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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눈으로/지상의 어디에 하느님이 계신가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6 조회수1,278 추천수2 반대(0) 신고

 


지상의 어디에 하느님이 계신가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은 세상에 그 코스를

정해 주고 법칙을 만들어 주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토마스 제퍼슨은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심지어는 하느님이

인간의 사건에 영향을 끼쳤다고

암시한 구절들을 모조리 자신의

성서에서 지워버렸을 정도였다.

평생에 하느님의 손길을 실제로

체험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믿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에 그것을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은 단순히 신화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나 자신은 그것을 믿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인생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느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교로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던

나이 많은 이웃 어른에게

작별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어른은 내가 신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자기가 얼마나 실망했는가를

나에게 얘기해 주었다.

그때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주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어른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이 세상에는 하느님이 없다네,"

우리 대부분처럼 그 어른도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많은 슬픈 일을 경험해 왔으며

사랑의 하느님이 그러한 고뇌로

가득 찬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

나갈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작별이 토론장이

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그 어른의 친절에

감사하고 무사히 지내기를 빌었다.

단 한 순간도 나는 그 어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른의 말에

대해서 별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뒤에 나는 예수회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고

엄격하기가 짝이 없었다.

우리는 검은 색의 길 다란 수단을 입고

하루에 2,3시간씩 장궤를 하고 기도했다.

아침이면 5시에 기상을 하고

매일 밤 9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30분씩 두 차례의 오락 시간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라틴어로 말하고

"카리시메"라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해병대의 신병 훈련소 같았다.

이런 와중에 나는 갑자기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옛 친구들의 말이

다시 뇌리에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새로운 무게를

믿음의 기초 위에 얹을 때는

그 새로운 짐을 떠받치기 위해

더욱 강한 믿음을 계발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금은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갑작스러운 의문에

동요를 일으켰다.

"정말로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더할 수 없이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몇 달 동안 나는 이 문제 때문에

괴로워했다. 하느님은 우리의

빈 공간을 당신의 응답으로

가득 채워 주기 전에 우리 내면의

공백을 그 질문으로 하여금 무자비하게

도려내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수련수사들이 성당에서

기도할 때 그들의 얼굴을

지켜보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모두 너무나 경건하고

신심이 깊어 보였다.

그런데 나 혼자만이 속이

텅 비어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저녁기도를 시작했을 때

하느님이 나를 접촉했다.

갑작스런 번갯불과 함께

내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꼈다.

마치 길고 긴 춥고 힘든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법열로

가득 차서 날아가는 풍선 같았다.

그것은 수련수사를 신병 훈련소에서

조그만 지상의 천국으로

이동시킨 것과 같은 체험이었다.

내가 하느님의 존재를

다시 부인하게 된다면

그 순간의 현실과 그 체험의

현실을 부인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다른 의문과 새로운 곤란

새로운 암흑의 기간 그리고

은총의 새로운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현실은 경험으로만

알 수 있다는 것이 사실처럼 생각되었다.

우리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어 볼 때까지는 그것이

어떤 맛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쩐지 우리가 어떻게든

평생에 하느님의 접촉을

경험하게 될 때까지는 하느님의

사랑의 부드러움과 충실함을

정말로 알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믿음의 눈으로

(존 파웰 지음 / 정성호 옮김)

- 성바오로 펴냄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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