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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미사

제목 [전례] 주일의 신학적, 전례적 의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2 조회수2,303 추천수0

[전례 상식] 주일의 신학적, 전례적 의미

 

 

주일의 신학은 우선적으로 주간 파스카로서의 주일의 개념과 실재를 설명한다. 이 개념은 주일에 관한 모든 다른 진술들의 기초요 핵심이다. 파스카 신비로부터 교회가 탄생했고(전례 헌장, 5항),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할 때까지(에페 4,13) 그 신비를 살고 그 신비를 통해서 드러나고 성장한다.

 

 

파스카 성사로서의 주일

 

주일은 무엇보다 전례적 표징으로 성사적 표징의 특징을 지닌다. 주일은 과거의 기억이고 구원 사건의 현재화이며 미래의 선포이다. 이 세 가지 차원이 주일의 거행 안에서 동시에 그리고 불가분리적으로 실현된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파스카 성사’로서의 주일에 대해 자주 말하고 있는데, 이처럼 주일에 ‘성사’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것은 주일이 과거사의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신비’ 즉 과거의 기초 위에서 현재에 실현되는 사건의 실재라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주일이 곧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생생한 현존을 실현하는 표징-신비라는 것이다.

 

주일은 성사의 품위로 들여 높여진 구원의 시간이다. 주일 거행은 그리스도의 역사 내 현존 양식인 교회에 의해 수행되는 인간적인 행위들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교회의 행위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의 행위를 ‘거룩한 신비’가 되게 하신다. 이 성사적 행위들은 크게 셋으로 구분된다. 곧 주일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말씀을 선포하고 들으며, 빵을 나누는 예식을 통하여 주님의 파스카를 거행하는 것이다(전례 헌장, 106항). 이 예식의 신비들을 매개로 주일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드리는 실제적인 효과를 내는 성사, 표징이 된다.

 

 

사건의 세 차원

 

주일은 파스카의 기념적 표징인데, 파스카는 자신 안에 용해되고 없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간의 흐름을 구원의 순간들이 되게 하는 사건이다.

 

현재의 실현 : 주일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넘어가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살을 지니신 연약한 상태로부터 영광의 상태로 넘어가셨다. 이러한 주님을 따라 모든 사람은 성사의 거행과 참여를 통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고 ‘지금 여기에서’ 파스카의 삶을 산다.

 

과거의 기념 :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은 구약의 모든 구원적 사건의 도착점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한다는 것은 옛 계약 안에서 하느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상기하고 완성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계약은 그리스도의 파스카의 예고요 예언이었고, 그리스도의 파스카는 출애굽이라는 파스카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며, 거기에서 시작된 새로운 창조를 기념한다. 이날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신 분의 생명에 참여하여 새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을 듣는다. 또한 새로운 세상에 속하는 기쁨을 누리고 그 세상을 정의와 거룩함으로 건설하라는 사명을 의무로 받는다.

 

미래의 예언 : 주일이 지닌 세 번째 차원은 미래의 혹은 종말론적인 차원이다. 주일은 선택된 이들과 함께 영원한 파스카를 거행하려 오실 부활하신 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예고하고 어떤 면으로 미리 체험한다. “우리는 이 지상의 전례에 참여할 때, 우리 순례의 목적지인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거행되는 천상의 전례를 미리 맛보고 그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상의 전례에서 모든 천상의 군대와 더불어 주님께 영광의 찬미가를 부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으로 나타나시고, 우리도 그분과 더불어 영광 중에 나타날 때까지 그분을 기다리는 것이다”(전례 헌장, 8항). 그러므로 그리스도 공동체는 주일의 전례 거행에 참여하면서 아직은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이미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교부들 특히 캅파도치아의 스승인 바실리오 같은 이는 주님의 날이 지닌 이 종말론적인 차원을 매우 심화시켰다. 여기서 주일은 부활하신 분의 날일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재림하시는 분의 날도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부들의 생각은 ‘여덟째 날’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주간의 첫째 날이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지시하는 젓처럼, 여덟째 날은 미래 세계의 완성을 암시하고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완전한 표징이 된다. 주간의 일곱째 날이 우주의 시간 속에 있다면 여덟째 날은 7일의 시간성을 초월하는 영원의 표정이다. 주님의 날은 세상의 시간으로 계산하는 7일이라는 주간 밖에 있는 미래의 날, 곧 여덟째 날이다. 도래하는 세상의 표상으로서의 여덟째 날의 개념은 주님의 날이 지닌 종말론적인 차원을 매우 적절히 표현해 주고 있다.

 

주일에 대한 전체적인 신학이 이제 분명히 밝혀진다. 주일은 세상 창조의 날이고 성서적인 할례의 날이며, 부활의 날이요 성찬례를 거행하는 교회의 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래하는 시대의 종말론적인 날이다.

 

[경향잡지, 1993년 12월호, 김종수 요한(주교회의 사무차장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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