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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 주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2,404 추천수0

[전례 상식] 전례 주년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시어 전적인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사셨다. 인류를 위한 이러한 사랑과 헌신의 생애는 그분의 십자가 죽음에서 절정에 달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그분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는 결정적 사건이다. 인류를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건이 이제 전례 거행을 통해 계속된다. 그래서 전례를 그리스도의 사제직 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전례 거행 안에 현존하시며 당신의 구원 사업을 계속하신다. 그리스도의 신비가 교회의 신비, 전례의 신비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계속 성취된다. 그래서 전례는 또한 “그리스도의 현재화”로 이해된다.

 

그러나 교회는 매일 그리스도의 전 신비를 한꺼번에 경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에 이르기까지의 전 생애의 사건을 일년이라는 주기를 통해 기념한다. 이것을 우리는 총체적으로 “전례 주년”이라고 하고, 그것을 다시 일년 가운데 특정한 날들에 배열해 놓은 것을 “전례력”이라고 부른다. 이 전례력은 세속 달력의 단순한 교회적 변형이 아니다. 그것은 세속의 하루하루를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의 시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속의 하루하루가 구세사의 영원한 ‘오늘’이 된다. 교회는 전례 주년의 거행을 통해서 모든 시대의 신자들에게 주님의 풍부하고 다양한 구원의 은총을 똑같이 체험하게 한다(전례 헌장, 102항 참조).

 

 

1. 역사적 발전

 

전례 주년은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체적인 인격 위에 기초하는 것이다. 전례 주년은 역사의 시간 안에 실현되고, 오늘은 교회가 ‘기념’으로서, ‘현존’으로서 그리고 ‘예언’으로서 성사적으로 거행하는 그리스도의 신비 자체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례 주년은 세월이 흐르면서 파스카라는 중심적이고 전체적인 사건의 거행 외에 여러 가지 개별적인 신비들도 거행하게 되었다.

 

교회 역사의 초기에는 파스카 축제만이 복음 선포와 전례 거행의 유일한 중심이었다. 교회의 예배는 한마디로 파스카로부터 생겨나고 파스카를 경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초의 그리스도교 전례 안에서는 “주님의 날”이라고 부른 주일 이외의 어떤 다른 축일도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일과 거의 동시대에 유다교에서 개종해 온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으로 파스카의 연례적 경축으로 하나의 “대주일”(grande domenica)이 생겨나게 된다. 파스카의 연례 경축은 뒤에 파스카 삼일과 50일 축제로 확장되고, 4세기 이후 수난의 각 순간들을 묵상하고 재현하기 위한 욕구는 다시 성주간을 형성하게 한다. 그에 덧붙여 부활 성야 때 세례성사의 거행(이미 3세기초에)과 성 목요일 아침에 가졌던 참회자들의 화해 예식(5세기)은 성서의 “40일”에서 영감을 받은 파스카 준비 기간으로 사순절을 낳았다.

 

성탄 축제는 파스카 신비와는 별도로 4세기에 생겨난다. 성탄 축제는 무엇보다도 동짓날에 있었던 “지지 않는 태양” 축제라는 이교도들의 관습으로부터 신자들을 멀리하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탄생 전부터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들에 대해 육화의 신비에 관한 참된 신앙을 확고히 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4세기말에는 파스카 시기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대림절”이라고 불린 4주간 혹은 6주간의 준비 기간을 성탄 축제일의 앞에 두게 된다.

 

성인 공경은 순교자들에 대한 공경에서 시작되는데, 이것은 파스카 신비의 경축과 관련되었다. 순교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증언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는 행위로 간주되어, 순교자 축일에 순교 안에 드러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경축하면서 순교자를 공경하게 된 것이다.

 

마리아 공경은 역사적으로는 순교자 공경의 뒤에 시작된다. 특별히 에페소 공의회(431년) 이후에 발전하는데, 동방이나 서방에서 모두 마리아께 대한 전례적 공경은 하느님의 어머니로 기억하면서 성탄 시기 안에서 이루어진다.

 

전례 주년은 부활 시기와 성탄 시기를 두 축으로 하고, 그 사이를 “연중 시기”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시기를 중심으로 하는 전례 주년을 “시기력”(temporalis)이라고 하고,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들을 “성인력”(sanctoralis)이라고 부른다.

 

 

2. 성서-신학적 기초

 

전례 주년은 구원의 역사 위에 기초하고 있다. 히브리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 특징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셨다는 인식이다. 시간이 영원을 싣는 수레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역사 안에서 역사를 매개로 당신의 계획을 실현하신다. 전례 주년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느님의 신비를 거행한다. 그러므로 전례 주년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셨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일련의 사건들 위에 기초하게 된다.

 

구세사를 이루는 기초적인 구성 요소는 그리스도께서 창조된 모든 실재의 시작이요 마침이시라는 사실이다(에페 1,4-5; 골로 1,16-17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의 중심으로서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 안에 수렴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조로부터 마지막 완성에 이르기까지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계획을 알아볼 수 있는 열쇠이시다.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 중에서도 파스카 사건은 만물의 의미를 충만하게 하는 핵심이다.

 

전례 주년은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중에 일어난 여러 신비들을 기념하면서 인간의 살을 취하여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충만하게 성취한 그리스도께 신자들을 접촉하게 한다.

 

하느님의 구원 행위는 역사의 한 순간으로 사라지지 않고 모든 시대의 모든 민족을 위하여 계속된다. 그러므로 전례 주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도 계속되는 하느님의 구원을 여기에 현존하게 하는 예식적 혹은 전례적 차원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구약에서 이미 구원의 사건은 하나의 축제의 거행과 기념적 예식으로 계속되었다. 그 사건 이후의 모든 세대들은 그 사건을 예식으로 기념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을 현재 사건으로 체험한 것이다(출애 12,14; 신명 5,2-3; 출애 13,14-15 참조). 사건이 예식으로 기념되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모든 축제는 출애굽의 파스카 사건에 연결되어 있는 기념적 거행이다(레위 23,4-36; 신명 16,1-17; 민수 28,6 참조).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기념적 축제의 의미를 완성하셨다(마르 1,15; 사도 1,7 이하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성서가 성취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주님의 해, 즉 하느님의 약속이 청취되는 결정적인 구원의 ‘오늘’이 시작된다(루가 4,16-21; 사도 13,32-33 참조). 예수님의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1고린 11,24)는 명령은 만찬의 예식을 통하여 시간 안에 당신의 파스카를 계속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제 구원 자체가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시는 날까지 ‘기념적’ 예식의 거행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 안에 영속화한다. 이렇게 해서 전례 주년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와 전구세사의 모든 사건들의 단면이 예식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재현”은 단순한 반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며 또한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까지 계속 “성장하는” 것을 뜻한다. 그 모든 구원의 사건들은 전례 주년 안에서 그것들의 절정인 파스카를 재현하는 성찬례의 거행을 통해서 현재의 사건이 된다.

 

[경향잡지, 1994년 12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본지 주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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