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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7년 성모의 밤 강론 (강우일 주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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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병조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24 조회수7,843 추천수42 반대(0) 신고

강우일 주교님의 제주교구 성모의 밤 강론 (2007. 5. 17.)

 

 

 

 

   미사에서 우리가 제일 자주 입에 올리는 단어는 무엇인가? 평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는 사람 만나서 인사할 때도 ‘샬-롬’ 즉 우리말로 하면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했다. 옛날부터 하도 전쟁을 많이 겪고 식민지로 전락해서 남의 나라 종살이, 나그네살이 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고난의 삶을 살아서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여망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집트를 탈출하고 난 다음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긴 했지만 지중해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던 팔레스타인들의 군대를 비롯하여 여러 이민족들이 쳐들어와서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런 위기 때마다 기드온이라든가, 삼손 같은 지도자, 즉 판관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나서서 싸움을 벌여 평온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일이 터지고 나서야 대처하는 판관들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었다. 다른 나라들처럼 왕국 체제를 이루고 왕을 중심으로 강력한 군대를 마련하고 도성을 쌓고 군비를 확충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임금은 오로지 주님뿐이니 주 하느님께 의지해야지 다른 이민족처럼 임금들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가르침을 따르기보다는 현실을 따랐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에도 왕조정치가 시작되었다. 사울이 첫 왕이 되었고 그 다음을 이어 다윗과 솔로몬이 왕이 되어 수많은 전투를 치른 다음 이스라엘을 통일 왕국으로 만들었다.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의 경제력, 군사력 모두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가서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올라갔고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솔로몬 임금이 죽고 나자 즉시 이스라엘은 권력 다툼 때문에 나라가 반쪽 나서 남북으로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북쪽에는 아씨리아와 바빌로니아 왕국, 남쪽에는 이집트 왕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번갈아가며 세력을 확장하고 약소국인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유다 왕국 임금과 이스라엘 왕국 임금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이쪽 붙었다가 저쪽 붙었다 하며 버티어 보려고 애썼지만 결국은 오래 못가서 양쪽 왕국 다 망했다.

기원전 8세기 경 북쪽 이스라엘 왕국과 시리아 왕국이 연합군을 만들어서 남쪽의 유다 왕국을 쳐들어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유다의 임금은 아하즈라는 사람이었다. 아하즈는 이 연합군을 맞이하여 두려움에 떨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 때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 수확할 때 기뻐하듯,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 정녕 당신께서는 그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부수십니다. 땅을 흔들며 저벅거리는 군화도 피 속에 뒹군 군복도 모조리 화염에 싸여 불꽃의 먹이가 됩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이사야 9, 1-5) 이 이사야서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손수 적들의 군대를 무력화시키고 평화를 이루어주실 것임을 알려 주신 것이다. 임금의 군사들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참 평화를 선물해 주실 수 있는 하느님께 의지하라는 말씀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이사야서의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마태오 복음 4장 15-16절에 보면 예수님이야말로 이사야서에 예언된 세상에 참 평화를 선물해 주러 오신 평화의 임금이시라고 선언한다. 예수님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의 독립과 해방을 꿈꾸며 무기를 들고 로마군대와 싸웠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종류의 폭력을 거부하시고 당신을 잡으러 온 군인들과 싸우려는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너는 내가 아버지께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실 것이다.’(마태 26, 52)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유일한 명령은 사랑이었다. 예수님은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여 평화를 이루려 하신 것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고 대립시키는 모든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근원적인 평화를 이루려 하신 것이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 27-28)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조금 전에 유다가 당신을 배신하고 당국에 팔아넘기기 위해 최후의 만찬 석상을 떠나는 것을 보셨다. 또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라고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고 응답하셨다. 당신이 믿고 의지하던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까지 배신당하고, 악의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모함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불의한 재판을 받고 십자가라는 형벌을 당하게 되셨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이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당신 목숨을 사랑의 제물로 봉헌하신다. 이것이 예수님이 남기고 가신 평화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뭐라고 인사하셨는가?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라고 거듭 말씀 하셨다. 그 평화는 그냥 ‘잘 있었느냐? 안녕들 하냐?’ 라는 인사가 아니다. 용서와 사랑으로 수난과 죽음의 길을 다 완주하신 예수님이 아버지께로부터 얻으신 참 평화를 이제 제자들에게 선물하신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 선포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말씀해 주신 진복팔단에서 벌써 평화에 대해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 우리 모두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되라고 초대하셨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예수님의 명과 초대를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여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다음에도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났고 수많은 인간 생명이 희생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무기의 파괴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살육이 자행되었고 역대 교황들은 이러한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재앙을 경고하고 단죄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재앙을 몰아내도록 호소해 왔다. 교황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 또 베네딕또 16세 교황께서 여러 회칙과 교황 문헌, 그리고 해마다 1월1일을 평화의 날로 정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발표한다.

 

   이러한 역대 교황님들의 가르침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교회는 모든 전쟁의 야만성을 단죄하고, 평화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정의와 사랑 안에서 평화를 견고하게 하고 평화의 수단을 강구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과 협력하기를 촉구한다.

 

   둘째,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고, 적대 세력의 균형 유지가 평화는 아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심어 놓으신 정의의 질서를 실천할 때 맺어지는 열매다. 인간의 의지는 나약하고 죄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평화를 이룩하려면 각자의 야욕을 끊임없이 정화하여야 한다.

 

   셋째, 군비 경쟁은 인류의 극심한 역병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군비 경쟁이 계속된다면 가공할 온갖 재앙을 언젠가는 일으키고 말리라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여야 한다. 평화는 무력의 위협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족들의 상호 신뢰에서 태어나는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더욱 인간다운 방법으로 마침내 군비 경쟁을 종식시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넷째, 이를 위해서는 완전한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곧 어느 한 나라와 자기 민족만의 행복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평화가 오늘날 명백히 요구하는 것은 마음과 정신을 자기 나라의 국경 밖으로 넓혀 국가 이기주의와 타국 지배 야욕을 포기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는 평화의 세기, 개인과 민족들의 형제애를 새롭게 의식하는 세기로 만들어가야 한다. 전 인류가 근본적으로 한 가족이 되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만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최근 제주도는 해군 기지 건설을 강행할 것을 발표하며 우리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을 무력화시키는 일들이 계획되고 추진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나는 사실 제주에 부임하기 전에 제주의 역사에 대해 잘 몰랐다. 4.3 사건에 대해서도 아주 피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제주에서 일하면서 불과 50여 년 전에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참극의 진상을 접하고 정말로 가슴이 아팠고 그런 비극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제주의 미래를 위하여, 한국 전체의 미래를 위하여 반드시 의미 있는 거름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정부는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선포될 수 있는 유일한 내적인 의미는 4.3 희생자들의 죽음과 고통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문화를 이룩하며 세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고 그 기억에서 배운 것을 밑거름으로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기억을 포기하면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제주의 땅은 4.3의 희생을 거름으로 참된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 3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생명들의 억울한 희생을 역사책 몇 쪽의 기록으로 잠재우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제주는 동북아의 평화 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 제주를 군사기지로 만들지 말고 평화의 기지로 만들어야 한다. 그 길만이 세계화로 갈수록 하나로 통합되어가는 지구촌의 역사를 선취하는 길이며 하느님의 원대하신 구원의 역사에 협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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