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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대영광송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2 조회수3,606 추천수0

[전례 해설] 대영광송

 

 

“우리 신부님은 노래를 참 잘하신.” 또는 “우리 본당 신부님은 음치다.” 신부에 대한 본당 신자들의 이런 평가는 주로 장엄 미사 때에 사제가 선창하는 대영광송의 첫 구절에서 판명된다. “하늘 높은 곳에는 천주께 영광.” 힘있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제의 선창이 성당 안에 울려 퍼질 때에 신자들의 마음은 한층 더 고양되고 찬미와 기쁨의 노래에 심취하게 된다.

 

어떤 신자는 ‘대영광송’을 노래하고 듣기 위하여 미사에 참여할 만큼 큰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대부분 신자들은 그저 음악이 좋아서 함께 부른다. 그러나 이 음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더 잘 파악하고 음미한다면 사람에 따라 말로 형언하지 못할 기쁨과 감명이 따를 것이다.

 

 

영광이란 말

 

어떤 졸부(猝富)의 이야기다. 갑자기 땅 값이 올라 몇 억 원을 받고 토지를 매각하였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찬양하였다. 영광을 독차지한 기분으로 아버지는 자손들에게 돈을 모두 분배하여 주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세금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것도 수천만 원이나 되었다. 세무서에 가는 도중에도 세금이 너무 많고 또 다 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앞을 가렸다. 돈 생각에 정신없이 걷다가 교통 사고를 당하여 그는 죽고 말았다.

 

구약 성서의 아브라함은 ‘가축과 은과 금’(창세 13,2 참조)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매우 영광스럽다고 일컬어졌다. 영광은 사회적인 높은 지위나 권위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그중에도 왕권은 전형적인 영광이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어느 왕과도 비교가 안될 만큼 부귀와 영광”(1열왕 3,9-14)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렇게 어떤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존경을 받게 되는데 히브리인들이 사용한 영광이란 단어(카보드: Kabod, 그리스어 doxa, 라틴어 gloria)는 중요성의 무게에 중점을 두었다. 즉 영광이란 가치로서가 아니고 무게로 측정되었다.

 

반면 구약 성서는 인간적인 영광이란 덧없고 허무한 일로 여겼다.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시편에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누가 부자 되었다 해도, 그 가문이 명성을 떨친다 해도, 너는 시새우지 말아라. 죽으면 재산을 가져가지 못하고, 명예도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49,16-17). 잠언집을 보면 거의 전편에 걸쳐서 영광을 도덕적, 신앙적 가치와 연결짓고 있다. 영광의 토대는 하느님으로서 그분 홀로 바위요 구원이요 요새이며 믿는 이의 피난처이시다(시편 62,6.8 참조).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고”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영화를 주겠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8-10)고 대답하셨다.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스도는 ‘영광의 주님’(1고린 2,8)이시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다”(히브 1,3).

 

예수님의 영광을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종말의 영광이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것이다”(마르 8,38). 신약 성서는 “위대하신 하느님이시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디도 2,13-14)과 그리스도 안에 영원 한 영광”(1베드 5,10)을 지향하고 있다.

 

둘째는 부활의 영광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바로 부활과 승천의 영광을 차지하기(루가 24,26) 위한 것이었다. 이런 영광은 “아버지께서 천지 창조 이전부터”(요한 17,24) 마련하신 것이다.

 

셋째는 탄생과 복음과 수난의 영광이다. 예수의 생애, 선교 활동, 죽음은 영광의 표정이다. 예수 성탄 시기에 주님의 영광스런 빛이 목자들을 에워쌌다(루가 2,9). 이런 영광은 예수님의 세례, 거룩한 변모, 기적, 말씀, 죽음에서도 드러난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이야말로 앞에서 말한 ‘영광의 주님’이 아닐 수 없다.

 

 

대영광송, 소영광송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것은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드리는 기도문이다.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 기도, 찬사를 영광송이라 하고 위의 기도는 짧기 때문에 소(小) 영광송 또는 그냥 영광송이라 부른다.

 

미사 경본 총지침(31항)에 보면 대영광송을 이렇게 설명하고 었다. “대영광송은 교회가 성령 안에 모여 성부와 어린양에게 영광을 드리며 간구하는 가장 오래된 훌륭한 성시이다. 모든 교우들이 노래하거나, 교우들과 성가대가 교대로 하거나 흑 성가대만이 노래할 수 있다. 노래하지 못할 때는 교우들이 함께 읽든지 혹 교대로 읽는다. 대림절과 사순절 아닌 모든 주일과 대축일과 축일과 특수한 행사 때에 영광을 노래하든지 읽는다.”

 

대영광송은 역사적으로 보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천사의 노래이고, 둘째 부분은 ‘주 천주여’로부터 ‘주의 영광 크시기에 감사하나이다.’까지로서 2세기경부터 사용된 아버지께 대한 환호 소리이다. 셋째 부분은 ‘주 천주여, 성부의 아들이여…… 아멘’으로 4세기경부터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찬양 노래이다.

 

대영광송의 첫 부분은 전체의 서론이요 주제라 할 수 있다. “하늘 높은 곳에는 천주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가 14,14). 천사의 노래로서 성서에는 성탄날 밤에 노래했다고 되어 있으나 본래 부활을 위한 노래였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일생은 바로 하느님께 영광이 되며 평화를 위해서는 하느님의 원의와 은총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땅에서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들 즉 하느님이 선의로 돌보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란 잘못된 번역이다.

 

5세기경에야 로마에서도 성탄 축일, 순교자 대축일, 주일의 교황 미사, 주교 미사에서 대영광송을 노래하였다. 당시 사제들은 부활 주일, 사제 서품 첫 미사 때에만 노래하도록 제한을 받았다. 12세기 이후부터 사순 시기를 제외한 모든 주일 미사에 허용되었다.

 

둘째 부분은 하느님 아버지, 하늘의 임금, 전능하신 성부께 대하여 연속적인 찬미를 드리는 신앙 고백이다.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흠숭하나이다, 높이 받드나이다, 감사하나이다. - 하느님께 바치는 최상의 찬송이요 노래의 향연이다.

 

셋째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향한 찬미와 간청이다. 먼저 그분의 위치와 신분을 나타내는 호칭이 나온다. ‘주 천주, 성부의 아들,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주’임을 고백하면서 연속으로 자비를 간청하고 있다. 즉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특히 끝 구절에서는 그리스도 홀로 ‘거룩하시고, 주님이시고, 높으심’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인간도 감히 주님으로 행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신과 함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하느님이심을 단정하고 있다.

 

 

영광의 찬미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그리스도의 피와 땀, 죽음 덕분에 구원된 백성이다. 즉 예수께서 불러모아 놓은 백성이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자라나고 성숙해져 은총의 길을 간다.

 

성당에 모인 신자들은 온 인류를 대신하여 감사하고 찬미하며 외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영광송이다. 이는 또한 찬미가(Hymnus)이다. 그러므로 목이 터지도록 외쳐야 한다. 하늘에 계신 분이 들리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주일과 축일 미사 중에는 되도록 대영광송을 읽지 말고 노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경향잡지, 1991년 9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천안 봉명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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