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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혹에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은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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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8.15.성모 승천 대축일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22 조회수343 추천수1 반대(0) 신고

 

인간의 몸으로 살면서 유혹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유혹이라고 하면 꼭 성에 관한 것만 아닙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도 그 유혹의 대상이 달라서 그렇지 한결같이 유혹은 누구나에게 이기기 힘든 게 유혹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혹은 정말 인간으로서 참기 힘든 유혹을 말합니다. 그냥 누구나 쉽게 참을 수 있는 것도 유혹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걸 가지고 유혹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집회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326절입니다. “위험을 즐기는 자는 그 위험으로 망하리라.”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 이런 걸 생각합니다. 유혹에 넘어가느냐 넘어가지 않느냐는 순간 찰나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유혹이 주는 달콤한 쾌락에만 정신이 팔리면 앞으로 그 유혹에 빠진 대가를 치러야 하는 영적인 고통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순간의 달콤함에 그만 지는 바람에 유혹에 빠집니다. 유혹의 달콤함 뒤에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 달콤함도 오래가는 게 아니고 또 실제 그렇게 빠질 만한 게 아닌데도 순간 그걸 이기지 못해 죄를 짓고 말았다고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맙니다. 실제로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조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인 동시에 종교의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죄를 지을 기회에서 도망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만약 사제가 이런 내용의 강론을 하는 것이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강론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마귀에게는 항상 죄를 지을 기회를 찾는 영혼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런 영혼을 보면 쾌재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죄를 짓고 죄를 지은 것에 대해 뉘우치거나 회개를 하는 영혼을 보면 아주 슬퍼한다는 것입니다. 마귀 입장에서는 자기도 죽을 운명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 죽기 싫다는 것이죠.

 

죽더라도 같이 물귀신 작전으로 남도 같이 죽어야 자기 입장에서는 들 억울하다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성인이 한 말씀을 제가 현대판 버전으로 약간 우회해서 표현을 했습니다. 사실 성인의 말씀이 지극히 사실이다는 것을 많이 체험하기도 합니다.

 

죄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마음을 먹고 짓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죄를 짓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짓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가 자신의 탓으로 죄를 지은 것은 자신이 했기 때문에 남에게 탓을 돌릴 수 없지만 환경에 의해서 그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의지가 강하면 되는데 그게 쉽게 잘 되지 않을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하나 예를 든다면 누군가가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데 어떨 경우는 난처한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 질문자가 말은 안 해도 그 질문자의 의도에 맞게 동조를 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그런 게 정말 많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그게 대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오히려 외톨이되는 그런 경우도 생기는 걸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는 소죄라도 그런 입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또 공동체에서 튀지 않고 무난하게 생활을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었을 땐 참으로 힘든 것이 됩니다.

 

상대방은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왜 상대방에게 자신이 질문한 게 난처한 질문인지와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상대방이 죄를 짓게 되는 환경을 자신이 제공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니 참으로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말과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면 철저히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적절하게 그런 상황을 현명하게 모면할 방법을 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이 죄를 지은 자신이 남을 탓할 수가 있을까요? 송봉모 신부님의 말씀 중에 제가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하느님을 멀리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그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런데 이런 결론이 나온 배경 설명이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거라서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이 말씀이 맞는 말씀인 게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가 현명하고 지혜롭다면 그런 상황을 모면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신 건 없지만 무지한 것도 죄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무지는 단순히 모른다는 의미의 무지가 아니고 자신이 노력하면 알 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하지 않아서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이 게을러서 몰라 생긴 죄가 있다면 그 죄도 순전히 자신의 잘못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유혹을 이기는 지름길이 유혹을 피할 수 있는 길에 있다면 그걸 피하는 게 가장 좋은 상책일 것입니다. 이때도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지혜도 그냥 생기는 게 아닙니다. 나름 신앙적인 지식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무지하지 않아야 그런 지혜도 하느님께서 주실 것 같습니다. 결국 어떤 죄의 유혹에 넘어가느냐 넘어가지 않느냐는 자신이 죄를 이길 수 있는 지력과 이성이 잘 어우러진다면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런 조건이 아닌 상황보다는 좀 더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비결이 된다는 사실임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회서의 말씀처럼 위험을 즐기는 자는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은 대가에 대해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알면서도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라고 생각해서 나중에 자기에게 닥칠 위험임에도 그걸 지금의 달콤함 앞에서 즐긴다는 것입니다. 지금 즐긴 그 고통이 나중에는 처참한 형태로 위험이 닥칠 거라는 말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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