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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모 동산의 허브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07 조회수6,535 추천수0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성모 동산의 허브들

 

 

언제부턴가 허브(herb)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사전에 허브는 ‘예로부터 약이나 향료로 써 온 식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를테면 푸성귀가 일반적으로 ‘가꾼 채소나 저절로 난 나물’처럼 사람이 먹는 풀을 통틀어서 일컫는 명칭이라면, 허브는 약의 성분이라든지 맵거나 향기로운 맛 등 독특한 효능과 풍미를 지닌 풀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도 그렇지만 의학이나 약학, 식품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는 허브가 치료제나 향신료로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허브들은 마땅한 우리 이름이 없어 서양 이름 그대로 통용되는 편인데, 예전에는 성모 마리아와 관련되는 이름으로 불렸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허브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건 음반이 나왔고, 거기에 수록된 노래들 중에 ‘스카보로 페어’(Scarborough Fair)라는 노래가 있었다. 남성 2인조 가수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러서 널리 알려진 이 노래는 본래 영국에서 구전 민요처럼 전해 오던 노래였다. 이 노래에서 음반의 타이틀이기도 한 네 가지 허브의 이름이 후렴구로 반복해서 불리는데, 파슬리(Parsley), 세이지(Sage), 로즈마리(Rosemary), 타임(Thyme)이 그것들이다.

 

중세 때부터 영국의 중요한 교역장이던 스카보로에서는 매년 8월 중순부터 45일 동안 장이 섰다. 장이 서면 유럽 전역에서 상인들이며 광대, 마술사, 음악인, 심지어 소매치기, 도박사, 거지들까지 몰려들었다. 당연히 물건도 사고 갖가지 구경도 할 겸 이곳을 찾는 갑남을녀들도 몰려들었다. 그렇듯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이다 보면, 알게 모르게 남녀 사이에 정분나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개중에는 그 사랑이 아쉽게 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하다가 헤어진 연인들의 이야기로 만든 노래 하나가 ‘스카보로 페어’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스카보로 페어’

 

실연한 남자가 친구 또는 지인에게 스카보로 시장에 가는 길이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노랫말을 살펴보면, 헤어진 두 연인이 말도 안 되고 뜬금없기까지 한 사항들을 서로 요구한다. 가령 남자는 헤어진 연인에게 솔기도 바늘땀도 없는 셔츠를 만들라는, 그리고 그 셔츠를 물이 없는 우물에서 세탁하라는, 그러면 그 여인은 그의 진정한 연인이 될 것이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한다. 이에 여자는 남자 연인에게 양의 뿔로 밭을 갈라는, 가죽 낫으로 작물을 수확하라는, 그러면 그 남자는 자신의 진정한 연인이 될 것이고, 자기는 솔기며 바늘땀이 없는 셔츠를 만들어 주겠노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사람들은 이 노랫말을 대개는 두 가지로 풀이한다. 하나는 이루어 낼 수 없는 부탁을 하고는 그에 따른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사랑의 정도를 가늠해 보고자 하는 것이란다. 또 하나는 실현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는 뜻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미련을 두지 말고 아예 포기하거나 잊어 주기를 당부하고자 하는 것이란다. 마침 베트남 전쟁이 치열했고 미국에서 반전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 노래는 전장에서 죽어가는 청년이 고향의 연인을 그리워하는 노래로 바뀌어 갔다는 맥락에서 볼 때는 나중의 해석에 다소 무게가 쏠린다.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노래에 굳이 허브가 등장하는 배경을 살펴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어쨌든 노랫말에 허브들이 나온다는 것은 이것들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낯설지 않은 식물이었으며, 그렇다면 허브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음직도 하다.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타임이라는 말의 어감이나 리듬감이 노래에 감칠맛을 더해 준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이 허브들이 상징하는 바는 아래에서 보듯이 각기 의미심장하다.

 

파슬리는 소화를 촉진하며, 쓰리고 아린 감정을 다독이고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중세에는 의사들이 정신적 치료를 위해서 파슬리를 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파슬리는 헤어진 연인 사이의 서먹하고 냉랭한 분위기를 해소하고 싶어 하는 염원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세이지는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내구성 또는 끈기를 상징한다. 또 켈트인들은 세이지가 힘과 지혜, 불사(不死)를 상징하고 또한 독소를 제거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찍부터 상처를(심지어는 뱀에 물린 상처도) 소독하거나 치료하는 데 세이지를 이용했다. 그런 점에서 세이지는 상심한 연인에게 힘과 지혜를 주고 싶어 하는 배려를 나타낸다고 하겠다.

 

로즈마리는 사랑과 신의와 추억을 상징한다. 그래서 중세에는 로즈마리를 신부(新婦)의 부케를 만들거나 결혼식장(교회)의 바닥에 뿌리는 데 사용했고, 오늘날에도 영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신부(新婦)의 머리에 로즈마리의 작은 가지를 꽂는다. 강한 향이 오래 지속되는 로즈마리가 신랑신부 사이에 길이 간직될 기억의 징표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로즈마리는 헤어진 연인에게 사랑과 호감으로 기억되기를 바라고, 가능하다면 본인도 신의로써 그 연인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심정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성모님과 관련된 이름으로 불리던 허브

 

타임은 질병을 치유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성분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소독제로 사용되어 왔고 또한 사랑과 용기를 의미했다. 그래서 중세 때 기사(騎士)의 여인은 타임의 잎을 기사의 갑옷에 수놓고 기사는 방패에 새겼다고 한다. 그리고 타임은 슬프거나 우울할 때 또는 긴장했을 때 기분을 전환하거나 자신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하기에 타임은 비록 헤어져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사람을 용기 내어 기다리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사랑이 깨어져 상심한 두 사람이 네 종류의 허브를 통하여 서로 포용하는 이해심을,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를, 한 남자만을 그리고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신의를, 어떤 어려움이라도 헤쳐 나가려는 용기를 가진 연인이 되기를, 다시금 진정한 연인이 되기를 부탁하고 격려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헤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사랑하던 연인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기를, 또는 돌아오기를 다짐하고 바라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헤어진 연인들의 쓰리고 아픈 심정을 나타내 준 허브들이 예전에는 성모님과 관련되는 이름으로 이렇게 불렸다. 파슬리는 ‘성모님의 작은 덩굴풀’(Our Lady’s Little Vine), 세이지는 ‘성모님의 숄’(Mary’s Shawl), 로즈마리는 ‘성모님의 작은 꽃다발’(Mary’s Nosegay), 타임은 ‘성모님의 겸손함’(The Virgin’s Humility)이라고 말이다. 만약에 헤어진 연인들이 서로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면서 허브들을 이런 이름으로 불러 댔다면, 그 심정은 얼마나 더 애틋하고 간절했을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9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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