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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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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2,435 추천수0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 주님은 커지고 자신은 작아지는 겸손

 

 

어린이 놀이터에 가보면 여러 가지 놀이기구들이 있다. 그네도 있고 미끄럼틀, 철봉도 있다. 이런 것들은 혼자서 놀 수 있는 기구이다. 하지만 꼭 두 사람이 있어야 놀 수 있는 기구가 있다. 바로 시소이다. 시소는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끝 부분에 서로 마주앉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으로,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간다.

 

우리 전통 놀이 가운데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널뛰기가 그것이다. 시소와 조금 다른 점은 앉아서 하는 놀이가 아니라 서서 한다는 것이다. 또 기구에 붙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뛰면서 기구로부터 떨어지는 박진감이 있다는 것이다.

 

시소도 그렇고 널뛰기도 그렇듯이 서로 호흡이 맞아야 놀이가 잘 이루어질 수 있다. 한꺼번에 힘을 주거나 속도를 잘못 맞추면 제대로 놀 수가 없다. 한쪽이 힘을 주는 것에 맞추어 상대편에서 힘을 늦추어야 하고, 상대가 힘을 늦추는 것에 맞추어 이쪽에서 힘을 써야 한다. 그렇게 호흡을 잘 맞추면, 놀이는 참 재미있을 것이다.

 

세상 속의 이치도 시소나 널뛰기처럼 서로 밀고 당기고, 또 오르고 내리는 원리를 갖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특히 그렇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어둠이 물러난다. 또 해가 지면 어둠이 다가오고 밤은 더욱 깊어진다. 한 해도 마찬가지이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인 듯 싶었는데, 어느새 초여름 문턱에 와있다. 따뜻한 공기가 다가오면 추운 겨울은 물러간다. 낮이 길어지자 밤이 어느새 짧아졌다. 또 낮이 짧아지면 밤이 길어질 것이다.

 

그렇다. 지난 겨울 우리는 ’동지’를 지냈다. 동지는 밤이 가장 짧은 때이다. 그 다음부터 해가 길어지면서 주님이신 ’예수 탄생 대축일’을 지냈다. 이제 여름을 눈앞에 두고 ’하지’를 맞게 된다. 하지는 한 해 가운데 가장 해가 길고 밤이 짧은 날이다. 이날이 지나면, 낮은 점차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게 된다.

 

이렇게 동지 다음에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였다면, 하지 다음에는 무엇을 경축하면 좋을까? 교회는 일찍부터 주님의 탄생처럼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기념하고 경축하였다. 이렇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비추어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하지 다음에 지내게 된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세례자 요한 자신이 이야기하였다. "주님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그것이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다. 루가 복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 이야기, 예수님과 요한의 상반된 탄생 경위 이야기, 세례자 요한의 하느님 나라 선포와 예수님의 전교 활동 이야기 등과 같이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은 매우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일찍이 초세기 때부터 세례자 요한을 기억하고 축일을 지냈다. 복음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는 세상의 지배자에게 박해를 받아 순교한 분이다. 초대교회는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공경하였다. 세례자 요한도 그들의 표양이 되는 분이었다. 그래서 교회의 기초를 닦은 사도들도 공경했지만 요한을 더욱 공경하였다. 중세에는 수많은 신심단체들과 지역교회들이 요한의 전구를 바라며 그를 수호 성인으로 모시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대축일’로 정해 크게 경축하고 기뻐한다. 요한은 주님을 우리 안에 크게 모시기 위해 자신을 작게 만드는 겸손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겸손한 모습은 우리 믿는 이들이, 특히 현대 사회에서 따라야 할 커다란 모범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를 흔히 정보화 시대라고 말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더욱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이를 알리려 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더욱더 자신을 알리고 자신의 일을 선전하고 자신의 것들을 광고한다. 내면의 충실함보다 얼굴 알리기에 더 신경 쓰고, 자기를 알아달라고 자기 자랑을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 더 많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수고의 땀을 흘리는 이들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세례자 요한이 자신을 낮추어 작게 하고, 그럼으로써 주님을 더 크게 보여주셨듯이, 나를 내세운 모습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내보여야 할 ’주님’을 드러내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을 맞아 그의 낮추어진 모습을 묵상해 보자. 세상을 하느님 뜻에 따라 바꾸어 복음화하고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은, 내가 작아지고 주님을 내세우는 겸손에서 시작한다. 주님께서 오시는 길은 그렇게 닦고 준비하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0년 6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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