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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카르투시오 수도원 이야기 이모저모 1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20 조회수1,126 추천수1 반대(1) 신고

 

카르투시오 수도승 그분들은 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치려고 하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제가 총 한 달 동안 수도원 내에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또 수도원 내에서 기도와 노동을 하면서 묵상한 내용입니다.

 

저는 이번에 수도원에 17일 들어갔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눈이 많이 왔습니다. 마산에도 그간 내리지 않았는데 노면이 얼을 정도로 내렸습니다. 마산에서 9시에 출발해서 약 11시 반에서 삼종기도 전쯤에 도착을 생각했습니다. 도착한 후에 식사를 하고 짐을 풀 생각이였습니다. 아침에 둘째 형님과 형수님이 오셨습니다. 반대가 심하고 전에 눈물을 흘렸던 형수님이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제가 사전에 오시지 말라고 했지만 오셨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택시를 이용해서 오셨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형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런 형의 모습을 보니 저 역시도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식사를 하고 헤어진 후에 출발을 해서 가는데 눈길이라 경북지역으로 진입하면서는 눈발이 거세서 몇 번 사고가 날 뻔도 했습니다. 중간에 한번 눈빨이 심해 진입로를 놓쳐서 생각보다 좀 늦게 도착했습니다. 출발 전에 이미 수도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눈이 많이 내려서 수도원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서 진입 입구 아래에 주차를 하고 전화를 하면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도착 후에 연락을 하니 손수 원장 신부님께서 차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일단 당일 급하게 사용할 물건만 원장님 차에 실은 후에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원래 10월 달에 피정을 하면서 크로티아에서 오신 신부님께 만약 제가 입회를 하면 어느 방을 사용할 건지 여쭤봤습니다. 17번 셀이였습니다. 사실 제가 그때 노동을 하면서 봤는데 그 방이 욕심이 났습니다. 그 방은 화목난로를 사용하고 온수도 사용할 수가 있어서 좋았고 또 방 내부도 기도하기에 아주 좋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방이었습니다. 근데 도착을 하니 방이 다른 방이었습니다.

 

원래는 17번 방을 사용하도록 하겠끔 하셨는데 원장 신부님께서 갑자기 생각에 변화가 왔습니다. 부랴부랴 제가 갈 방을 정비를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방에 들어 가니 일단 니스와 페인트 냄새도 약간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도 난방이 되고 또 온수도 사용할 수가 있다고 사전에 수사님이 말씀을 하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짐을 풀기 전에 청소를 하면서 욕실에서 걸레를 빨기 위해 물을 사용하는데 미지근한 온수가 나와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그때만 온수가 나왔고 또 첫날만 약간 난방이 되었습니다.

 

다소 희망적이었습니다. 근데 이 희망은 하루를 넘기지 않았습니다. 짐을 푸는데 원장님께서 성당으로 호출하셨고 조금 있다가 주방으로 저를 인도한 후에 배달용 박스를 주셨고 이건 다큐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중국집 배달용 통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걸 제 방으로 가져가 식사를 했습니다. 방에 들어가 내용물을 꺼낸 후에 식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약 두 달 후에 수도원에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역시나 두 달 전이나 그 전에 나왔던 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그때 생각을 조금도 거짓말하지 않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앞으로 이런 밥을 평생 동안 먹고 생활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앞이 캄캄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누가 강요를 해서 온 것도 아니고 제 스스로 선택한 삶이기 때문에 그저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고 예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하며 다잡았습니다. 그래 입만 순간 즐겁게 하는 것이지 죽으면 썩을 몸 잘 먹어봐야 뭐하겠느냐고 생각하며 앞으로 생활에 잘 적응을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4시 반에 저녁기도가 있기 때문에 4시 무렵 좀 지나서 저는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기도를 하기 위해 먼저 성당으로 갔습니다. 짐을 풀기 전에 원장님께서 이미 성당에서 제가 앞으로 앉을 자리를 지정해 주셨습니다. 원장님 자리 옆 옆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제대를 향해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봤습니다. 예수님, 이제 예수님 집에서 살려고 이렇게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잘 적응해서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십사하는 기도를 하며 있는데 타종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한 분씩 성전 내로 모든 분들이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녁기도는 대략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기도를 하면서 맞은 편 천장 너머로 창을 통해 하늘을 간간이 보면서 기도 중간중간에 이제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이제 여기가 뼈를 묻을 장소라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를 했습니다. 원래 저는 원래대로라면 제가 태어난 곳과 제가 묻힐 곳이 거의 비슷한 위치에 있게 됩니다.

 

예전에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태어난 곳과 얼마 안 된 곳에 묻히게 된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좋았습니다. 먼 훗날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그곳 수도원 식구들과 함께 묻힐 것을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 제 방에 돌아온 후에 짐을 정리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좀 쉬었습니다. 7시 반에 취침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도 습관을 들이기 위해 씻고 침상에 누었습니다. 들어오기 전에 너무 긴장이 되고 잠이 오지 않아 이틀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이것저것 신경을 쓴데다가 눈길을 운전하며 와서 그런지 알람을 자정에 맞췄는데 아마 거의 11시 무렵쯤에 조금 잠이 들어 겨우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습니다.

 

12시에 일어나 세수를 간단히 하고 기다린 후에 밤기도를 하기 위해 성당으로 갔습니다. 갈 때는 후레쉬를 이용해서 갑니다. 성당으로 가는데 귀가 날라갈 정도로 날씨가 장난이 아니였습니다. 새벽 두 시 반이 조금 넘어서 밤기도가 끝났습니다. 거의 시간은 평균 2시간 소요됩니다. 주일과 축일에는 거의 새벽 3시에 밤기도가 끝납니다. 저녁에 누었을 땐 몰랐는데 밤기도 후에 제 독방에 돌아온 후 침상에 누었는데 허리가 아파서 누울 수가 없었습니다. 가만 보니 밑에가 나무로 10센티미터 씩 간격으로 있어서 중간에 공간이 메워져 있지 않았고 합판도 중간에만 있어서 전체적으로 잠자리가 불편했습니다.

 

공간과 공간 사이가 베여서 잠을 통 자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원장님께 말씀을 드려서 메트리스를 한 장 깔고 어느 정도 보충을 해서 그 문제는 어느 정도는 해결했습니다. 메트리스가 일반 침대 메트리스가 아니고 그냥 가정에 사용하는 요 정도입니다. 잠을 자지 못했어도 수도원 규칙에 적응을 해야 되니 630분에 일어나 씻고 일시경을 바칠 준비를 하고 기도대에 갔습니다. 그리고 8시 미사를 봉헌하러 타종을 듣고 미사를 했습니다.

 

원래 입회를 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첫날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그런 느낌이라고 했는데 저는 이미 입회를 하기 전에 그런 두려움을 미리 경험해서 그런지 저는 특별히 그런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냥 담담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생각을 했었죠. 이미 들어오기 전에 두려운 시간이 백신이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이때 이후부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난방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10월 피정 때는 난방이 되었습니다. 설마 수도원도 사람 사는 곳인데 난방이 되지 않을 거라는 꿈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근데 난방이 되지 않았습니다.

 

원장님께서 저는 많은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와서 저에겐 특별히 배려를 해서 라디에이터를 미리 준비해 주셨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분들은 가스로 하는 것인데 저는 전기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라디에이터는 제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모델이라 잘 알고 있습니다. 원장님은 방 온도가 5도 이하로 떨어질 때만이 난방을 한다고 합니다.

 

원장님의 생활상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원장님은 일단 모자를 두 개 쓰신다고 합니다. 상의는 두꺼운 옷을 입고 양발도 두 켤레를 신고 두꺼운 이불을 덮으면 왠만하면 잠이 오신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추위를 이기시고 잠을 청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 수사님은 피티병에다가 뜨거운 물을 넣거나 해서 그렇게 해서 추위를 이겨내며 잠을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늦은 나이에 적응하는 것을 감안해서 얼마 전에 수도원을 나가신 다른 수사님이 사용하신 전기장판을 주셨습니다. 저는 사실 따지고 보면 원장님께서 여기서 말씀을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입회자와 비교했을 때 어떤 부분은 파격적인 대우를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일단 대충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하루에 세 번 성당에 가는 것과 자기 독방에서 기도하는 것 네 번 하는 기도생활이 공식적인 기도시간입니다. 그 외 평수사는 오전 오후 두 시간 노동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그냥 이런 생각이 듭니다. 노동하는 시간 외에는 조금만 하면 기도고 늘상 종소리와 계속 방에서도 시계를 자주 들여다봐야 합니다. 다음 일정을 잊지 않으려고 하면 그래야 합니다. 그러니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긴장의 끈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방의 온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요 제가 입회를 하면서 가져간 귤이 있었습니다. 짐 속에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귤이 마치 냉동실에 넣어 얼려놓은 것처럼 얼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얼은 귤을 처음으로 그때 먹었습니다. 원래는 하루에 한 끼 식사를 합니다. 그 식사를 나누어서 저녁에 먹을 수 있습니다. 점심 때는 그래도 조금 밥이 온기가 있는데 저녁에 먹을 때는 거의 맨밥만 먹게 됩니다. 왜냐하면 점심 때 나온 반찬도 아주 작기 때문입니다. 근데 저녁에 먹으려고 남겨놓은 밥은 방에 보관을 해도 워낙 날씨가 추우니까 거의 밥이 얼음 밥과 같은 차가운 밥입니다.

 

저녁기도 끝나고 난 후에 와서 약 30분 있어야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그때 난방이 잘 안 된 방에서 덜덜 떨면서 차가운 밥을 그냥 거의 반찬도 없이 먹으려고 하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입안에서 입안의 온기로 조금씩 씹어 넘겨야 합니다. 그분들은 이런 불편함을 불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하느님께 희생을 바친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신다는 것 자체부터서 우리와 정신세계가 차원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오늘은 수도원의 일상 이야기를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너무 긴 것 같아서 또 이어서 전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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