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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0.“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09 조회수1,365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르 1, 7-11(주님 세례 축일)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 입니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내주며, 성탄시기와 주님 공현 주간을 마무리해 줍니다. 한편,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의 사생활과 공생활을 가르는 기점이 되고, 이제 성탄시기는 끝나고 연중시기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공생활의 시작과 마침에서 죄인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곧 당신의 마지막 순간에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듯이, 공생활의 시작에서는 죄 없으시면서 죄인이 되어 세례를 받으십니다.

왜일까요? 왜 죄 없으신 분이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받으신 것일까묘?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도 이를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라는 1인친 단수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우리”라고 복수 형태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결코 하느님 홀로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응답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모두를 당신 구원의 동반자로 초대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당신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구세주로 드러내셨습니다. 이처럼, 세례는 당신 아드님의 장엄한 공현입니다. 곧 예수님께 대한 하느님의 공적인 축성임과 동시에, 만천하에 그분이 구세주이심을 확인받는 장엄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의 세례는 하느님의 의로운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곧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의 의로움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거리낌 없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까닭은 더없이 겸손한 자세로 율법의 모든 의로움을 이루시는 한편, 당신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요한이 베푸는 세례의 정당성을 인정하시고, 또 그 물을 성화하심으로써 믿는 이들의 세례 안에 성령께서 내려오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셨다.”

 

이처럼,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요한 1,10)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하늘이 갈라지고 은총이 내렸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는 새로운 시대 왔음을 알려줍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당신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구세주로 드러내셨습니다. 이처럼, 세례는 당신 아드님의 장엄한 공현입니다. 곧 예수님께 대한 하느님의 공적인 축성임과 동시에, 만천하에 그분이 구세주이심을 확인받는 장엄한 의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심”과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모습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마치 하늘과 땅이 화답하는 일치의 모습 안에서 그 기름부음의 성취는 이루어졌습니다. 구원역사의 시작은 이처럼,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보여 지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장엄한 장면을 통해 연출됩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아버지의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이 선포의 내용은 셋입니다.

<첫째>“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곧 <시편> 2장 7에서 말하듯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성자임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역시 세례로 하느님의 아들이 됩니다. 곧 우리의 세례가 죄를 용서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의 탄생됨을 의미합니다.

<둘째>“사랑하는 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곧 <창세기> 22장 2절에서 말하듯이, ‘사랑하는’ 이란 유일한 아들이심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미 사랑받은 존재, 이미 은총을 입은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이는 우리도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받게 됨을 말해줍니다.

<셋째>“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곧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 42장 1절에서 말하듯이, ‘마음에 드는’ 이란 주님의 종임을 드러내줍니다. 이는 우리 역시 세상 속에서 구원의 협조자로, 제 2의 예수님으로, 구원의 도구로 소명을 지닌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야 함을 말해줍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성령이 머무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새 생명으로 태어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세례를 받은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자신의 허물과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곧 이미 그 은총을 입었기에 그 사랑을 곧 그 용서를 베풀며, 성령께서 우리 안에 활동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도우심에 의탁하여 사는 것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

 

주님!

제가 당신 마음 안에서 탄생되었으니. 당신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 마음을 옷 입었으니, 당신의 영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 마음 안에서, 당신의 사랑의 향기 품게 하소서.

사랑을 입었으니,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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