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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어른은 집안의 구심점(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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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1,547 추천수0

[전례생활] 어른은 집안의 구심점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산다. 가족과 친척들의 혈연관계에서부터, 같은 고장 출신이라는 지연관계,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학연관계, 아파트 반모임이나 이런저런 계모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수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모든 모임이 그렇듯이 거기에는 모이게 하는 어떤 힘, 어떤 매력을 띠고 있는 구심점이 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유대 관계는 단연 혈연관계일 것이다.

 

혈연관계에서 가장 큰 구심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집안(혈연집단)의 어른일 것이다. 가족의 식구들은 명절이 되면 모인다. 또 특별한 때에 모인다. 그 특별한 때란 다름아니라, 집안의 어른을 기억하는 특별한 날이다. 살아계시다면 생일이라든지, 환갑이니 칠순이니 하는 그런 날들이 특별한 날이다. 돌아가셨다면 기일 같은 날이 특별한 날이다. 그 날에 가족들은 모인다. 어른을 축원해 드리고 기억하려고 모인다.

 

그러니 집안의 구심점은 아무래도 어른일 것이다. 형제들이 저마다 따로 흩어져 살더라도 어른이 계실 때에 잘 모이지만, 어른이 계시지 않으면 덜 모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집안의 어른이 식구들을 모이게 하는 구심점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준다.

 

교회도 한 식구이다. 신앙이라는 이른바 ‘신연(神緣)관계’로 맺어진 한 집안 식구들이다.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 부모나 형제나 자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신연관계로 맺어진 신앙은 혈연이나 학연, 지연이나 그 어떤 것보다 강한 관계이다. 하느님과 맺은 관계이니 어찌 이보다 강한 인연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생활하는 한 집안 식구들이다. 그래서 서로를 형제 자매들이라 하지 않는가. 교회의 궁극적인 어른은 주님이시지만, 우리가 접하고 느낄 수 있는 교회의 어른도 계신다. 곧 최고 목자이신 교황님이시다. 유식한 말로 교황님은 ‘그리스도교 백성이 같은 신앙과 같은 통교(친교)를 이루는 일치의 가시적인 원리이며 기초’이시다. 그래서 전 교회가 교황님을 존경하고 사랑을 드린다. 또 교구에는 교구장 주교님이 어른이시고, 본당에서는 본당신부님이 어른으로 계신다. 이분들을 중심으로 우리 신앙의 가족들은 모이는 것이다. 그분들이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초세기 교회 때부터 이런 신앙의 가족들은 교회의 어른을 공경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2월 22일)이다. 이날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셔서 온 세상의 교회에 봉사할 권한을 주시고 지상의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한다.

 

그렇다면 이 축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날짜는 본래 로마에서 가족들 가운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날이었다. 이 관습에 따라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바티칸 언덕(지금의 베드로 대성전)에서 공경의 예를 드렸는데, 이것이 베드로 사도좌 축일의 기원이 되었다.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를 함께 기념하는 대축일(6월 29일)이 있지만, 갈릴래아의 어부를 교회의 최고 목자로 공경하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만 지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 사도가 우리 교회에서 어른이시기 때문이다.

 

이날 전례에서, 베드로는 ‘바위’라는 뜻이다(영성체송). 교회의 반석이며 기초이고 구심점이 되는, 보이는 어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수난하시고 죽으셨다는 고난의 증인이며, 어른(원로)으로서 형제들이 굳은 믿음을 갖도록 ‘양들의 모범’이 되셨다(제1독서). 그래서 우리들도 베드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신앙을 선포해야 한다(복음).

 

그렇다. 어른이시지만 인간이시기에 약점도 있고 불완전함도 있다. 하지만 주님께 대한 굳은 신앙이 그분을 우리 교회의 어른이 되게 하였고, 우리 믿는 이들의 모범이 되신 것이다. 우리도 든든한 반석, 믿는 이들을 모이고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구심점의 힘, 곧 신앙을 다시 고백해 보자. 우리의 교회를 굳건하게 지켜주고 더욱 하나되게 만들어주는 것은 ‘신앙’이기 때문이다.

 

[경향잡지, 2001년 2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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