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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 <사순 제3주일 본문+해설+묵상>-김수복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03 조회수1,677 추천수0

<사순 제3주일>


제1독서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1-8ㄱㄷ.13-15

그 무렵 1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2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4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5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6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13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14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15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1-2.3-4.6-7.8과 11(◎ 8ㄱ)

◎ 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도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들아,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 ◎

○ 주님은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이시로다. ◎

○ 주님께서는 정의를 실천하시고,

억눌린 이들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시도다.

당신의 길을 모세에게,

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알리셨도다. ◎

○ 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도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주님의 자애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굳세도다. ◎ 

 

제2독서


<모세와 함께한 백성의 광야 생활은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0,1-6.10-12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2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3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4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6 이 일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악을 탐냈던 것처럼 우리는 악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0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괴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11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마태 4,17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도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9

1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성체송


시편 84(83),4-5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주님의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마련하고,

제비도 제 둥지가 있어 그곳에 새끼들을 치나이다.

주님의 집에 사는 이들은 행복하리니,

그들은 늘 주님을 찬양하리이다. 


해설과 묵상


제1독서(탈출 3,1-8ㄱ.13-15) 해설

<“나는 있는 나다.”(주님)라는 분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이 이야기는 모세가 받은 소명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하느님의 이름이 모세에게 계시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소명의 깊은 뜻도 아마 그 점에 있을 것이다. 즉, 소명이란 하느님께로부터 어떤 임무를 받았다기보다 하느님의 계시를 받을 대상으로 선택되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 계시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신비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보여 줄 수 있게 된다.

파라오 궁중에 살던 모세는 히브리인들이 당하는 억압과 고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되자 그들을 해방하는 데 몸 바칠 것을 굳게 결심한다(탈출 2,1-13). 그 사실을 알게 된 파라오는 모세를 잡아 죽이려 하고 모세는 그를 피해 미디안 광야로 떠난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 곳은 하느님의 산인 ‘호렙’ 산이다. 우리들이 만일 계시와 호렙 산 사이의 관계를 주목한다면 하느님의 말씀 외에 달리 특별한 계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신현(하느님께서 나타나심)이 호렙 산(시나이 산이라고도 부른다.)에서 일어난다. 그 계시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느님께서는 비단 당신 이름(야훼: “나는 있는 나다.” 또는 “내가 너희 가운데 있다.”라는 뜻)을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 당신 신비도 알게 하신다.

“나는 있는 나다.”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홀로 ‘유일한 주인’이고 ‘유일한 당신 자신’이라고 선언하는 동시에 당신은 성조들에게 해준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분이라고 선언하신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의 사고방식대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기보다 ‘더불어 관계를 맺고 계시는 분’ ‘당신 백성에게 호의와 애착을 보이고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신비를 간직하게 된 모세는 이제 하느님의 도구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고자 당신 권능으로 개입하시는 그분의 역할을 대신 짊어진다. 드디어 모세는 더 이상 자기 스스로 행동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자기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기 몸을 맡긴다.


화답송(시편 103[102],1-2.3-4.6-7.8과 11[◎ 8ㄱ]) 해설

<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나이다>


이 노래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리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이다. 하느님이 내려 주신 복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자비와 용서다. 시편작가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노래하면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길을 드러내 보이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7절). 불붙은 떨기나무 속에 나타난 하느님의 신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당신 백성에게 당신 율법을 계시하신 시나이 산의 신현에 대해 말한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는 강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율법은 오히려 하느님께서 용서하시기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야 한다.


제2독서(1코린 10,1-6.10-12) 해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우리를 교훈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1코린 8-10에서 바오로는 우상에게 바친 짐승의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바오로는 고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그런 고기를 먹어도 아무 상관없음을 똑똑히 알고 있는 ‘강한 사람들’일지라도, 그런 고기를 먹어도 과연 괜찮을까 의심하는 ‘소심한 사람들’ 앞에서는, 그들을 위해서 자기 자유를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한다. 문제의 핵심은 형제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내 자유와 권리를 희생하고 포기하고서라도 사랑이 요구하는 바를 실천해야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난다.

오늘 독서 1-4절에서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히브리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은 관심과 사랑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 하느님의 벌을 받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하여 밝히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벌을 받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이 한사코 조건을 따지고 계산을 하는 사랑보다 한없이 뛰어나다고 가르친다.


복음(루카 13,1-9) 해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재앙이 들이닥칠 때 사람은 누구나 왜 내가 이런 재앙을 당해야 하는지 묻는다.

오늘 독서는 모두가 죄인인 우리 사람이 지닌 특징은 자기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자기가 올바르다는 주장 자체가 벌써 온당치 않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재앙을 당할 때 우리는 반항을 하기보다는 우선 그 재앙을 다소곳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사실 우리 모두 죄인이고 죽어 마땅한 자들이다(참조. 창세 2,17).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면 오히려 우리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께 자비와 용서를 구하면서 참회하고 행실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6-8절)는 시급히 회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는 회개한 사람에게 합당한 행동과 생활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끝까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잘려서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이다(참조. 루카 3,8-9).

과수원 주인(하느님)이 열매 맺지 않는 나무(정의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를 잘라내라고 하자 과수원지기(그리스도)가 일 년만 참아 주시라고 간청한다. 우리에게도 앞으로 일 년이 마지막 남은 유예기간인지도 모른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아듣고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참조. 루카 10,38-42).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루카 8,15)


묵상

<탈출과 해방의 목적은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 그분께 도달하는 데 있다>


이번 주일 복음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으려면 예수께서 취하신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한 다음, 그러니까 새로운 ‘이집트 탈출’을 결행하는 당신의 시간을 다 채우기로 작정한 다음, 제자들에게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르침을 주고 계신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그런 식으로 편집 작업을 함으로써 히브리 역사 가운데 일어난 매우 의미 깊은 사건들을 상기시키려 하는 것 같다. 그 사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려는 새로운 구원을 예고하는 사건들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로부터 벗어난 이집트 탈출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당신 생애를 마치고 아버지께로 건너가시는 파스카를 미리 보여 준다.

구약성경은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위대한 업적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고, 신약의 그리스도께서는 그 위업을 완수하셨기에, 현재 교회는 그 위업을 되살려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하겠다.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모든 위업 가운데서도 이집트 탈출은 두 말할 것 없이 가장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이집트 탈출은 해방의 신비로서 이스라엘이 하나의 백성으로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무수한 사건들로 이어질 사슬의 첫째 고리가 되었다. 이집트 탈출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참된 구원의 사건이며, 하느님께서 강렬한 당신 팔을 뻗쳐 모세를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신 사건이다. 모세는 미디안 지방에서 피신하고 있는 동안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하느님께 대한 강렬한 체험을 얻는다. 그는 자신의 무능함을 알고서 머뭇거리다 곧 하느님의 강력하신 힘을 발견하고 당신 백성을 절망스런 상황에서 구출해 내고자 힘쓴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출하려고 손수 힘을 쓰신 하느님의 위대하신 업적을 신약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로써 완성하신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은 세상 끝 날까지 당신 제자들이 받아야 할 십자가이기도 하다. 십자가의 죽음을 거친 제자들 또한 부활을 통하여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집트 탈출 사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다음부터 다시 오실 그날까지 온 인류는 죄악과 죽음의 속박에서 결정적으로 벗어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새로운 모세로 등장하신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탈출과 해방을 위해 앞장서서 인도하실 것이다(사도 3,22-23; 히브 3,1-1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사람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주고, 당신을 따라나선 허기진 군중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신다. 그분은 갈라진 사람들을 한데 모아 온 인류를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도록 이끄신다.

오늘도 그분은 세계 곳곳에서 당신 성령을 통하여 힘차게 활동하고 계신다. 물론 악마의 세력이란 눈에 드러난 어떤 형체가 아니라 이기심과 욕심이요, 구조화한 제도적 불의 등이다. 이러한 악마의 세력에서 벗어나려면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인류공동체 안에서 실현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굳건한 제사가 필요하다.


 복음해설(2)


복음해설(2)


회개하라는 권고(13,1-9)

루카 복음서에 고유한 이 대목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ㄱ) 들어가는 말(1절). ㄴ) 예수님께서 몸소 답변을 해 주면서 던지시는 수사학적인 두 가지 질문(2-5절). ㄷ) 무화과나무의 비유(6-9절).

1절: 갈릴래아 사람들에 관한 이 일화는 여기에만 나온다. 이 일화를 일반 역사가들은 모르고 있다. 그렇지만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제공하는 빌라도에 대한 묘사를 보면 그 사건을 짐작할 수 있다.

2-5절: 예수께서는 당장 빌라도를 단죄하지 않고 사람들을 죽인 죄를 그에게 돌리지도 않으신다. 탑(이 탑은 아마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실로암 못의 물이 흐르는 수로를 지키는 탑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참조. 요한 9,3)이 무너질 때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신다. 이 두 경우 모두 갑작스런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뉘우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6-9절: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마태 21,18-22와 마르 11,12-14,20에 나와 있지 않은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를 담고 있다. 어떤 해설가들은 삼 년이라는 숫자는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을 가리킨다고 믿는다. “그냥 두시지요.”라는 말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돋보이게 한다. 아직은 땅을 갈고 나무를 돌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참조. 호세 9,10; 이사 5,1-7; 요엘 1,7).

어떤 해설가들은 이 비유를 우의(寓意)로 알아듣는다. 예수께서 믿지도 않고 결실도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빗대고 계신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 대한 마지막 답변은 ‘아니오’가 될 것이다. ‘무화과나무’를 ‘잘라버릴’ 가능성을 남겨둔 사실은 70년의 비극을 암시할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가 구전 전승 또는 기록된 전승의 첫째 단계나 둘째 단계를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할지라도, 루카 복음서의 마지막 편집 상태에서는 은총의 때에 대한 개인 체험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은총의 때는 아마 기대하지 못한 형태로 맞이하는 죽음으로 끝날 것이다.

위에서 한 말을 요약해 본다. ㄱ) 착하거나 악하거나 우리 모두는 재앙을 당할 수도 있다. 하느님은 그런 재앙을 경고와 주의를 주는 기회로 이용하실 수 있다(각 사람이 그 경고를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ㄴ) 이 비유는 독자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자비와 은총의 때에 관하여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열매를 맺거나 맺지 못하는 상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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