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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6.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6-12 조회수8,28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7년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코린 1,1-7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와

온 아카이아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인사합니다.

2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6 우리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
7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고난을

함께 받듯이 위로도

함께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복음 마태 5,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언젠가 초등학생들의

희망 직업에 대한 순위를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교사, 운동선수, 의사, 법조인,

연예인 등이 상위권에 있더군요.

그런데 이 설문조사에서 특이한

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많은 아이들이

자신들이 되고 싶은 꿈으로

‘부자’라고 적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직업의 결과로서의

‘부자’가 아니라, 그냥 ‘부자’라는

말에 약간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부자’만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요즘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행복한 나라로

 항상 상위권에

들어가는 북유럽은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고,

타고난 환경이나 장애가

그 사람의 발목을 잡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돈’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북유럽의 핀란드에서 변호사

활하는 어느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곱 살 난 딸이 자신의 꿈은

 아빠와 같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변호사인 아빠는

울상을 짓습니다.

그리고 제발 변호사만큼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돈과 바꿔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돈 때문에 거짓말을 해야 하는

변호사를 선택해야

 하냐는 이유였지요.

결국 딸은 장차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꿈을 바꿨습니다.

그제야 이 아빠는 너무나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돈과 바꿔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물질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 안에서 돈이 그 소중한

 가치의 제일 윗자리에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물질적인 것들은

도대체 만족을 모릅니다.
사과 1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사과 9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행복할까요?

9개가 더 많으니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9개 가진 사람은

10개를 채우는 1개가

 부족하다면서 우울해하고,

1개 가진 사람은 이 한 개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면서

행복해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바라는 삶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목마른 사람 등의 모습을

바라고 있지 않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기준보다는

세상의 기준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행복 선언의 주인공들이

어떠할 지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실제로 많은 성인성녀들은

하늘에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안에서 받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이 세상 안에서의 고통과 시련도

 별 것 아닌 것으로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 지상에서 누리는

행복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행복을 지향해야 할까요?

이 세상 안에서의 행복입니까?

하늘나라에서의 행복입니까?

성실함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라,

그리고 관대함의 잣대로

 남들을 평가하라.

(존 미첼 메이슨)

행복선언 성당입니다.

"긍정 에너지를 위하여"

「욕심」은 부릴수록 더 부풀고,

「미움」은 가질수록 더 거슬리며,

「원망」은 보탤수록 더 분하고,

「아픔」은 되씹을수록 더 아리며,

「괴로움」은 느낄수록 더 깊어지고,

「집착」은 할수록 더 질겨지는

것이니 부정적인 일들은

모두 모두 지우는 게 좋습니다.
지워 버리고 나면 번거롭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사는 일이

언제나 즐겁습니다.
「칭찬」은 해줄수록 더 잘 하게 되고,

「정」은 나눌수록 더 가까워지며,

「사랑」은 베풀수록 더 애틋해지고,

「몸」은 낮출수록 더 겸손해지며,

「마음」은 비울수록 더 편안해지고,

「행복」은 감사할수록 더 커지는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도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고

밝게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게 또 있을까요?
위의 글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입니다

(누구의 글인지 잘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이 글을 보면서,

당연히 긍정적인

단어들을 내 머릿속에 새기고

이를 실천해야 할 때 분명히

내 삶 자체가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정적인

 단어들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물론 긍정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쫓아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이는 곧 내 자신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조금 더 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결단을 내려 보시길 바랍니다.

세계 행복도 순위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북유럽.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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