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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전례주년 안에 나타난 성모님의 생애: 성모님 축일을 중심으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3,886 추천수0

전례주년 안에 나타난 성모님의 생애 - 성모님 축일을 중심으로

 

 

신천동 본당 청년 레지오 마리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독히 더운 지난 여름 약 40일간 광야의 더위와 싸우다 떠난 주호식 바드리시오 신부입니다. 여러분과의 인연 덕에 이렇게 몇 자 적어 인사를 드릴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추억은 언제나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신천동에서의 추억은 앞으로 두고두고 생의 활력소가 되어 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과 처음 만난 훈화 때 성서 안에서 성모님에 대해 언급된 부분들을 통해 성모님의 일생을 묵상해 보자는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전례주년 안에서 만나게 되는 성모님과 관계되는 축일들을 통해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24절기를 통해 계절 감각과 농사 등에 활용해 온 것처럼 모든 인간은 어떤 일정한 주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예를들면 매년 한 번씩 다가오는 생일이나 영명축일은 1년을 주기로 한 개인의 축제일입니다. 교회 역시 1년을 주기로 그리스도의 구원역사와 신비를 묵상합니다. 이를 전례주년 또는 전례력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서 성모님과 성인들에 대한 축일도 함께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례주년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을 지니고 있고 또 실제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순서로 볼 때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축일은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성모영보 대축일; 3월 25일)입니다. 주의 탄생 예고 대축일은 말 그대로 꽃다운 처녀 마리아가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처음 듣고 목숨을 건 순명을 보여준 날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12월 25일로부터 만 9개월을 역산해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옛날에는 임신기간을 보통 9개월(?)로 생각했나 봅니다.

 

그 다음으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5월 31일)을 들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들은 후 바로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천사에 의하면 그 때 이미 엘리사벳은 석녀임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지 6개월째였습니다. 엘리사벳의 집은 예루살렘 서쪽 아인 카림에 있었는데, 나자렛에서는 약 4일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해 엘리사벳의 문안을 받고, 유명한 마니피캇을 불러 하느님을 찬미하였습니다. 평범한 한 여인이 자신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구원역사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감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벳의 집에서 세 달 정도 머물다 고향에 돌아온 마리아는 얼마뒤 호구조사에 참석하기 위해 요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베들레헴의 한 마굿간에서 아드님을 낳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그 아드님은 바로 인류를 구원할 하느님의 아들이셨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울러 죽음까지 무릅썼던 마리아의 신앙과 모성(母性)이 찬란히 빛을 발한 날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성모님이 겪으셔야 할 그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 역시 같이 시작된 날입니다.

 

유대인의 전통, 즉 율법에 의하면 사내아이를 낳은 산모는 40일째가 되면 성전에 가서 부정을 씻는 정결예식을 갖고 아이를 성전에 봉헌하게 됩니다. 만약에 딸을 낳았다면 그 배나 되는 80일째에야 겨우 성전에 가서 정결예식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12월 25일로부터 40일째 되는 2월 2일이 "주의 봉헌 축일"이 된 것은 이러한 유대인의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이 때 성서에 의하면 성모님은 시므온으로부터 앞으로 처절한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썩 기분좋지 않은 예고를 듣게 됩니다.

 

이상이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축일들입니다. 이 외에도 성모님에 관한 많은 축일들이 있습니다.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일생을 고통 속에서 사셨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므온의 예언에서부터, 이집트 피난, 12세의 아들 예수를 잃고 3일을 근심 속에서 찾아 헤매던 일, 젊은 나이에 요셉을 먼저 보내고 과부로서 힘들게 예수님과 함께 생계를 꾸리던 일, 그리고 집나간지 3년만에 십자가 위에서 숨진 아들을 안고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일 등 일생을 예수님의 길을 뒤따르며 어머니로서 아드님의 고통에 깊이 동참하셨습니다. 그래서 성 베르나르도는 성모님의 이러한 삶을 "정신적 순교"의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고통을 받으시고 오늘도 우리의 죄로 인해 고통받으시는 어머니의 고통의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 축일을 제정하였습니다.

 

또다른 대표적인 축일로는 날짜 순으로 보면 "천주의 모친 성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성모승천 대축일"(8월 15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12월 8일)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천주의 모친 성마리아 대축일"은 이단과의 싸움 속에서 생긴 축일입니다. 고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반대하는 이단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은 단지 인간일뿐 하느님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첫영성체 교리나 예비자 교리 때 잘 들으셨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한 인간이요 또 온전한 하느님으로서 신인양성(神人兩性)을 모두 지니고 계십니다. 교회는 이러한 이단으로부터 신앙의 진리를 보호하고자 예수님의 신성을 부각시킬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마리아가 '천주의 모친'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입니다.

 

둘째로 "성모승천 대축일"(8월 15일)이 있습니다. 교회의 전승(聖傳)에 의하면 성모님께서는 성신강림 후 15년간 에페소에서 성 요한의 보호를 받으며 여생을 보내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셨다고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슬퍼하는 사도들을 위로하며 "나는 하늘로 올라가도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살아있을 때보다도 당신들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중재를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성모승천 교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습니다. 성모님은 바로 우리의 도움이시요 중재자이심을 잘 알 수 있는 축일입니다.

 

셋째로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12월 8일)을 들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자신을 온전히 바친 성모 마리아가 원죄에 물듦이 없이 순결한 영혼을 지녔다고 기념해 왔습니다. 이 날은 마리아의 성탄 축일(9월 8일)에서 역산하여 9개월 전인 12월 8일에 지내고 있습니다.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가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특별히 수호성인으로 원죄없으신 성모 마리아를 두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성모님에 관한 축일은 더 많이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다 다룰 수는 없지만(이미 많이 초과되었습니다) 그만큼 교회 안에서 성모님께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계신지를 이 정도로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많은 축일들이 전례력에 따라 매년 돌아오고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이라면 다른 누구보다도 특히 성모님과 관계된 축일들의 의미와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지를 묵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연례행사 정도로 지나친다면 구세사 안에서 드러난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나의 구체적인 생활과 신앙생활과의 접목만이 의미있게 축일을 기념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청년 레지오 단원 여러분, 하루하루를 성실히 사는 젊은이로서 성모님의 일생을 여러 각도에서 묵상하고 나 자신의 삶과 견주어 봅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빛을 발견합시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시고 적극적인 스폰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성모님의 든든한 후원을 믿고 예수님과의 보다 깊은 일치에로 정진하시기를 기도드리며, 저 역시 같은 지향을 갖고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로를 위한 기도와 관심 속에서 성모님을 더 많이 닮는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1994년 잠시 신천동 성당에서 지낼 때 청년 레지오의 부탁으로 준비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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