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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주님 공현 대축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0 조회수2,024 추천수0

[이달의 전례] 주님 공현 대축일

 

 

전례신학적 성격

 

주님 공현(Epiphania) 축일로 불리는 1월 6일의 축제는 성탄 축제 시기의 두 번째 정점을 이룹니다. 고대사회의 사람들은 에피파니아(Epiphania)라는 표현으로 왕이나 황제의 오심을 마치 신성(神性)의 현현(顯顯)과 그분의 영광이 나타내 보이는 것과도 같이 표시했습니다.

 

우리 역시 신약성서 사도 바울로의 편지에서 이 같은 표현을 만나게 됩니다. 이 표현은 곧 그리스도를 뜻했습니다. 디모테오 후서는 강생 안에서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을 공현(Epiphania)으로 표현합니다. : “지금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출현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함을 빛내셨습니다.”(2디모 1,10) 다른 곳에서는 Epiphania로 영광 중에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의미했습니다. : “또 복된 희망이 이루어져,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시고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게 합니다.”(디도 2,13)

 

1월 6일의 공현 축제 표현에서 ‘에피파니아(Epiphania)’라는 단어가 받아들여졌다면, 그를 통해서 주님의 첫 번째 오심으로 여기는 강생이라는 사상만이 아니라, 영광 가운데 주님의 재림이 원래의 목적이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전례 안에서 그 의미를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축제 이름 안에서 그리고 이날의 미사양식 본문 안에서 강조되는 두 번째 사상은 왕이시며 주권자로서의 주님은 창조 전부를 포함하는 당신의 소유물 안으로 오신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만이 야훼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로 불림을 받고 구속된 이교 백성들도 하느님의 소유물인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대해 알려주는 마태오 복음 구절은 이 사상을 가장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이 사건 안에서 복음사가는 야곱에게서 별이 떠오르고 이스라엘에서 한 왕권이 일어나며(민수 24,17), 이스라엘을 다스릴 분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어(미가 5,1), 그 왕 앞에 이마를 대고 경배하리라(이사 49,23)고 예언한 예언자들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탄 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이들이 구유 앞에 서서 다윗의 아들이며 왕이요 메시아이신 분을 경배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주님 공현 대축일에서는 이교 백성들을 대표하는 이들이 새로 태어나신 세상의 주도자이신 분께 경배와 공경을 드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레오 대 교종은 주님의 강생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전 인류에게 계시되어 그들이 구원으로 불려졌다는 공현 축제의 이 같은 신학적 의미를 자신의 공현 축일 설교에서 잘 표현하였습니다. : “오늘 경축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을 연장시켜 주고 있는데, 두 축일에서 서로 비슷한 내용의 신비를 연이어 지낸다 해서 우리 기쁨의 강도나 믿음의 열정이 약화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태어나신 갓난아기가 작은 마을에 갇혀 계시면서도 벌써 온 세상에 선포하신 인류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백성 그리고 이 백성 가운데 한 가정을 선택하셨으며, 이 가정에서부터 전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본성을 취하셨지만 당신의 탄생이 어머니의 협소한 거처 안에 감추어져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만민을 위해 태어나신 그분은 즉시 모든 이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강론 31편, 제1 주님 공현 강론)

 

그러므로 공현 축제는 성탄 축제의 의미를 다른 차원에서 깊이 보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탄 축제에서는 주님께서 취하신 인간성이 그 중심에 놓여진다면, 즉 그 인간성이 베들레헴에서 아기가 구유에 누워졌을 때 이미 계시되었다면, 공현 대축일에서의 교회는 우리 인간(人間) 가운데 드러나셨고 육(肉)을 취하셨던 신성(神性)에로 그 눈길을 돌립니다. 하느님이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로서 비록 인간적 연약함 안에 자신을 계시하셨다 하더라도, 그분은 왕이시고 주도권자이시며 인간의 모습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전례는 인간적 사고의 한계성을 고려합니다. 즉 우리는 두 가지 지향,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적인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을 동시에 숙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두 축제는 서로 서로 성탄과 공현의 의미를 보완하고 서로에게 빛을 밝혀줍니다.

 

 

묵상

 

러시아에서 전해 내려오는 성탄 전설인 ‘넷째 왕의 전설’은 어떤 왕의 삶의 여정을 외양간에서부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전설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 아기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별을 좇기 위해서 어떤 한 왕이 길을 떠났다고 알려줍니다. 황금이나 유향, 몰약이 아닌 귀한 보석 세 가지를 선물로 가지고 넷째 왕은 길을 떠났습니다.

 

도중에 왕은 길가의 쓰레기더미에서 다섯 군데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 다 죽어 가는 한 어린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왕은 그 아이를 안고 마을을 찾아가서 자기가 가진 세 가지 보석 가운데 하나를 주고는 아이를 잘 보살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왕은 가던 길을 계속 가다가 이번에는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아이들과 그 어머니가 남편의 주검 뒤를 따라가는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죽은 남편은 많은 빚을 떠 안은 채 떠나갔기에 아이들과 그 어머니는 노예로 팔려가야만 하는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왕은 그들의 슬픈 처지에 마음이 아파서 가지고 있던 또 하나의 보석으로 그들의 부채를 다 갚아주고 그 가족을 구해 주었습니다. 이제 왕에게는 단 하나의 보석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왕은 계속해서 왕을 찾는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마을에 들렀는데, 그 마을은 전쟁 중에 있었고, 불행히도 패하여 적군들에게 점령되어,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갈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왕은 이들을 살리고 마을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하나의 귀한 보석을 내어놓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말없이 자기를 태워 준 한 필의 말뿐이었습니다. 다시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어떤 노예를 만났는데, 그 노예는 주인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죄로 큰배의 노 젓는 노예로 팔려가야 했습니다. 왕은 또 다시 마음이 아파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말 못하는 짐승인 말 한 필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왕은 자기 말을 넘겨주고 속전으로 자기가 대신하여 노 젓는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왕은 한 순간에 노 젓는 노예의 처지가 되어 배에 올랐습니다.

 

세월은 흘러서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어느덧 왕의 머리도 벌써 은백색이 다 되었습니다. 그는 이름도 모르는 어느 외국 땅에서 사형집행을 구경하기 위해 도시에 몰려있는 군중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형 날이었습니다. 못 박히신 분의 눈길이 자기를 내려다보았을 때, 왕은 불현듯 자신이 전 생애 동안 순례했던 여행의 목적이 이루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께 자신의 빈손을 뻗었습니다. 그분께 드리고자 준비했던 선물인 귀한 보석들은 오던 길에 이미 다 사용했기에, 그가 드릴 것이라곤 빈손뿐이었습니다. 그때 십자가에 달리신 왕의 내뻗어진 손에서 세 방울의 피가 그의 손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이 세 방울의 피는 한 분이 다른 분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로, 자기가 가졌던 세 가지의 보석보다도 더 영롱하고 빛이 났습니다.

 

위의 이야기가 비록 성서에는 실려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주님 공현 축제의 삼왕의 인사를 받으신 예수님의 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태어나신 아기 예수는 죽어 가시면서도 죄인에게 용서를 약속하셨던 분이시며, 온 세상에 참 기쁨과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월간 빛, 2004년 1월호, 최창덕 F. 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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