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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초기 교회의 일상 기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2 조회수1,557 추천수0

[전례 해설] 초기 교회의 일상 기도

 

 

예수의 기도 생활

 

예수께서는 자주 기도하셨다. 그분은 혼자 기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공동으로도 기도하셨다. 그분의 기도는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함이었고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의 매일 활동은 기도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그 활동은 기도로부터 흘러 나오는 듯했다. 예수께서는 한마디로 아버지께로부터 당신 사명의 계시를 받았을 때부터 시작하여 당신의 생애를 다 마치는 그 순간까지 기도가 당신의 메시아적 직무와 빠스카 희생을 생동화시켰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다(성무 일도에 관한 총지침, 4항). 참으로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이셨다.

 

 

원시 교회의 기도 생활

 

예수께서는 당신이 친히 하신 것을 행하도록 명하셨다. 그분은 “늘 깨어 기도하십시오.”(루가 21,36; 1데살 5,17 참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원시 교회는 사도행전과 사도들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예수의 모범과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사도행전에 보면 제자들이 제3시(오전 9시)에 함께 모였는 바, 이는 기도를 위한 모임이었을 것이다(2,1-15 참조). 베드로 사도는 제6시(낮 l2시)에 기도드리러 옥상에 올라갔고(사도 10,9 참조), 베드로와 요한은 제9시(오후 3시)에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 성전에 올라갔다(사도 3,1 참조). 그리고 바오로와 실라는 한밤중에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사도 16,25 참조).

 

원시 교회는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도하면서 모든 중요한 일을 준비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기도드리며”(1,14) 성신의 내림을 준비했고, 유다의 후임을 선출할 때(1,24-26), 일곱 명의 부제를 뽑을 때(6,6) 기도하였다. 이 부제들도 열두 사도들이 기도에 더욱 전념케 하기 위해 선출된 것이다(6,4). 또한 박해를 당하는 사도들도 열심히 기도드렸다(4,24-30).

 

그럼 그 당시 기도 모임은 어떠했을까? 바오로 사도는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에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골로 3,16)라고 말하면서 기도 모임의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에페 5,19 참조). 그가 전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설교하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불렀던 것으로 보이는 찬미가가 바오로 서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에페 5,14, 필립 2,6-11; 골로 1,13-20; 1디모 3,16 참조). 묵시록도 원시 교회에서 바친 찬미가의 흔적을 전해 준다(5,9-14 참조). 사도들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를 항구히 그리고 끈기 있게 바치도록 권고해 준다”(성무 일도 총지침, 5항). 원시 교회 신자들은 유다인의 관습대로 기도할 때 대개 “무릎을 꿇거나”(사도 9,40; 1열왕 8,54 참조), “손을 쳐드는”(1디모 2,8; 1열왕 8,22 참조)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로마 8,15) 기도했는데, 이는 유다인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기도 양식이다. 신자들은 공식적인 기도 끝에는 구약 시대 전례 관습대로 “아멘”이라고 응답했다.

 

 

교부 시대의 기도 생활

 

그리스도인의 일상 기도에 대한 첫번째 언급은 “디다케” 제8장에서 발견된다. “디다케”는 이렇게 기술한다 : “여러분은 위선자들처럼 기도하지 말고, 주님께서 당신 복음에 명하신 대로 이렇게 기도하시오.” 그리고 주의 기도가 인용되고, 이 기도를 하루에 세 번씩 바치라고 권고한다. “하루 세 번”이란 말은 나중에 제3시, 제6시, 제9시에 바치는 기도와 연결되는데, 아직 이 시간들은 법정(法定) 시간도 아니고 법정 시간경도 아니며, 공동으로 바치는 공적인 기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사적인 기도 시간에 지나지 않고 성직자와 신자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했던 기도 시간일 뿐이다. 떼르뚤리아노(+220년 이후)는 제3시, 제6시, 제9시 기도와 자정 기도에 대해 언급하며 “낮이 되고 밤이 되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에 관해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식사나 목욕 전에 기도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히뽈리또(+235년)는 아침 일찍, 제3시, 제6시, 제9시, 저녁, 자정, 닭이 울 때 등 하루에도 여러 번 기도하였다고 증언한다. 그에게는 구원하시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이 하루 전체 기도의 주제가 된다. 그는 적어도 전례적 성무 일도의 두 가지 시간경을 위한 시작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에 의하면 부제와 사제들이 주교댁에서 규칙적으로 신자들을 가르치고, 주교와 함께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이다. 이때 신자들은 아침에, 이 모임에 오도록 권고받는다. 나중에 독서와 기도로 이루어진 법정 시간경들이 형성된 것처럼, 그러한 가르침은 분명히 성서의 독서를 포함했다. 동일한 원천에서 아가페가 개최된 날의 저녁 경신례가 언급된다. 아가페는 빈민들과 과부들을 위해 공동체의 부유한 구성원에 의해 행해진 저녁의 공동체 식사이다. 맨 먼저 축복된 빵이 분배되는데, 이 식사 전에 짧은 저녁 경신례가 거행됐다. 이미 어두워지는 시간이기 때문에 등불의 운반과 빛의 축복이 있었고, 그 다음 시편(알렐루야 시편들)들이 노래로 불려졌다. 첫번째 시편은 경우에 따라서는 주교에 의해 읽혀지고, 두번째는 사제에 의해, 세번째는 부제에 의해 읽혀졌고, 회중은 알렐루야로 응답했다. 물론 이것은 아직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경신 예배는 아니다. 그럼에도 3세기초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가 경신 예배로 발전하기 위한 첫번째 움직임이 있었음을 히뽈리또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자정 기도에 대해 히뽈리또는 비교적 자세히 언급한다. 한밤중이 되면 모든 피조물은 침묵을 지키고, 그의 창조주를 찬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연의 한밤중에서 열 처녀의 비유에서 이야기하는 한밤중으로, 즉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넘어감이 성취된다고 보았다. 항상 깨어 준비해야 하는 그리스도 재림은 옛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좋아한 생각이었다. 주님은 부활하셨고 다시 오실 것이다. 자정에 일어나 자정 기도 전에 손을 씻는 관습이 있었다. 어떤 거룩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손을 씻는 상징적 행위이다. 이어서 두번째 씻음이 있다. 손에 숨을 내쉬어 손이 젖게 하고, 그리고 나서 십자 표시를 해야 한다. 이 축축함은 세례 후 성령이 머물고 있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습기 있는 이 입김은 정화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히뽈리또는 일상 기도에 대한 언급을 끝맺으며, “여러분이 그것을 그렇게 지키고 여러분의 교리 수강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유혹에 빠지거나 파멸되지 않을 것이니, 여러분은 항상 눈앞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고 말한다. 매일 여러 가지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항상 눈앞에 모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위를 갖고 생활하게 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초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일상 기도 시간들은 대략 법정 시간경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그러한 기도 시간들이다. 특히 3시경, 6시경, 9시경에 상응하는 세 가지 낮 시간경에서 분명하다. 4세기에 수도원이 생기면서, 수도자들은 옛날에 전승된 그리스도인의 기도 순서를 아주 흥미를 갖고 장려했다. 이제 각 시간경들은 시편으로 꾸며졌고, 그것은 공동으로 바쳐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적인 성격의 기도에서 공동 기도로 변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동 기도에서 전례적 기도가 생겼다. 그 후 모든 성직자들에게 의무를 지우는 법정 시간경이 나타났다. 이 시간경들은 수도자들에 의해 법정 시간경들이 된 것이 아니고 주교들을 통해 통상 경신례 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는 이미 옛 교회 안에서, 즉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에 적어도 많은 경우 가능한 한 모인 공동체와 함께 공동으로 교회 안에서 바쳐졌다.

 

이와 같이 초기 교회 신자들은 주일 경신 예배의 중심인 성찬례 이외에도 매일 공동으로 함께 기도를 드리거나 사적으로 여러 차례 기도드리며 그들의 신앙 생활을 성숙시키며 깨어 기도해야 한다(루가 18,1 참조)는 주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경향잡지, 1989년 6월호, 장석윤 비오(태백 장성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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