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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해욱 신부의 {내맡긴 영혼은} 나는 과거의 묵상기도의방법에
작성자정민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8 조회수1,189 추천수2 반대(0) 신고

나는 과거의 묵상기도의 방법에 반기를 듭니다.(2010, 7, 23)


먼저, 저는 이 글이 묵상기도의 최고수이신 분들을 제외한,
일반의 보통 평범한 신앙인들께 드리는 말씸임을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낮은 차원의 글이니, 묵상기도를 정복하신 분들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의 피정 경험은 교구사제 단체 연중피정과 연중 개인피정이 전부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곳에 들어와서 33일 간의 피정을 해 본 것 외에
어떤 피정 지도자의 지도로 피정지도를 받아 본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피정(피할避 고요할靜)이 뭡니까?
국어사전에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조용히 자신을 살피는 일"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늘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묵상(묵묵할默 생각할想)"입니다.
"묵묵히 생각하는 것"이 묵상입니다.


이 기회에 "명상(눈감을瞑 생각할想)"과 "관상(볼觀 생각할想)"도
 함께 살펴봅시다.


묵묵할 默자를 살펴보면 검을黑과 개犬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묵묵히 생각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개(犬)들이 설쳐댑니다.
생각이 깊어지면 어둠이 더욱 깊어져 내 마음 속의 개(犬)들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개(犬)들까지 설쳐대
내 마음 속이 온통 잡똥개들의 놀이터가 됩니다.
잡똥개들이 놀다간 자리에 개똥들만 지저분히 쌓여 있습니다.


저는 소신학생 때부터도 신학교에서 묵상하는 시간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묵상 시간이 길어질수록 제 머리 속은 개똥들이 계속 쌓여만 갔습니다.
우리 교회에 누가 "묵상"을 들여왔는지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생각(想)은 "개(犬)"입니다.
생각(想)이 늘어 갈수록 머리속이 "개판"이 되어 갑니다.
개들을 때려잡아야 합니다.
생각(想)을 때려잡아야 합니다.
상(想)에 매달리다 보면 허상(虛像) 잡고 부르스를 추게 됩니다!
허상에 매달리면 내 영혼이 상(상처傷)을 입거나 심해지면 상(죽을喪)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자살자들이 하느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끊게 되는 것도
너무 자기 생각이 깊어 온갖 싸나운 잡똥개들에 물어 뜯겨 죽게 되는
 것입니다. 뜻글자인 漢字가 정확한 뜻을 갖고 있음이 증명됩니다.


그 다음, 명상(瞑想)을 알아봅시다.
명상의 瞑은 "눈 어두울 명, 눈 흐릴 명"인데,
명은 눈目자와 "어두울 冥"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명상"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거나 생각에 잠기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명상을 오래하면 눈이 흐려지고 어두워져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존재하게 해 주신 하느님도 몰라보게 됩니다.


제가 국선도를 하는 사람들의 2박 3일 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아서
아주 잘 앱니다.
"자, 명상에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눈을 감으십시오.
눈을 감으시고 파아란 하늘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파아란 하늘은 하느님의 품입니다. 부처님의 품입니다.
하나님의 품입니다."
외치던 국선도 강사의 말이 아직도 제 머리 속에 생생합니다.


영혼의 눈을 흐리고 어둡게 하는 瞑想(검은 똥개)를 때려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靈眼이 열리어 내 영혼이 밝은 하느님의 지혜의 빛으로 채워집니다.


그 다음, 관상(觀想)을 알아봅시다.
관상의 觀은 "볼觀"인데 황새관과 "볼見, 나타날見"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황새가 한 바퀴 빙 돌며 먹을 것을 찾기 위하여 자세히 본다."는 뜻에서
황새 "관"자가 만들어졌다는데, 볼見 옆의 글자가 황새?자입니다.
그리고, 관상(觀想)은 제가 소지한 국어사전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얼 그리 바라다봅니까?
무얼 찾아 먹으려고 바라다봅니까?
하느님을 바라다봅니까?
하느님은 바라다보는 분이 아닙니다.
영안으로, 심안으로 바라다본다구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다가 죽은 사람이 어디 한 둘입니까?
구약시대에서부터도 사람들은 하느님을 보면 곧 죽게 된다고
잘들 알고 있었는데 그걸 알고 계십니꺄?


하느님은 인간이 바라볼 대상이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은 "느껴야 하는 분"입니다.
하느님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다보면 떡이 나옵니까, 밥이 나옵니까?
하느님을 바라본다며 비싼 밥 축내는 사람들이 이 세상 곳곳에 아주
 쫙 깔려 있습니다.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예언자를 통하여 잘 가르쳐 주셨는데도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율법하고만 부르스를 땡기니
하느님께서 하도 답답하셔서 직접 개인교수 하시러 내려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알기나 하면서 바라보는지 모리겠군요.
(크~ 터진다 터져~ 하느님의 심장이~~~ )


예수님이 뭐라 하셨습니까?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라 하시지 않았나요?
그리고 당신이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나요?


그 "사랑"이 뭡니까?
바라보는 겁니까, 느끼는 겁니까?
바라보는 거라구요?
바라다보고만 있어도 배부르다고 생각(想)하다가
싸나운 똥개들에게 물어 뜯겨 죽은 빙신들이 어디 한 둘인지 아십니꺄?
당신은 사랑하는 그이를 맨 날 바라다보고만 있습니꺄?
그러니까 사랑을 못 받지~~ 으이구~~!


사랑은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근원이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그것도 뜨겁게 느껴야 합니다.


하느님을 뜨겁게 뜨겁게 느낄 때,
바로 그때 하느님을 바라보면 하느님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보이는 하느님의 모습은 희미한 모습이 아니라
참으로 또렷한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 뵙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다보지만 마시고 얼렁 빨리 하느님을 느끼십시오.
하느님을 싸랑하십시오.
하느님을 뜨겁게 뜨겁게 싸랑하십시오.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뜨거운 눈물을 뜨겁게 뜨겁게 흘리십시오.
그 뜨거운 눈물을 타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이 보이게 됩니다.


묵상보다 명상보다 관상보다 먼저 행해져야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뜨거운 사랑"입니다.


묵상과 명상과 관상을 하는 사람에게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주고 가르쳐 주어야 진정한 하느님의 교사입니다.

 
백날을, 천날을 성당 바닥에 꿇어 앉아 머리를 쪼아리고
명상에 묵상에 관상을 아무리 따따따ㄸㄸㄸ블 한다 해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뜨거움이 마음 안에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묵상을, 관상을 한다는 사람들의 얼굴이
찌그러진 깡통처럼 되어 있으면 하느님이 들어오시려 하다가도
그냥 돌아가 버리고 마십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이 왜 그 모양 그 꼴입니까.
찌그리지 마시고 얼굴을 쫘악 피셔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야 하는데
많은 수도자분들의 얼굴이 어이 그리 차디 찹니꺄?
하느님은 뜨거운 분이시라 찬 곳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방법이 너무 인공적(人功的)인 것에서는
오히려 하느님을 찾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자연적인 자연스러운 방법에 하느님적인 하느님스러운 방법으로
하느님을 찾아야 하느님이 찾아집니다.


그 방법이 바로 "거룩한 내맡김"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였고
그 결과 이 세상에 죄와 죽음이 들어 왔기에 이제 그 자유의지,
내 뜻을 다시 자유의지의 주인께 돌려드림으로 앞으로
"하느님의 의지, 하느님 뜻"으로 살아가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그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거룩한 내맡김"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내맡김은 잘못된 인간의 역사를 다시 되돌려
"새로운 창조시대"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으로 하느님은 내맡긴 영혼들을 새로이 창조해 주십니다.
하나하나, 나날이 조금씩, 때로는 왕창 창조해 주십니다,
정화를 통해 말입니다.
더럽힌 내 영혼을 내 힘으로 정화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를 만드신 그분께서 그분의 거룩함으로 정화시켜 주셔야 합니다.


내맡긴 영혼들은 "묵상방법"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저 하느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품고 있으면
삶이 묵상이요, 관상이 됩니다.
마리아와 마르타를 함께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삶이 기도가 됩니다.


사랑합니다!
내맡긴 영혼과 하덧사 여러분!



(소리로 듣기)

 

 

  

 

 

  http://cafe.daum.net/likeamaria (다음 "마리아처럼" 카페 바로가기)

 

  

 

 

 

 

 이해욱 신부님의 책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가 출간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참으로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사는 것,

즉,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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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지사 (323)-734-338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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