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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성전 정화(요한 2,13-2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09 조회수1,70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9년 11월 9일 토요일


[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성전 정화(요한 2,13-22)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에 있는 최초의 바실리카 양식의 대성당이다. 오늘 축일은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라테라노 대성전을 지어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으로 불리면서 현재의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역대 교황이 거주하던, 교회의 행정 중심지였다. 라테라노 대성전의 봉헌 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각 지역 교회가 로마의 모(母)교회와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는 천사의 말을 듣는다. (에제47,1-2.8-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화답송 시편 46(45),2-3.5-6.8-9(◎ 5)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 우리의 힘. 어려울 때마다 늘 도와주셨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이 빠진다 해도. ◎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네. 하느님이 동틀 녘에 구해 주시네. ◎
○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와서 보아라, 주님의 업적을, 이 세상에 이루신 놀라운 일을! ◎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시고, 이 성전을 허물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다. (요한 2,13-22)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제1독서(에제47,1~2.8~9.12)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8)

 

에제키엘서 47장 8절주님의 집(성소)에서 발원한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서

그 바다를 살릴 것이라고 천사가 에제키엘에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천사는 그냥 '물'이라고 하지 않고 '이 물'이라고 표현했다.

 

'이 물'에 해당하는 '함마임 하엘레'(hammaim haelleh)에서

정관사와 지시대명사가 결합된 '하엘레'(haelleh; These)와 더불어

'함마임'(hammaim; water)에도 정관사 '하'(ha)가 있다.

 

이것은 사해 바다를 살릴 물이 에제키엘서 47장 1절에서 묘사된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이고, 또한 에제키엘서 49장 7절에서 묘사된

강가에 수많은 매우 질이 좋은 나무들을 만들어낸 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천사가 강조하는 것은 단지 죽은 바다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그 기적을 일으킨 그 물이

주님의 집(성소)에서 흘러나온 사실에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제키엘서 47장 8절의 '이 물'하느님의 현존과 임재가 회복된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할 땅을 하느님의 첫 창조와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나라의 축복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낙원으로 탈바꿈시킬 물이라는 두 가지 사실이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드러내는 '이 물'은

하느님께서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백성들이 하느님을 떠나게 했던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났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하느님과 백성들의 관계를 회복시킬 것을 상징하는

'화해의 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물은 백성들이 돌아와 하느님께서 주시는

먹기에 좋은 열매와 약재료가 될 만한 푸른 잎과

풍부한 고기(수자원)를 보장하는 축복의 물이요, 생명의 물이다.

 

즉 에제키엘은 '이 물'이 축복과 풍요를 상징한다는

구약 성경의 일반적인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공존하는

온전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는

종말론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강조한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의미를 갖는 '이 물'

창세기 2장 9~17절에서 묘사된 에덴에서 발원하여

생명 나무를 비롯한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자라게 한,

첫 창조의 동산에서 흘러나온는 물의 개념과 관련된다.

 

또한 에제키엘서에서 제시되는 '이 물'은 요한 묵시록 22장 1-5절에서

'새 예루살렘'에서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으로 표현된다.

 

에제키엘서의 물하느님의 현존과 임재가 회복된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처럼

요한 묵시록의 물하느님과 어린 양의 어좌로부터 나와서 흘렀다. 

 

그리고 에제키엘서의 물이 강가에 무성하고 풍성한 나무를 자라게 한 것처럼

요한 묵시록의 물강 이쪽 저쪽에서 생명 나무를 자라게 하고

다달이 열두번 열매를 맺고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에 쓰이게 한다. 

 

또한 이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새 예루살렘에는 다시 저주가 없고

하느님만이 영원토록 왕으로 다스리시는 온전한 하느님의 나라가 유지된다.

 

요한 묵시록에서 에제키엘서의 '이 물'을 종말론적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에제키엘서에서 사용된 '이 물'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물이라는 신학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에제키엘서의 '이 물'은 하느님과 관계의 회복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첫 창조사업을 회복하는 물이면서 동시에 재창조 사업을 완성하는,

즉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물이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단지 옛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치적 해방이나 민족적 회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무너진 성전 건물을 다시 지어 옛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다시 이루려는

외형적 번영에만 마음을 기울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에제키엘서 47장의 8절의 '이 물' 개념을 통해 새로운 메세지를 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

단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나 외형적 발전과 성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의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의 영광 회복과 그 분을 신뢰하고 따르는

온 세상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의 풍요와 즐거움을 맛보고

체험하며 살도록 하는, 하느님 나라의 건립에 있음을 알리고 있다.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간다'

 

에제키엘서 47장 1-5절은 주님의 집(성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일반 성인(成人)의 키를 훨씬 넘길 정도록 깊고 넓은 강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다.

 

에제키엘서 47장 8절은 그 물이 동쪽으로 계속 흘러가

아라바를 지나 사해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아라바'(arabah; 구약에서 평지, 사막, 나룻터로 번역)

이스라엘의 땅 중에서 남북 방향으로 가로질러 형성되어 있는

저지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아라바는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은 모양을 하며

60% 이상이 지중해 해면보다 더 낮은 극저지대를 형성하였다.

 

예루살렘의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은

자연스럽게 고지대인 서쪽의 예루살렘에서

저지대인 동쪽의 요르단 계곡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고,

다시 사해 인근의 아라바 저지대를 지나

사해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에제키엘서 47장 8절의 상반절은 주님의 집(성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이고, 후반절 바다로 흘러 들어간 물로 인해

그 바다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한편 '되살아난다'에 해당하는 '웨니르페우'(wenirpheu)원형

'라파'(rapha)'고치다' 혹은 '치료하다'의 의미이다.

 

특히 '라파'창세기 20장 17절에서 아비멜렉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했다가

그의 가문의 대가 끊어질 위기에 놓였는데, 아브라함이 그를 위해 기도한 뒤에

아비멜렉 집안의 모든 태가 열려 다시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고쳐 주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에제키엘서 47장 8절은 죽은 바다가 되살아났다는,

즉 무생물이 생물이 되었다는 뜻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생명체가 잉태되거나 번식되지 못하는 바다가

생명이 살 수 있는 바다로 고침을 받았다는 의미로 번역되어야 한다.

 

'라파'(rapha)의 이런 의미를 살려 본문을 의역하면,

'그러자 그 물이 고침을 받아 생물이 살게 되었다'가 된다.

 

주님의 집(성소)으로부터 나온 물이, 염분이 많아

생물이 도저히 살 수 없었던 죽음의 바다를 고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생명의 바다로 변화시킨 것이다.

 

여기서 요한 복음 4장 13~14절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복음 (요한2,13-22)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4~16)

 

요한 복음 2장 13~25절예수님께서 하신 제1차 성전 정화 사건

이로 말미암아 야기된 유대인과의 언쟁기적을 보고 믿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제1차 성전 정화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 후반에

제2차 성전 정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마태21,10~18; 마르11,15~19; 루카19,45.46).

 

그런데 제1차 성전 정화 사건은 요한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제2차 성전 정화 사건은 공관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공관 복음서 저자들이 유사한 두 사건 가운데서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상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된 후기 사건만을 기록

반면에, 요한 복음사가는 이러한 공관 복음서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초기 성전 정화 사건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활동 초기에 있었던 이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유대인들의 종교적 부패상을 부각시키며,

예수님의 이들의 위선과 죄악상을 깨우치기 위한 새로운 역할이

필연적이었음을 보여 주려고 했다.

 

요한 복음 2장 14절'보시고'에 해당하는 '휴렌'(huren; found)

'휴리스코'(hurisko)의 부정 과거이다.

 

이 동사는 그 무엇을 집요하게 찾다가 본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하거나

만난 것을 나타낸다.

 

시기적으로 이때는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첫 해 겨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전 안에서 자행되던 불법 행위들은 너무나 쉽게 목격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며,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를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에 들어가셨다가

우연히 이러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편, '성전'에 해당하는 '히에론'(hieron) '성소'(sanctuary), '성전'(temple)

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정관사 '토'(to)와 같이 쓰여서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한다.

 

'히에론'(hieron)성전 건물 그 자체를 가리키는 '나오스'(naos)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는데, 성전의 건물은 물론이고 마당(뜰)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예수님께서는 매매와 환전이 이루어지던 성전 마당의 이방인 뜰을 유심히 보셨다.

 

하느님께서 성별하신 이런 성전 영역 안에서 불법이 행해진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 타락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성전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던 범죄는 제물로 바쳐진 짐승들을 팔며

돈을 바꾸는 일과 관련 되어 있다.

 

멀리서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희생 제물을 가져올 수 없어서

예루살렘에서 구해야 했다.

 

이 제물은 흠없는 것이어야 했고, 사제가 적격 여부를 심사했다.

 

비록 흠없는 제물이라 할지라도 멀리서 가져온 경우,

사제들은 쉽게 트집을 잡아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사제들은 가져갈 수 없는 제물들을 헐값에 사들여서

성전에서 비싼 값에 되팔았다.

 

결국 성전에서 파는 제물들은 불합격을 받을 우려가 없어서 선호되었고,

대사제 무리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었다.

 

또한 환전 행위는 많은 순례자들이 성전을 찾는 기회를 이용해서

매년 바쳐야 하는 성전세 반 세켈을 바치는 것과 관련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20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는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데,

이것은 이방의 군주나 우상의 얼굴이나 각명이 들어 있지 않으면서

순도가 높은 은으로 만들어진 세겔 주화여야 한다.

 

유대인들은 보통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이 주화를 바쳤다(마태17,27).

파스카 축제 약 20일 전부터 환전소가 예루살렘 성전에 설치되었고,

이때 환전 수수료는 12.5% 정도였다.

 

대사제 무리들은 자신들의 직권을 이용해서 이러한 일에 관여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대사제 무리들은 큰 부(富)를 누렸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2장 19절에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다.

 

여기서 '성전'에 해당하는 '나온'(naon)2장 14절성전 경내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hieron)보다 좁은 의미로 쓰였는데, 이것은 비유적으로

예수님의 몸과 성도의 몸(1코린6,19), 교회(1코린3,16.17; 에페2,21)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염두에 두신 성전은 바로 자신의 몸이며,

그분은 이것을 허물어 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는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안에서

행해지던 일체의 의식들이 이 땅에서 소멸되고 없어질 수 있지만,

예수님을 통한 구원 사업은 아무도 막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중요한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요한 복음 2장 20절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나오스'(naos)라는 성전은

'헤로데 성전'으로서 B.C.19년에 착공하여 A.D.46년에 이르러셔야

완공이 되었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는 아직도 20 여년

가까이 앞둔 시점이었다.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 2장 19절에서 성전을 허문다는 것은

위의 성전이 아니라, 인류 구속 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죽어야 하는 당신 육체의 죽음을 가리키며,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은 사흘 안에 부활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2014년 11월 9일 주일

 



1961년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동 · 서 베를린 경계선 약 45.1킬로미터에 걸친 콘크리트 벽으로, 1961년에 동독 정부가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사람들과 동독 마르크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축조하였다. 오랜 기간 동 · 서 냉전의 상징물로 인식되어 온 베를린 장벽은 동유럽의 민주화로 1989년 11월 9일에 철거되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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