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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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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6 조회수51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20년 3월 26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제1독서 탈출 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복음 요한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예전에 친한 신부님들과 함께

제주도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마침 신기한 것이 많은 박물관이

새롭게 개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신부들에게 이곳에

한 번 가자고 말했습니다.

물론 제주도의 많은 박물관 중에

괜찮은 곳이 하나도 없다면서

가지 말자는 신부도 있었지만,

저의 강한 주장으로 박물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입장료가

약간 비싸기는 했지만,

신기한 것들이 참으로 많았고

그래서 제 눈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반대했던

신부는 계속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애들이나 오는 곳이네.

특별히 볼 것도 없는데 아깝게

돈 내고 이런 데를 온 거야?”
볼 것 없다고 또 신기하지 않다고

단정을 하니 자신의 눈에

제대로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돈 아깝다고 말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신기하다고 그래서 볼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제게는 돈이

전혀 아깝지가 않더군요.
단정을 짓는 순간에 보이는 것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 안에서도

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삶이 뻔하다고 바라보면

 뻔한 모습만 보입니다.

그러나 신기하고 놀라운 삶으로

바라보면 그런 모습이 보이면서

신나게 삶을 즐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단정을 지으면서

좁은 마음으로 살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 넓은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원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십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요한이 증언했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직접 증언을 해주셨습니다.

더구나 유다인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에서도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철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인간의 부족하고 나약한 생각을

 내세워 단정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자렛에 특별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 안식일 법을 어기는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

당시의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위선자라고 화를 내는 모습에서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단정 지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보고

싶었던 것은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가져올 막강한 힘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전혀 바라보지

않으면서, 사람의 영광만을 바라보려

 하고 있으니 예수님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을 바라보려고

 한다면, 주님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내 욕심을 채우는 영광만 보고,

하느님의 영광을 보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

내 행복의 크기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결말은 어떠했습니까?

대부분 결말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 이후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말해 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결혼하는 순간의

행복이 가장 크기 때문은 아닐까요?

아무리 왕자와 공주의 결혼이라도

그 후에 부부싸움도 하고 또

어려움도 겪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낼 테니 말입니다.
행복의 크기는 결국 같아진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로또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의

행복감도 얼마 지나면 일반인과

 같아지고, 누구나 부러워할 결혼에

성공한 사람도 길어야 2년 지나면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건강한 사람과 다르지

않은 정도의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나만의 행복 크기를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나의

과거와 비교하면서 내 행복을

키워야 하는데, 나보다 나은 다른

 사람의 현재를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서 내 행복의 크기를

줄여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이의 희망입니다.

그렇다면 나만의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다른 이와의

차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시킬 어떤 것이

있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늘 예수님을 마음에 품으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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