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요나
작성자신영미 쪽지 캡슐 작성일1999-02-26 조회수3,521 추천수5 반대(0) 신고

성서에 예언서를 남길 정도에 예언자들은 전부 충실 했다.

예레미야, 이사야, 호세아, 에제키엘 물론 그들도 불평을 하고

힘들어 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겪는 일에 대한 것보다는

자신들이 그렇게 노력함에도 하느님이 말씀이 무시되는 것을 보아야 하는

그런 아품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나는 그것이  싫었는지 모른다.

말을 전해도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이요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는 것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니깐...

그래 말씀을 받고도 도망을 간다.

도망을 가서 잘 될리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도망 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고 도망을 그래 간 것이다.

물론 주님은 도망가는 것을 막지는 않으신다.

하나 그렇다고 도망을 방임 하시지도 않는다.

배가 폭풍을 만나게 하고 사람들이 그 때문임을 알게 한다.

사실 폭풍을 만났고 그것이 그 사람 때문이라고 해도

산 사람을 바다에 수장 시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요나의 삶은 예수님이 언급 하셨듯 수난과 부활을 상징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고 하느님이 얼마나 자비 하신가

어느 사람은 주님이 부려 먹기 위해 살려 두었다고 하나

주님은 요나의 생명을 빼앗지 않고 살려서 니느웨이로 가게 하신다.

그 주님의 사랑 덕분일까?

니느웨이 사람들은 회개하고 회개한 대표적인 민족으로 주님이 언급 하신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리고 분노는 언제나 그 사람이 성숙과 나아짐과

보다 큰 사랑을 위해서 존재 했다.

지금에 고통에 그리고 앞으로 닥쳐 올 고통에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은

실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부할 수 있는 것 조차 거부할 수 있을 만큼에 신뢰는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요나는 그런 의미에서 삶 자체에서 교훈을 주는 상징으로 하느님이 쓰시고 계신다.

우리들의 삶 역시 크고 작은 역할에 일상 속에서 하느님이 다른 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하고 계신다.

나 같은 것이 뭘 할 수 있는가는 겸손에 소리 갖지만 불신에 소리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고

난 내 삶을 충실이 삶으로 해서 그것을 이루기만 하며는 된다.

조그만 덩쿨을 갖고도 주님께 권리르 주장하고 불평할 수 있는 우리지만

덩쿨도 책임져 주는 주님은 하물며 사람이야 얼마큼 사랑 하시겠는가?

내 삶이 하느님이 원하시어 사랑으로 이룩된 것임을 잊으면 안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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