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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미사

제목 [상징] 전례 안의 침묵: 마음속에 울려퍼지는 하느님의 음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2,602 추천수0

마음속에 울려퍼지는 하느님의 음성 - 전례 안의 '침묵'

 

 

옛말에 ‘침묵은 금’이라고 하였다. 침묵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말해준다. 사람은 말을 한다. 말을 많이 하다보니까 불필요한 말, 무의미한 말, 해를 끼치는 말,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난무한다. 그래서 “말로써 말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하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때로는 침묵이 필요하며, 침묵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례는 기도이다. 그래서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이다. 말을 주고받는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한다. 말이 오고 간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 때도 간혹 어느 정도 약간의 정지하는 듯한 시간을 갖는다. 상대방이 말을 하면 즉시 받아서 숨돌릴 틈도 없이 말을 되받아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뜸도 들이고, 때로는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때로는 들은 말을 생각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대답을 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 전례는 거행이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기도하고 말하고(낭독하고) 노래함으로써 하느님과 대화의 자리를 갖는 것이다. 전례에서도 침묵은 필요하다. 침묵은 전례 안에서 본질적인 요소이다. 교회는 교우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촉진하려고 합당한 때에 필요한 침묵을 지켜야 하고, 미사 중의 침묵도 미사의 한 부분으로 제때에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전례헌장, 30항; 성음악 훈령, 17항; 미사 전례 총지침, 23항). 침묵은 노래, 기도, 동작과 함께 전례의 기본 요소이다. 이 침묵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자 말을 하지 않는 ‘창조적 침묵’이다. 전례, 특히 미사 중에 공동체는 다양한 종류의 침묵을 지키게 된다.

 

① 마음을 준비하는 침묵이다. 공동체가 하느님 대전에 서있음을 생각하고 하느님께 열심한 마음을 갖기 위한 침묵이다. 가령 참회예식 때는 양심을 성찰하고 죄를 뉘우치며 반성하려고 침묵한다. 그리고 사제가 본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를 시작할 때 ‘기도합시다.’ 하고 공동체를 초대하면, 교우들은 침묵을 지키면서 사제의 기도에 동참할 준비를 갖추고, 동시에 자신들의 기도를 하느님께 바친다. 또한 보편 지향 기도(신자들의 기도)를 바칠 때 공동체는 침묵을 지킴으로써 기도 지향에 동의한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② 사제가 드리는 기도를 경청하고 이해하며, 그 기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들기 위한 침묵이 있다. 곧 사제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직무기도’를 바칠 때, 교우들은 사제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며 사제와 함께 기도를 드리게 된다. 곧 공적인 기도와 개인기도의 결합을 이루는 내면화를 위한 침묵이다.

 

③ 말씀을 듣기 위한 침묵이다. 이 침묵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귀담아듣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자세이다. ‘듣는 것’과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미사에 가기 전에 우리는 그날 미사의 성서를 읽고 묵상해야 하지만, 전례 중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순간에는 듣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전례 중에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에 교우들이 「매일 미사」 책을 함께 보거나 읽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말씀하시는 분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그분의 말씀을 내 생명의 양식으로 삼겠다는 마음의 자세까지 드러내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④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난 다음 지켜야 하는 침묵이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뜻이 있고 소중하기 때문에, 여기에 알맞은 응답을 하려면 그 말씀을 되새기고 묵상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체와 더불어 미사 전례에서 제공하는 영신의 양식이다. 성체의 양식을 취한 뒤에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드리는 침묵을 필요로 하듯이, 말씀의 양식을 받은 다음에도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을 고요히 음미할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⑤ 기도하기 위한 침묵이다. 영성체 전후에 공동체는 침묵 중에 감사기도를 드리게 된다. 특히 영성체 후 그날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침묵 중에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은 특권이며 은총이다.

 

이렇게 침묵은 전례의 한 가지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내면화의 순간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곧 침묵은 교회의 공적인 기도와 집회 구성원 각자의 개인기도 사이의 연결을 합치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침묵은 여러 곳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침묵이 냉대받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례 거행에서 지나치게 긴 침묵은 거행의 불균형을 이루게 되므로 피해야 한다.

 

침묵은 전례 전체에서 중요하며 전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적당하고 알맞은 침묵을 통해 전례가 더욱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동체가 함께 노력해 보자.

 

* 나기정 다니엘 - 신부, 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경향잡지, 2002년 8월호, 나기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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