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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성삼일(성목요일, 성금요일, 부활성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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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0 조회수7,729 추천수0

[이 달의 전례] 성삼일(성목요일, 성금요일, 부활성야)

 

 

가톨릭 신자로서 일년 중 가장 거룩한 날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 어쩌다 ‘성삼일’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을 만나면 저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비를 전례 안에서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이번 달은 주님 부활의 큰 축제를 지내는 달입니다. 지면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성삼일의 전례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례적 개관

 

초대교회는 파스카 신비의 전 의미를 총괄하여 부활성야에서 부활주일 아침에 이르기까지  파스카 축제를 거행했습니다. 그러다가 4세기 초에 와서야 비로소 이 축제의 풍부한 내용과 의미가 보다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서 서서히 분리되면서 각 부분의 관점이 더욱 강하게 부각되었으며 이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시어 부활하신 주님의 성삼일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 지침은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3일은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빛난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3일은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어 부활성야에 정점에 이르며 부활주일 저녁기도로 끝난다.”(18-19항)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성삼일이 성목요일 저녁에 시작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하나는 유대인과 고대사회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하루는 그 전날 저녁과 함께 시작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는 전례에 영향을 끼쳐서 대축일이나 주일은 전례적으로 그 전날 저녁기도(vespere)와 더불어 이미 잔치가 거행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목요일 저녁이 부활의 성삼일의 그 첫째 날(원래는 성금요일)에 속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아 정당하고 뜻있는 것으로, 자신의 희생이 성사적으로 선취되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안에 이미 십자가의 피 흘림의 제사가 이루어지며, 이 날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분명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 밤에 올리브 동산에서의 고통과 유다의 배반 그리고 예수의 붙잡히심은 바로 그분의 계속되는 수난의 시작인 것입니다.

 

 

성목요일

 

성목요일 전례는 무엇보다도 예수의 최후의 만찬과 그로부터 세워진 성체성사의 설정으로 새겨진다. 아울러 최후의 만찬과 결부되는 봉사의 상징인 세족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날 오전에 거행하는 교구 주교와의 일치를 나타내는 ‘성유축성미사’는 별도로 하고 일반적으로 이 날에는 저녁 만찬미사만 거행된다. 예로부터 로마 전례에서는 공적 참회자들을 교회 공동체에 재영입 하는 예식 미사도 이 날 거행되었다. 한때 이 날은 세 대의 미사가 거행되었다. 즉 성유축성미사, 공적참회자들을 위한 화해미사, 주님만찬미사였다. 후에는 이 세 미사 지향이 주님만찬미사 안에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만찬미사 중 대영광송을 노래할 때는 종을 친다. 주교회의 관할권자가 다르게 결정하지 않는 한 부활 밤까지는 종을 치지 않는다. 성삼일 동안 종을 치지 않는 것은 850년경에 나온 관습으로, 이 관습 안에서 주님의 비하를 따르고자 하는 겸손의 표현을 보았다. 금속의 종과는 달리 나무로 만든 소리도구들이 성주간의 주님의 자포비하를 나타내는 데 훨씬 더 적합했다. 종과 만찬가지로 동시대에 많은 곳에서는 오르간 사용도 포기했다. 이 오르간은 그 후 중세 말부터 전례음악 악기로 점점 자리를 굳혀갔다.

 

오르간 사용을 포기하게 된 동기는 종의 사용포기와 같은 이유였다. 이 두 가지의 축제의 소리도구에 관해서 사람들은 ‘청각의 절제’라는 관점을 이야기 했으며, 이는 마치 수난시기에 ‘시각의 절제’로 십자가나 제단의 그림을 보자기로 덮어씌우던 관습과 마찬가지였다.

 

이날의 독서는 1고린 11,23-26에 따른 성체성사의 설정 기사를 전해준다. 이어지는 복음전 노래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는 새 계명을 선포함으로써 세족례의 복음을 이끌고 있다. 요한 13,1-15의 성서구절은 제자들의 발을 씻는 행위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가장 내밀한 자세, 즉 다스리지 않으시고 봉사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당시 사회풍습으로 보아 집의 손님들에게 하인들이 하는 발을 씻기는 일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행하신 것은 인간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도록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표지인 것이다.

 

발을 씻는 예식을 통하여 무엇보다도 그 상징적 행위 안에 담겨 있는 사랑을 중요시하고, 이 사랑을 여러 가지 다양하고 시대에 맞는 봉사를 통하여 이웃에게 실천한다면 교회는 성서 안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주님의 표지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4세기에 벌써 로마를 제외한 서방에서는 이 세족례가 세례 예식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로마 전례의 확산으로 인해서 세족례가 서서히 사라진 후에 수도원 안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수도원 식구들에게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이 예식이 다시 살아났다. 톨레도(Toledo) 공의회(694)는 스페인과 갈리아 모든 교회에서 성목요일에 이 장엄한 예식이 거행되어야 한다고 단호히 요구한다. 모든 주교와 사제는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자기 수하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절은 단순하다. “제단 봉사자(복사)는 선발된 남자들을 준비된 자리로 이동한다. 필요하다면 사제는 제의를 벗는다. 그리고는 사제가 각 사람의 발에 물을 붓고 수건으로 닦는다. 제단 봉사자들은 이를 도와준다.”

 

1955년 개정된 이 예절이 계속 고집했던 ‘12’라는 전통적인 숫자는 새 미사경본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또 사도신경(Credo)이 생략되기 때문에 이어서 바로 보편지향기도가 따라온다. 제물을 준비하는 동안 교우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예물을 봉헌하는 행렬을 할 수 있다. 이런 적극적인 이웃사랑은 세족례의 구체적인 실천행동의 하나로,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순절 헌금이 이 미사에서 봉헌되는 것은 합당한 사유를 가진다.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난 다음, 성금요일 전례를 위하여 미리 축성된 성체는 화려한 행렬 가운데 수난감실로 모셔지고 이때 제대 장식은 벗긴다. 이어지는 성체공경(성체조배)은 가능한 한 보존되어야 한다. 물론 자정부터는 어떠한 화려함도 피해야 한다. 이 풍습은 2세기까지 소급하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미 리옹의 이레네오(200년경 순교)는 많은 사람들이 부활 전 40시간, 그러니까 예수께서 무덤 안에 계신 시간 동안 단식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 점은 아우구스티노에 의해서 증명된다.

 

 

성금요일

 

성금요일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날(그 당시 금요일이었던 니산달 14일)로써, 예로부터 슬픔과 고통의 단식일이며 슬픔의 단식이라고 불렀다. 초세기에 벌써 사람들이 제자들에게서 신랑을 빼앗겼기에(마태9,15 : 마르2,20 : 루가5,43), 제자들이 단식하는 때에 대해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무덤에서의 안식의 날과 관련시켰다. 이 슬픔의 단식은 초대 교회의 의식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에 서방에서는 때때로 모든 금요일과 토요일까지도 슬픔의 단식일로 명했다.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의 단식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2세기까지로 소급한다.(히브리 묵시복음과 리옹의 이레네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전한 단식으로써의 일체의 음식이나 음료를 먹거나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파스카 40시간 또는 이틀 동안 음식이나 음료를 아예 먹지 않아야 했다. 히뽈리뚜스의 교회 규정에 따르면 병자와 임산부를 위해서는 예외적으로 빵과 물은 허용된다고 표명함으로써 초대교회의 성금요일, 성토요일의 완전한 단식에 대한 이해와 전승을 증명하고 있다. 교황 인노첸스 1세는 5세기 초엽, 이미 사도들은 이 이틀 동안(Biduum) 슬픔의 단식을 지켰다는 견해를 밝힘으로써 이 전통의 근거를 세웠다. 이 전통을 고려하면 오늘날 교회가 성금요일을 단식과 금육의 날로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성금요일 전례를 위하여 4세기에는 성찬례가 아닌 여러 가지의 다른 형태의 전례가 생겨났다. 순례자 에테리아가 저술한 것으로 보이는 순례기에는 400년경,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황후 헬레나에 의해 320년경에 발견된 골고타의 그리스도 십자가를 공경하기 위하여 오전에 골고타에 모였고, 이른 오후에는 수난에 관한 시편과 사도들의 서간이나 행적 그리고 복음이 봉독되는 말씀의 전례를 거행했다고 보고하고 있다.(참조: 에테리아 여행기 37장 「신학전망」 25호 pp.83-85)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던 예루살렘 바로 그 곳에서 그리스도 사건을 그 장소와 시각에 맞춰 전례 안에서 그대로 재현하여 믿는 이들의 의식 안에 깊이 새기게 하려는 예루살렘 성주간의 전례는 서방교회에 본보기를 보여주는 전례가 되었다.

 

처음에 서방에서는 말씀의 전례, 그 중에서도 수난기사와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계되는 시편이 큰 역할을 했던 말씀의 전례로 만족했다. 예수께서 달리셨던 십자가의 유물을 소유했던 지역교회들, 예를 들면 황후 헬레나가 그 일부를 선물함으로써 이미 4세기에 그 유물을 소유했다고 증명되는 로마교회에서는 이미 십자가 경배 전례가 생겨났다. 7세기 로마의 성금요일 전례서를 보면 교황은 맨발로 십자가의 유물을 가지고 라테란 대성당에서 헬레나 황후에 의해서 세워진 성당인 ‘예루살렘의 성 십자가 성당’으로 행렬하였다. 그곳에서 십자가 유물은 두 개의 구약의 독서와 요한의 수난기가 봉독되는 동안에 성직자들뿐 아니라 전 공동체에 의해서 경배되었다. 7세기에 신자들의 영성체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장엄신자들의 기도가 원래 이 말씀의 전례를 마무리했다. 이 로마전례는 8세기에 프랑크족에 전해져 계속해서 보다 강하게 극적인 요소를 지닌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10세기 중엽에 오늘날 독일 마인쯔에 있는 베네딕도 수도원의 수도자는 계속 발전된 성금요일 전례를 소위 로마-게르만 주교 예식서에 수록하였는데, 이것을 마인쯔 주교 예식서라고 불렀다. 이 전례서는 10세기에 그 당시 침체상태에 있었던 로마교회에 전해졌고, 그로 인해 로마전례를 표준적으로 새롭게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1970년의 새 미사전례서는 성금요일 오후 3시를 이상적인 전례거행 시각으로 삼고는 있지만 사목적인 이유로 고정시키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성금요일이 휴일이 아니고 신자들이 일해야만 하는 나라들을 고려해야 했다. 이 날은 검은색 제의 대신에 순교자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원형과 모범을 가졌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순종 안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희생과 승리를 기초 놓았던 그 순교자들의 색인 붉은색 제의를 입는다. 성 금요일 전례는 말씀의 전례와 십자가 경배 그리고 영성체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말씀의 전례

 

사제와 복사들은 벗겨진 제단 앞으로 가서, 그 앞에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고 잠시 동안 침묵 가운데 기도한다. 이후 사제는 사제석에 가서 미사전례서에 제시된 두 개의 기도 중 하나를 바친다.

 

1독서는 이사야 52,13-53,12에 따른 하느님의 종의 네 번째 노래가 읽혀진다. 화답송으로서의 시편 31은 한탄과 탄식의 표현뿐만 아니라 충실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표현이기도 하다. 2독서는 ‘위대한 대사제(히브4,14-16,5.7-9)’를 찬미하는 노래이다. 복음 전 노래는 필립비 2,8절 이하의 그리스도 찬가로써 파스카 신비에 대한 전형적인 찬미를 담고 있다. 이어지는 요한의 수난기(요한18,1-19,42)는 수난 성지 주일과 같은 방법으로 봉독되어야 한다.  즉 촛불이나 향이 없이, 또 신자들에게 하는 인사나 책에 십자가를 긋지도 아니한 채 봉독된다. 부제가 있으면 부제가, 없으면 사제가 봉독한다. 나누어진 역할에 따라 평신도가 읽거나 노래 부를 수 있다. 그리스도역은 가능하면 사제에게 유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제는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난기가 봉독된 다음 가능하다면 짧은 강론이 뒤따른다. 이어지는 ‘장엄 신자들의 기도’(중재기도)는 옛 로마교회에서 모든 성찬 때마다 통상적으로 중재기도, 일반기도 또는 신자들의 기도라고 불려진데 비해 오랜 세기 동안에 걸쳐 잊혀져 있었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비로소 새롭게 빛을 본 기도로 오늘날까지 간직해 온 옛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원석(原石)이다. 중요한 것은 10가지의 기도 원의들로, 그 기본 구조는 미사 때의 ‘보편지향 기도 형태’와 같다.

 

성 금요일에 ‘장엄 신자들의 기도’는 각각에 있어 거룩한 교회를 위하여 교황, 교회의 모든 계층의 사람, 예비신자들,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 유대인,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 위정자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바치도록 한다. 이 신자들의 기도를 과거의 것과 비교해보면 ‘유대인’과 ‘이교’, ‘열교자’들을 위한 기도들에서 사려 깊게 구성했는데, 사제는 그 지역에 적합한 것을 골라 할 수 있다.

 

십자가 경배

 

먼저 십자가가 신자들에게 성대하게 현시된다.(십자가를 들어올림) 여기에는 두 가지 양식이 있다. 첫 번째(전통적) 양식에는 가려진 십자가가 제단 앞에서 세 단계에 걸쳐서 벗겨진다. 매 단계마다 ‘십자가 들어올림의 외침’의 노래인 “보라, 십자나무”가 불리고, 공동체는 이에 “모두 와서”로 답하는 노래를 한다. 사제와 신자들은 벗기어진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거나, 깊이 절하거나, 친구(親口)로 경배한다.

 

두 번째 양식의 경우 사제는 복사들과 함께 가려져 있는 십자가를 성당 입구에서 받아들고 제단 쪽으로 가면서 세 번 십자가 경배 노래를 부른다. 신자들이 십자가를 경배하는 동안 성가대나 공동체는 전통적인 옛 성가를 부른다. 이 성가에는 후렴 “주의 십자가…”와 “비탄의 노래” 그리고 6세기에 생겨난 찬미가인 “Pange, lingua”와 그에 따른 후렴 “Crux fidelis(성실하다, 십자나무)” 등이 속한다. 처음에 불려지는 후렴은 그 본문과 그레고리안 합창의 가락에 특별히 귀를 기울이게 한다. 왜냐하면 두 가지 다 벌써 부활의 기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주님의 십자가 경배하오며 주님의 거룩하신 부활을 찬양하오니 십자가 나무 통해 온 세상에 기쁨이 왔나이다.”

 

영성체

 

십자가 경배가 끝난 후 제대 위에는 제대보가 덮여지고 미사전례서와 성체보가 놓인다. 부제나, 만약 부제가 없으면 사제가 직접 성체를 현양제대에서 본제대로 모시고 온다. 그리고 깊은 절로 경배하고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이하는 보통 미사전례와 같다.)

 

신자들의 영성체 후 남은 성체는 다시 옮겨지거나 감실에 모신다. 잠시 침묵 후에 마침기도와 신자들에게 강복한다. 마침기도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선물하신 새 생명에 대해 감사드리고 다시 한번 파스카 신비의 일치를 나타낸다. 사제가 공동체 위로 손을 뻗으며 하는 강복기도(축복기도)는 마찬가지로 죽음과 부활을 칭하고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용서와 위로, 신앙의 성장과 영원한 구원”을 간청한다.

 

 

부활성야

 

4세기 말까지도 부활성야는 온 밤을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어지는 부활 본 날에는 전례가 거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6세기 말경에 와서는 벌써 전야 축제미사(성야미사)가 자정 전에 끝나고 부활주일에는 고유미사가 거행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8세기 중엽에는 전례거행 시각의 앞당김이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서 성야미사를 첫 별이 보이는 시각에 시작하게 되었다. 9세기에 나온 전례사의 문헌은 9시, 즉 오후 3시 경을 성야미사의 시작 시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야미사 앞부분 전례는 정오경에 이미 시작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문서로써 중세기에는 축제미사를 위한 시각이 지시되기에 이르렀다.

 

1951년 2월 9일의 예부성성의 교령과 함께 교황 비오 12세께서 처음 1년 동안 시험적으로 부활전야 전례를 다시 부활 밤으로 옮기도록 허락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큰 기쁨이었다. 동시에 느슨해진 그 당시의 전례를 정리하고 부분적으로 새로 구성하였다.

 

처음 시험판으로만 허용되었던 것이 1955년 11월 16일의 성주간 개정에는 일반화된 법이 되었다. 이로써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잃어버린 보화를 다시 발견하였다. 수년 간의 경험을 충분히 평가, 이용해서 1970년의 미사전례서는 이 성야전례를 보다 더 밝힐 수 있었고, 부활의 성삼일 안에서 성야에 그 핵심자리를 내어 줄 수 있었다. 전례력과 축일표에 관한 일반지침 21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부활 밤에 교회는 밤을 새워가며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고 거룩한 표징을 통해서 부활을 경축한다. 그러므로 이 전야제는 밤의 축제로 거행 되어져야 한다. 즉 어둠이 시작되고 난 후에 시작되어 주일의 아침 여명이 오기 전에 마쳐야 한다.”(21항)

 

성야전례는 ① 빛의 예식 ② 말씀의 전례 ③ 세례예식 ④ 성찬례로 이루어진다.

 

빛의 예식

 

백색 제의를 입은 사제는 복사들과 함께 성당 바깥에 준비한 화롯불 주위에 모여 있는 공동체에게로 간다. 성당 바깥에 그런 화롯불을 준비할 수가 없는 곳에서는 성당입구 적당한 장소에서 할 수도 있다. 간단한 해설이 있은 다음 사제는 불을 축성하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영원한 빛에 갈망을 불타오르게 해주십사고 기도한다. 부활초 축성에 이어 부활초를 따라 행렬한다. 이 행렬은 감동적이며 상징적이다. 그 자체에서 마치 요한복음 8,12절의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 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앞서 들고 간 부활초는 야훼께서 종살이에서 이끌어 낸 이스라엘에 앞장서서 자유의 길을 가리키는 밤의 불기둥을 생각하게 한다.(비교 : 출애 13,21)

 

주례자는 부활초를 제단 옆에 위치한 촛대 위에 놓고 분향한다. 이어서 장엄한 파스카 찬송을 노래한다. 이 파스카 찬송은 라틴어 그 첫 글자를 따서 ‘용약하라(Exsultet)’라고 불리고, 신자들은 밝혀진 촛불을 들고 서 있다. 작가미상의 이 찬송은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노의 사상에서 영향 받았으나, 부분적으로는 보다 더 오래된 문헌에 소급된다.

 

오늘날과 같은 파스카 찬송의 표현양식은 아마도 7세기 초 갈리아 전례 지방에서 생겨났다고 추정한다. 이 부활찬송은 긴 형태로나 혹은 짧은 형태로도 노래할 수 있는데, 주교회의에서 허용한다면 공동체의 환호를 삽입할 수도 있다.

 

‘파스카 찬송’은 보통 미사에서의 대영광송과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찬송의 둘째 부분 - 파스카 축일을 오늘 지내오니 참된 어린 양 오늘 살해되시어 그 피로 우리 마음 거룩해지나이다. 이 밤은 주 친히 우리 조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에집트에서 불러내시어 홍해 바다 마른 발로 건네주신 거룩한 밤. 이 밤은 온갖 죄악과 죄의 어두움에서 구원하여 은총으로써 성덕에 뭉쳐진 밤, 이 밤은 죽음의 사슬 끊으신 그리스도, 무덤의 승리자로 부활하신 밤 - 은 특히 파스카 신비의 요점을 감동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 파스카 찬송이 부활선포의 정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파스카 찬송이 말씀의 전례가 끝난 후 세례식 전에 자리 잡아야 함이 더 알맞지 않느냐 하는 의문을 정당한 근거에서 제기했다.

 

말씀의 전례

 

모두 9개의 성서독서가 봉독되는데, 그중 둘은 신약(서간과 복음)에서 발췌한다. 사목적인 이유에서 구약의 독서들의 수를 경우에 따라서는 2개까지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는 내용의 독서(출애14,15-15,1)만은 파스카 신비의 전형이 되기 때문에 절대 생략할 수 없다. 구약의 7개 독서에는 매 독서 후 응송과 기도가 뒤따른다. 7개 독서 후의 기도가 끝난 후 제대 위의 촛불이 밝혀지면 사제는 대영광송을 노래하기 시작하고, 이어서 종을 친다. 본기도가 끝나면 로마 6,1-11에 의한 서간이 따라 나온다. 이 서간문에서는 세례로 인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우리의 운명과 생명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독서가 끝나면 모두 일어서는데, 이때 ‘알렐루야’가 다시 울려 퍼진다. 많은 사람들은 이 알렐루야를 더 이상 과거처럼 세 번에 걸쳐 노래하지 않는다는 점을 애석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단 한번 불려지는 알렐루야 멜로디도 그 독특함과 풍요로움으로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함께 거행하는 신자들에게는 감동적으로 와 닿는다. 이어지는 시편 118은 세 번의 알렐루야를 후렴으로 해서 부활의 구원사건에 대해 장엄하게 드리는 감사의 노래이다. :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복음은 3년의 전례력마다 다르게 함으로써 공관복음 작가들의 부활 본문을 모두 봉독하게 한다. 복음에 이어 강론이 따르고 그 후 세례식이 거행된다.

 

세례 예식

 

예로부터 부활성야가 세례신학과 이상적 조화를 이루기에 오늘날에도 가능하다면 이 밤에 실제로 세례성사가 베풀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제는 이 경우에 세례후보자들을 호명하고 신자 공동체에 이들을 소개한다. 짧은 인도문이 있은 후에 축약된 형태의 성인 호칭기도가 노래로 바쳐지고, 여기에 성당이나 지역 그리고 세례자들의 주보성인이 첨가될 수 있다.

 

이어지는 세례수 축성 때에 사제는 부활초를 한 번 혹은 세 번 물에 담그면서 “당신의 사랑하는 이들을 통하여 성령의 힘을 이 물에 내리시어…”라고 기도한다. 세례자들은 마귀를 끊어버리고 신앙을 고백한다. 그런 다음 세례가 베풀어진다. 성인세례 때 주교가 자리하지 않으면 세례를 베푼 사제에 의해서 견진수여가 이어질 수도 있다. 세례자도 없고 세례수 축성도 없으면 물 축성(성수)만 따라온다.

 

1951년 부활성야 전례의 재정립이 된 이후 이 자리에 소위 말하는 ‘세례 서원 갱신식’이 자리한다. 즉 신앙의 약속 갱신에 따라 마귀를 끊어버리겠다는 등의 대답을 하면 축성한 성수를 뿌린다. 이때 응송인 ‘Vidi aquam’이나 다른 세례성가가 불려진다. 공동체에 성수를 뿌리는 것은 세례를 기억하게 하는 오래된 의식으로써, 매 주일 ‘성수 뿌리는 예식(Asperges)’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다. 보편지향 기도로 부활 성야 전례 부분은 끝을 맺는다.

 

성찬례

 

봉헌준비 때 새로 세례를 받는 성인들이 빵과 포도주를 제단으로 가져가는 것을 권장한다. 부활 장엄축복과 파견 때 두 번의 알렐루야를 부른다. 부활성야미사가 비록 자정 전에 거행된다 하더라도 이미 부활주일에 속하므로 고유 대축일 미사이다. 따라서 이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음날 낮에 거행하는 두 번째 미사에서도 영성체를 할 수 있다.

 

[월간 빛, 2004년 4월호, 최창덕 F. 하비에르 신부(성바울로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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