장면이 탁 바뀌고 이제 휴식시간에 맥주를 먹고 있죠. 앤디는 저쪽에 앉아서 안 먹고 싱글벙글하고 쳐다보고 있습니다. 레드가 친구들에게 그러죠. “우리보고 동료라고. 우리가 동료라고.”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들은 동료였기 때문에 앤디의 탈옥은 자신들의 탈옥입니다.

남아있는 자들은 아직 감옥에 갇혀 있지만 더 이상 감옥이 아닙니다. 그 앤디가 그랬어. 앤디가. 그때 휘가로의 결혼 틀어놓고 붙잡혀서 한 달간 독방 갔지 않아. 더 이상 쇼생크는 그들을 죄수로 가둘 수가 없습니다. 죄수가 아닌 자유인의 자유와 누림이 저들에게 이미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인생이 되시고 인생을 살고 죽으시고 부활하자 더 이상 세상은 죽음이라는 위협과 공포로 묶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가 오시고 그가 참여한 모든 자리는, 모든 정황은, 모든 사람은, 그의 동료로 그의 형제로 그의 구원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걸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좋은 소리 하고 막 속을 꺼내고 막 진심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자신과 묶는 것입니다. 운명과 현실로 묶고, 모든 결과를 함께 가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얘기죠. .

(히브5,7-10) 7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 큰 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 당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대사제로 임명받으셨습니다.

 

예수가 육체로 오십니다. 육체의 동료가 됩니다. 그가 부활하심으로 육체는 부활할 수 있는 그런 신분이 되고 그의 부활로 인하여 그가 오셨던 자리와 그가 함께한 모든 자들은 그 안에 함께 있게 됩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사랑이라고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이 땅에 올 때 아버지의 기뻐하심을 따라오신 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입니다. 사랑이라는 말로 말이 다. 사랑을 해서가 아니라 사랑은 운명을 나누는 연합인 것이죠. 그가 와서 우리를, 육체가 되어 우리의 고난, 우리의 현실, 우리의 실전에 들어오심으로 우리를 자기와 하나로 묶는 거죠. 사랑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합니다. 화를 내고 억울해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외(敬畏)하심으로 그와 사랑으로 묶여 있는 분리될 수 없는 존재로서 눈물과 통곡으로 간구해야 되는 자리를 묶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죠, 우리.

우리가 이것만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어요. ‘뜸북 뜸북 뜸북, 낙화암 그늘에서 울어나 보자.’ 자리를 다 묶으셔서 예수 안에서 먹지 못할, 구원해내지 못할 다른 영역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거죠.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에서 끊을 자 없습니다.’ 라는 말이 갖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며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의 친척이고 가족이고 그 시대에 살고 그 나라에 사는 것으로 사랑의 존재로 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자, 예수의 성육신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모든 인류에게 미치는 사랑의 행위요 그들을 묶은 하느님의 사랑의 능력이요 방법이듯이 우리가 이 시대를 살고 이 나라에 살고 누구의 이웃이 되고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하느님은 묶고 계십니다.

우리는 뭘 하고 싶은 거죠? 우리는 대단한 걸 하고 싶죠. 상대방을 설명하고 격파하고 굴복시키고 싶지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힘으로 누구를 굴복시키고 납득 시켰습니까? 다 받으시죠. 다 받아 안죠. 다 품에 안는 겁니다. .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아무도 다시 할 수 없는 억울하고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길을 가서, 그래서 보상을 받았다가 아니라, 어느 한 부분도 남김없이 당신의 품안에 안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는 거죠.

(마태28,18-20) 18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 그 땅 끝에 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서있는 자리가 땅 끝입니다. 우는 자리, 할 말 없는 자리, 억울한 자리, 견딜 수 없는 자리, 거기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쥐신 예수께서 보낸 자리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예수를 믿으면 어떡하라구요? ‘겁내지 마세요.’ 낙화암 그늘에 가서 울지 마세요. 우리가 사는 인생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님, 그의 사랑, 나에게 준 이웃, 상대, 너무나 많은 상대, 그들 앞에 내가 서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명분으로 쫓아내지 마세요. 그들을 결벽증으로 외면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있는 것이 이웃에게 위로가 되게 하십시오. ‘편이 되어 같이 울고 같이 웃으십시오.’ 아무것도 줄 것 없으나 나 살아있는 것이 하느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서 있는 자리에서 하느님이 무엇을 하는지 우리가 거부하는 인생으로 하느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확인하는, 자랑하는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느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은 세상을 사랑하시며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구원하려 하심이죠. 그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나누는 자로 서 있으니 열심히 살아야죠. 울어야죠. 기도해야 됩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마다, 발자국마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줄 예수 안에서 확인하여 위대한 인생인 줄 알고 살아 하느님의 영광과 능력 드러내는 우리 서 있는 자리, 우리 사는 이 시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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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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