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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미사강론]주님 봉헌 축일 제24회 축성생활의 날[2020.2.2.주일(주님봉헌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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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7 조회수402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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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2022일 주일[주님봉헌축일(축성생활의 날)]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말라키 예언서 3,1-4

화답송 : 시편 24(23),7.8.9.10(◎ 10ㄴㄷ)

2독서 : 히브리서 2,14-18

복음 : 루카 복음 2,22-40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604&gomonth=2020-02-02&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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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봉헌 축일

24회 축성생활의 날

 

EUCHARISTIC CONCELEBRATION WITH THE MEMBERS OF THE
INSTITUTES OF CONSECRATED LIFE AND THE SOCIETIES OF APOSTOLIC LIFE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전

2020 21일 토요일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복음 2,30). 이것은 복음 말씀이 소박한 사람으로 묘사했던 시메온의 말입니다. “의롭고 독실하며라고 구절은 말하고 있습니다(루카 복음 2, 25). 그러나 그날 성전에 있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그만 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았습니다. 그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한 아기입니다. 작고 연약하고 소박한 아기. 그러나 그 아기 안에서 그는 구원을 보았습니다. 성령께서 새로 태어나신 연약한 주님의 그리스도”(루카 복음 2, 26) 안에서 그가 알아 채도록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그는 믿음으로 그 아기 안에서 하느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어 주셨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시메온 그는 이제 평화로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 그는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은총을 보았던 것입니다(시편 63,4), 그리고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축성된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도 또한 이 세상의 어떤 좋은 것보다도 더 가치 있는 보물을 찾아낸 소박한 남성과 여성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분은 소유물이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가정을 만드는 일같은 소중한 것들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렇게 했습니까? 여러분이 예수님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고 여러분이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이고 그분의 눈길에 황홀해졌기 때문에 당신은 나머지 다른 것들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수도생활은 이러한 통찰력입니다. 수도생활은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도생활은 시메온처럼 두 팔을 벌려 주님의 선물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축성된 남성과 여성들의 눈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의 두 팔에 부어졌습니다. 축성된 사람은 매일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선물이어라, 모든 것이 은총이어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수도생활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사랑의 선물입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끝 기도에서 매일 저녁 되풀이하는 말입니다. 그 말씀과 함께 이렇게 기도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하루를 마칩니다. “주님, 저의 구원은 당신에게서 오나이다. 저의 손은 비어 있지 않고 당신의 은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은총을 보는 법을 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돌이켜 보면서 자기 자신의 역사를 다시 읽으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하느님의 진실하신 선물을 보면서. , 삶의 위대한 순간들 안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약함 안에서 우리의 보잘것없음 안에서. 유혹자, 악마는 우리의 가난”, 우리의 비어있는 두 손에 초점을 맞츱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너는 더 좋은 것을 하나도 갖지 못했어, 너는 네가 가질 수 있었던 것을 얻지 못했어, 그들은 네가 하려고 하는 것을 하게 하지 않았어, 너는 언제나 진실하지 않았어, 너는 할 수 없어…” 등등.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이야기와 이 말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부분적으로 진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혼란시키는 생각들을 다시 하고 느낌들을 다시 느낍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방향, 하느님 무상의 사랑을 잃어버릴 위험을 무릅씁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가난함 안에서도 우리를 항상 사랑하시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주님께 많은 것을 봉헌했는데 주님께서 더 많은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님, 저는 당신께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다른 무엇이 부족하십니까?” “너의 죄, 너의 가난함, 나에게 너의 가난함을 다오”.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그분께 계속 고정시켜 둘 때 우리는 우리를 다시 새롭게 하시는 그분의 용서에 우리 자신을 열고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진실하심에 다시 자신감을 찾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오늘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나는 내 눈길을 돌리는가, 주님께 아니면 나 자신에게?”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불신에 대한 해독제와 세속적인 방식으로 바라 보는 것에 대한 해독제를 발견합니다.

 

수도생활에 다가오는 유혹이 있습니다. , 그때 수도생활을 대신하는 어떤 것 약간의 명성, 위로를 주는 애착,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을 찾아서 떠나 가면서 세속적인 방식으로 바라 보는 것. 이것은 더 이상 삶의 추진력으로서 하느님 은총을 보는 것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축성된 삶이 더 이상 하느님의 은총 주변을 돌지 않을 때 수도생활은 그것 자체에 파묻혀 버립니다. 그것은 그 열정을 잃어 버립니다, 그것은 헤이해 지고 정체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공간, 우리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험담과 비방으로 끌어 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방식으로 되지 않는 모든 작은 일들에 대해 공격하고 그리고 우리는 한탄의 장황한 이야기들을 쏟아 놓습니다 한탄, “신부 한탄”, “수녀 한탄”-우리의 형제들과 우리의 자매들과 우리의 공동체들과 교회와 사회에 대한. 우리는 더 이상 모든 것 안에서 주님을 보지 않고 오로지 세상의 역동성만 보며 우리의 마음은 마비되어갑니다. 그때 우리는 습관의 창조물들이 되어 가고 실용적으로 되어 가고 한편으로 우리 내면에는 슬픔과 불신이 자라나고 그것은 체념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세속적인 시선이 이끄는 것입니다. 위대한 데레사 성인이 한번은 수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부당하게 대했어라고 이 말을 되풀이하는 수녀들은 불행하여라. 그녀는 불행하여라!”

 

삶에 대한 옳은 종류의 관점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은총을 시메온처럼 감지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복음에서는 세 번 그가 성령님과 깊이 친밀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성령께서는 그 위에 머물러 계셨고 알려 주셨고 이끄셨습니다(루카 복음 2, 25-27 참조). 그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깊이 성령님과 친밀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 안에서 축성 생활이 굳건하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감지합니다. 그것은 가난함이 엄청난 고생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진정한 자산으로 우리와 다른 이들에게 주신 더 높은 자유라는 것을 봅니다. 그 축성 생활은 금욕적인 불임이 아니라 소유하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봅니다. 그것은 순명은 규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혼돈에 대한 예수님 방법으로 이루는 승리라는 것을 봅니다. 이탈리아에서 지진으로 영향을 받은 지역 중에 한 지역에서 가난과 공동체의 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파괴된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있었고 그 곳의 수녀들에게 와서 자기들과 머무르라고 초대했던 또 다른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짧은 동안만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수도원과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수도원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그 수도원은 이제 두 개의 이동 주택입니다. 이렇게 크고 편안한 수도원에 머무르는 대신에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함께 있었고 하지만 그들의 가난 안에서 행복했습니다. 이 일은 바로 작년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시메온은 예수님을 작고 겸손하게 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이시고 당신 자신을 섬기는 사람으로 정의하십니다. 진실로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루카 복음 2, 29). 예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보는 사람들은 섬기기 위해서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솔선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았던 시메온처럼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들의 이웃들을 찾아 밖으로 나갑니다. 축성 생활에서 발견되는 그의 이웃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이 그 질문입니다. 어디에서 그의 이웃이 찾아집니까? 먼저 그 자신의 공동체 안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형제 자매들 안에서 예수님을 찾는 법을 알도록 은총이 청하여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자선을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할 수 있는 곳입니다. 당신이 사는 곳에서 가난한 형제 자매들을 따뜻하게 맞이함으로써. 시메온이 예수님을 온유하고 가난하게 맞이한 것처럼. 오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안에서 오로지 장애와 합병증만을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찾아 내는 눈길을 가져야 합니다. 그 눈길이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을 더 가깝게 데리고 옵니다. 수도자들은 예수님과 친밀하게 사는데 그들 자신의 눈길을 세상에 전하도록 부름 받습니다. 연민의 눈길,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서는 눈길, 심판하지 않고 용기를 주고 해방시키고 위로하는 눈길, 가엾어하는 눈길. 그것은 복음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면서 여러 번 복음에서 반복된 구절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이것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허리를 굽히시는 모습입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시메온의 눈은 구원을 기대했기 때문에 구원을 보았습니다(루카복음 2, 25 참조). 그 두 눈은 희망에 가득 차서 기다리는 눈입니다. 그 두 눈은 빛을 찾고 있었고 그리고 그때 다른 민족들의 빛을 보았습니다(루카 복음 2, 32. 참조). 그들은 연로한 눈을 가졌지만 희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축성된 사람들 남성과 여성들의 눈빛은 오로지 희망의 눈빛입니다. 희망하는 법을 알고 있는. 둘러 보면 희망을 잃는 것은 쉽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 성소의 감소세속적인 시선, 희망이 전혀 없는 시선을 갖게 되는 유혹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봅시다 그리고 시메온과 한나를 봅시다. 그들은 늙고 외로웠지만 그러나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님과 친교 안에서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루카 복음 2, 37).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결코 주님에게서 멀이지게 하지 않는 것, 주님께서는 희망의 원천입니다. 우리가 매일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분을 흠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장님이 됩니다. 주님을 흠숭하는 것.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축성생활의 선물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그분께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간구합시다. 은총을 보는 법을 알고 자신의 이웃을 찾는 법을 알고 희망하는 법을 아는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그때 우리의 눈도 구원을 볼 것입니다. 

 

(최종 번역 수정 2020. 2. 8. PM 10:55)

 

* 최종 번역 수정 시간을 반드시 기재해 두겠습니다. 번역문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자주 살피시어 최종 번역문을 이용하시거나 배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documents/papa-francesco_20200201_omelia-vitaconsacrata.html

교황님 미사 동영상 & 사진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0/2/1/presentazione-signore.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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