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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교적 완덕 수행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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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04 조회수215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리스도교적 완덕 수행의 목표

우리가 여행 할 때에는

목적지가 있습니다.

이 목적지와 또 목적지로

가는 길을 잘 알아야만

우리는 순조로운 여행을

할수있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문명의 발달로

 GPS장치를 부착한 차량은

길을 헤매는 경우가

절대로 없습니다.

정확한 안내를 인공위성을

통해 받기 때문이죠!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적

완덕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도 지향하는 뜻과

목표를 잘 알아야만하고

합당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완덕 수행에

있어서는 너무 멀고 아득하여

힘에 겨운 목표가 있는가 하면

의외로 가까운 목표도 있습니다.

앞장에서는 완덕 수행의 원칙과

기점에 대하여 말하였으니

이번부터는 그 목적지,

즉 지향할 바 목표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완덕의 이상(理想)

완덕의 이상을 실현하는데에는

하느님을 닮음그리스도를 따름

애덕을 닦음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실행함.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따라서 차근 차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느님을 닮음

"하늘에 계신 아버지게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자 되어라(마태 5,48)

말씀이 곧 완덕의 이상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

(에페5,1)

우리가 하느님의 신적

속성을 그대로 본받을 수는

없습다 하더라도 물체의 윤곽이

그 그림자에 드러나듯이

완덕을 닦는 교우라면

어슴푸레한 그림자 정도는

반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성요셉, 사도베드로 바오로,

성프란치스꼬, 성녀데레사 등의

성인성녀들의 영웅적인

모범 덕행을 수행하신

대표적인 분들이십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항구하심,

순결하심 불변하심,

공의 하심, 인자하심,

어지심의 속성들을

반영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양의 열과 촛불의

미미한 열은 비교가

안되지만 촛불은 양초를

녹여 내리게 합니다.

또한 촛불도 불씨에

불을 붙이면 온세상을 태울만한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완전해

지지는 못해도 완전한

모습을 반영할 수 는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는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천주성삼의 사랑,

사람사이의 사랑

이것은 무한한 차이가

있으나 동질적입니다.

그러므로 애덕을 닦으면

닦을수록 하느님을

닮을 수 있고 하느님의

속성을 자신의 덕행에 보다

정확하게 반영 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름

하느님을 닮아라,

하느님과 비슷하게 생각하라,

하느님과 같이 행하라 하는

수덕계명은-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합당한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닦고자 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자문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이러한

환경에 처해 계신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또는 예수님이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문에 실제적

이어야 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당신이 행하신 일을

하나에서 열까지 그대로 본 받을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입법자나 판관처럼 백성의

으뜸들을 신랄히 비난하고

그 위선을 규탄하신 일이라든가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힌 장사꾼들을

질타하시어 쫒아내신 일 등을 우리가

그대로 본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성을 지니신 분의 총체적인

권위적 행동이고 우리는 피조물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분 것이다."

(요한13,1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

( 마태 11, 29)"

성바실리오, 성아오스딩,

성보나벤뚜라, 십자가의 성요한,

로욜라의 이냐시오,

아빌라의 대데레사 성녀같은

교회의 학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완덕수행의

요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애덕을 닦음.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골로 3,14)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로마 3,1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마태 22,35)

"사랑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한 14,16)

사람의 영혼은 오직 사랑으로

하느님께 결합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사랑이야 말로 모든 덕행의

원동력이자 정화(精華)라고

사도 바오로는 말씀하셨습니다.

성서에 헤아릴 수도 없이

사랑(1259)을 실천하라는

구절이 나오는 까닭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말처럼

'사람의 영혼은 오직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결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실행함

1.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생각하는

마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것이다."(요한 14,23)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요한15,3)

2.사랑의 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완전히 동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느님과 같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하는 이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하느님을

받들어 실행하는 것이며, 사랑으로

하느님 안에 일치되는 것입니다.

3.완덕의 원천(源泉)

사랑입니다.

즉 사랑이 크냐 작으냐가

완덕의 평가 기준이 됩니다.

큰사랑으로서 작은 선행을

하는 이는 작은 사랑으로써

큰 선행이나 업적을 남긴 이보다

더욱 공경할만 합니다.

우리는 성모마리아와 요셉의

일생의 일생을 보고 그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예수님의 사생활 30년은 아무런

기적도 없고 사람의 눈을 끄는

아무런 고행도 하지 않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완덕의 길을

걸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으시면서도

엄청난 일을 하셨으며 이것이 결국

세상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5.하느님을 닮고자하고 또 우리 주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고자 한다면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에 맞갖은 것만을 생각하고

행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잠언 24,16)

"만일 우리가 죄를 짖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거짓말

장이로 만드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요한11,10)

6.어느 정도 완덕에 도달한 것처럼

생각하는 자기만족은그리스도

신자로서 절대금물(禁物)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그 순간 부터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자기비판과 자아반영을

곁들인 겸손의 길 그것이 곧 완덕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7.완덕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휴식이나

자기만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루까 21, 1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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