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기분 좋은 복음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3-09 조회수2,313 추천수34 반대(0) 신고

3월 10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마태오 25장 31-46절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 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기분 좋은 복음>

 

오늘 복음만 나오면 저는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특별히 "양은 오른 편에, 염소는 왼편에"라는 구절을 낭독할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구요? 제 성(姓)이 양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제 때의 일이었습니다. 다른 두분 신부님과 함께 합동미사를 드렸었는데, 주례 신부님을 중심으로 염신부님이 왼쪽에 서셨고 양가인 제가 오른 쪽에 섰었는데, 하필 그 날 복음이 오늘 복음이었습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복음을 낭독하던 저는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부분에 이르러서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그제는 한가지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한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물론 이곳에 있다가 슬며시 튄 아이였지요. 뭔가 할말이 있는 듯 했었는데, 우물쭈물하길래, 제가 그랬죠. "무슨 말이든 괜찮으니 어서 말해보거라." 아이는 몇 달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가서 사느라 나름대로 죽을 고생을 했던 것 같았습니다.

 

요지는 이랬습니다. "솔직히 몇 번이나 수도원 정문 앞에까지 왔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돌아갔었다. 오늘은 마음 크게 먹고 왔다. 처음부터 다시 한번 시작해보고 싶다."

 

마음 한편으로 "그 마음이 과연 몇 일이나 갈까?" 의심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스스로 찾아온 아이가 너무도 기특해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간 아이들을 뒷바라지 해주고 있는 형제들에게 너무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막다른 골목 앞에 선 아이가 더 이상 나쁜 곳으로 빠지지 않고 다시 이곳으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노력해준 형제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살다보면 별별 아이들을 다 만납니다. 아무런 인생의 목표도 없이 애늙은이들처럼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아이들, 이유 없이 반항하고, 무례하게 대꾸하는 예의도 뭣도 모르는 아이들, 언제나 받는 데만 익숙한 아이들.

 

그러나 아무리 문제성이 많은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끝없이 용서하고 인내하고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형제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언젠가 소년분류심사원에 근무하시던 선생님 한 분이 제게 해준 한 말씀이 언제나 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신부님만은 저 아이들한테 속아주셔야 합니다. 신부님마저 저처럼 비관적으로 아이들 생각한다거나 직업적으로 대한다면 더 이상 이 세상에 희망이 없습니다. 신부님마저 저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포기한다면 이 세상은 끝장입니다."

 

진정한 스승은 "돌아온 탕자를 품에 안고 기뻐하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의 부족함과 무례함, 배은망덕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용서하고, 다시 한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스승입니다.

 

이런 스승이야말로 마지막 날에 예수님의 오른 편에 앉게 될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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