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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례자 요한과 메시아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08 조회수1,202 추천수0 반대(0) 신고

요한 복음 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 유다 지방 어느 한 마을을 가리킨다.

세례자는 요르단 강 동편에서 세례를 베푼 것으로 말들 하지만, 어느 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았을뿐더러 함께 세례를 베풀지도 않았으리라 추정된다. 공관복음에는 예수가 세례를 베풀었다는 보도가 전혀 없고 다만 예수가 세례자의 세례를 인정한 보도나 부활 후 세례를 베풀라는 예수의 명령만 있다.

 

한편 예수가 세례를 베풀었다고 보도하면서 다른 한편 예수 친히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풀었다고 한다. 만일 예수가 세례를 베풀었다면 세례자의 세례와는 분명히 다른, “회개의 세례를 능가한 세례였을 것이다. 만일 제자들만이 세례를 베풀었다면 세례자의 제자 중 어떤 제자들이 예수를 따르도록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고, 예수는 다만 그것을 허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령의 세례는 예수 부활 이후에 비로소 베풀어졌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 세례자 요한의 활동 목적과 그 의의를 시사한다. 세례자는 메시아를 위한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유다 지방 어느 곳, 즉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중요한 곳에서 예수가 활동할 장소까지 배려했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예수가 아직 공생활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음을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설명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 세례자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동기를 시사하는 저자의 설명이다. 예수가 행한 세례를 지켜본 어떤 유다인이 예수의 세례와 세례자의 세례를 두고서 어느 세례가 더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아마도 세례자의 제자들에게 논쟁을 걸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쟁점은 세례가 아니라 정결례에 모아져 있다. 이 쟁점의 주제는 세례자의 제자들 편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원문에는 시사되어 있다.

 

정결례는 유다인들의 몸씻는 예식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쟁점의 관건은 사람들의 정화이고 예수의 세례와 세례자의 세례가 어느 정도 내적으로 정화시켜 죄를 씻는 힘이 있는지에 문제가 제기되어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죄의 정화는 세례에 관련된 초대교회 용어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세례자의 추종자들에 대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대결 또는 논쟁적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 세례자의 제자들이 예수의 세례행위와 그 성과에 대해 자기네 스승에게 하소연한다. 인간적 결투와 함께 아직 그들이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 하느님이 사람들을 이끄는 힘을 주시지 않았다면 예수는 그런 성과를 얻을 수 없었으리라는 뜻이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하고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 세례자의 제자들이 오히려 자기네 스승의 증언 내용에 대한 증인으로 언급됨으로써 세례자의 정체와 사명이 분명해진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 신랑은 그리스도를, 신부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신랑의 친구는 세례자를 가리키는 은유다. 특히 그리스도와 세례자의 관계가 당시 결혼 풍습에 따른 신랑과 신랑 친구의 관계로 비유됨으로써 더욱 구체화한다. 신랑 친구는 신부를 신랑에게 데려가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신랑과 신부의 첫날밤을 신부 대기실에서 지켜보다가 신랑이 신부의 처녀성을 인정하고 기쁨의 환호성과 함께 신부를 아내로 맞이함으로써 신랑 친구도 함께 기쁨을 나눈다. 그 인정은 곧 신부가 처녀로 보장한 신뢰에 대한 확인이다. 세례자는 자기가 증언한 예수와 함께 나누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이와같이 신랑 친구가 신랑의 환호성과 함께 맛보는 기쁨으로 비유한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필수성을 시사한다. “커지다작아지다는 활동의 힘과 영향력에 관한 표현이다. 하느님이 구원계획에 의해 세례자의 임무나 활동은 이제 끝나가고, 예수로 인해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펼쳐진다는 것을 뜻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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