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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5주일 제1독서(이사58,7-1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9 조회수944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일 제1독서(이사58,7-10)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 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7~9)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단식은 1년에 1회였다. 유다력으로 7월 1일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로서 모든 백성이 화제(火祭)를 드리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단식함으로써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날이었다 (레위23,26-3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율법의 규정 외에도 그들 스스로가 필요에 따라 자주 단식일을 정하여 단식하곤 하였다(판관20,26 ; 1사무7,6 ; 31,13 ; 즈가8,18-19 ; 에스4,16). 더욱이 예루살렘 성이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이래로 그들은 무려 칠십년 동안이나 오월과 칠월에 날짜를 정해놓고 특별 단식을 했다(즈카7,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형식적인 단식은 기뻐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 진실로 기뻐하시는 단식은 유다 백성이 전멸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테르를 위시하여 전 유다 백성이 행했던 단식(에스4,16), 이방 니느웨 백성들이 하느님의 심판의 선고를 듣고 했던 단식(요나3,5-10), 그리고 역시 하느님의 심판의 선고를 들은 아합이 스스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했던 단식(1열왕21,27-29)등과 같은 회개가 동반된 진실한 단식이었다.

 

반면에 이사야 58장 3절에 제시된 이스라엘 자손들의 단식은 마치 이방인들의 자녀를 불살라드려 우상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조종하려 했듯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여 하느님을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 의식적 행위에 불과하였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심령으로 통회하며 회개에 부합된 자세를 취하는 자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이사57,15)을 깨닫지 못하였다.

 

죄에 대한 쓰라린 뉘우침과 진실한 삶의 변화를 지향하고 수반함이 없이 하느님의 축복을 끌어내기 위한 단식이었기에, 하느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책망하셨다.


이사야 58장 6~7절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시는 단식에 대한 세부사항을 살펴보면, 밥을 굶거나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이것은 혹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속죄일에 하는 단식의 영원한 규정 (레위16,31; 23,26-32)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단식의 외적 규정을 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밥을 굶어 자신의 육체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본문에 제시된 것처럼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사랑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다.

 

단식을 하는 목적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얻고 그의 자비를 구하기 위함인데, 자신은 정작 자신의 자비를 기대하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억압하고 학대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모습이며,그런 삶을 사는 자가 어떻게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사야 58장 6~7절에는 바른 단식을 하는 자가 지켜야 할 규범이 각각 네가지씩 나열되어 있다. 이사야서 58장 6절의 네가지 한 마디로 '자유'이며, 이사야서 58장 7절 네 가지'실천적 자비'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모두 이스라엘 자손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경험한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탈출20,2; 신명8,2`4; 예레29,10; 이사53,1~12; 55,1~7).

 

'불의한 결박'이란 주인 혹은 권세자가 종이나 백성들에게 부당하게 채운 족쇄나 결박 지칭한다.

'멍에'(mota; 모타) 소나 나귀의 목에 지운 멍에 혹은 소의 코뚜레 같은 것으로서 사람이 힘있는 짐승을 몰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이사야는 이러한 비유적 표현을 통해 힘을 지닌 자가 힘 없는 자들, 곧 사회적 약자들의 자유를 속박하고 그들로 하여금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하는 비정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다 생생하게 전한다.

그리고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르는 자들과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하는자들 사이에 서서 그것을 중단시키는 일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단식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억압받는 이'에 해당하는 단어 '레추침'(retsutsim)의 원형 '라차츠'(ratsats)는 원래 강한 타격을 가하여 산산조각으로 박살내 버리는 것 의미한다. 권세자에게 압제와 학대를 당하고 삶의 모든 기반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불쌍한 사람들 말한다(판관10,8 ; 2역대16,10 ; 아모4,1).

 

'자유롭게'에 해당하는 '호프쉼'(hopshim)이란 표현은 '펼치다','해방하다'등의 의미를 지닌 '하파쉬'(hapashi)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일반적으로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된 상태 의미한다(탈출21,2).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구조적, 제도적 부조리로 얼룩져 있었고, 기득권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로 착취를 합리화하던 상황을 전제 하고 있다.

이들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부조리한 멍에를 벗겨내며 육체적 자유뿐 아니라 경제적 자유를 부여하는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단식이라 지적하고 있다.


이사야서 58절 7절에서는 단식의 참된 정신 가운데서 자비를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열거법을 사용해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의식주라는 인간 생존을 위한 3대 필수 조건과 혈육(골육)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열거되고 있다.

 

'굶주린 이' 영적인 의미 보다는 문자적 의미가 더 강하다. '굶주인 이' 해당하는 '라라에브'(laraeb)의 기본형 '라에브'(laeb)는  단지 한두끼 굶어 배고픈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여러 끼니를 걸러 배가 고파 쓰릴 정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야고2,16).

 

'떠도는 이들' 단순히 집이 없어 떠도는 가난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국가와 집을 잃고 떠돌며 방황하는 가난한 사람들 또는 부당한 채권 독촉 따위로 집을 전당잡혀 빼앗기고 쫓겨나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고 간혹 사막의 모래 바람이 부는 집 밖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하는 일이므로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에게 숙소를 마련해 준다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건져준다는 의미까지 내포한다.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알아야 한다. 고대사회에서는 돈이 없어서 옷을 사 입지 못하거나 또는 입고 있는 옷마저 빚을 갚지 못한 이유로 빼앗기는 일이 흔히 있었다(탈출22,26).

겉옷을 이불삼아 사는 사람이 그것을 빼앗기는 날에는 잠을 잘때 살을 에는 견딜 수 없는 추위를 근동 지방에서는 맞이해야 한다.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본문은 가족 및 친척이 어려움을 당했을 경우 그것을 모른체하고 도와주지 않는 것이 하느님 앞에 큰 죄악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러한 일은 인간됨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당시에 흔히 자행되고 있었다.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마치 새벽의 태양빛이 온 땅에 자욱한 흑암을 순식간에 몰아내듯이 하느님의 축복이 사람들을 짓누르는 어둡고 고통스런 삶의 형편들을 뒤바꾸어주며 그야말로 광명한 삶, 복되고 은혜로운 충족한 삶이 되게 할 것이라는 뜻이다.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여기서의 상처는 파괴된 인간관계나 무너진 성읍, 실제적인 질병을 의미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하느님께서는 신속히 그 모든 것을 권능으로 치유하시고 회복해 주신다.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진실하게 단식을 행하는 자의 영적 안전과 보호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여 행진할 때에 하느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광야에서 그들을 호위해 주셨듯이 주님의 종의 대속적 고난을 통해서 얻어진 의로움으로 말미암아(이사53,11; 54,17) 어떠한 영적인 적들의 공격도 안전하게 막아낼 수 있는 영적 갑옷과 방패를 말한다.


'주님의 영광'이란 하느님의 위대함과 장엄하심 포괄하는 표현이다. 참된 단식을 실천하는 자들을 약탈자의 공격으로부터 막으시고 안전하게 지켜 준다는 의미로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고 표현했다.


'그러니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면' 해당하는 단어 '레샤우아으'의 원형 '슈아으'(shuah)는 구약성경에서 21회 사용된 단어로서 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그 어려움을 탈피하기위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부르짖는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나 여기 있다'에 해당하는 '힌네니'(hineni)는 '보라! 나를' 이라는 의미인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백성이 고난 가운데서 부르짖을 때에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자신을 내 보이시며 그에게 도움과 소망과 위로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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