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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해욱 신부의 {내맡긴 영혼은} 내맡긴 영혼이 카페의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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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민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4 조회수484 추천수1 반대(0) 신고

내맡긴 영혼이 카페의 활동을 멈추시면?(2010, 08, 21)


저를 통해 하느님께 내맡기신 영혼이 이 카페의 활동을 멈추신다면,
저의 영적지도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신 것입니다.


이미 제가 이곳의 글을 통하여 말씀드렸지만,
저는 내맡긴 영혼들의 "보조교사"에 불과합니다.


내맡긴 영혼들의 담임교사는 분명,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스승"이 되어 내맡긴 영혼의 모든 것을 친히 다
지도해 주십니다. 그분의 지도(가르침)는 정말로 놀랍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우리는 날이 갈수록 감탄의 감탄을 연속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모든 놀라운 가르침을 다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지만 단,
100%를 완전히 다 내맡긴 영혼들에 한해서만 말입니다.


 "어느 누가 100%를 다 내맡겼냐 아니냐" 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놀랍게도 주님께서 다 직접 선별해 주십니다.


지금까지의 제 경험으로 "주님의 선별 기간"은,
"짧게"는 한 달 안으로, 그리고 지난 해 저를 통해 처음으로
첫 내맡긴 영혼의 탄생 이후, "길게"는 지금까지 6~7개월 안으로는
다 선별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별기간이 짧든 길든 간에 저의 "느낌"은,
"저 사람이 100% 다 내맡긴 영혼인가 아닌가"를 한두 달 안에
다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 다음에 다른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해도
지금까지 저의 "느낌"이 거의 확실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왜 이러한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저도 아직까지 여러분과 같은 "거룩한 내맡김의 왕초보"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길은 우리가 이 세상 마치는 그 순간까지,
스승 예수님의 지도와 영적지도 신부(보조교사)의 보충수업을 받으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착실하게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성장"을 이루려는 욕심으로
자기 혼자 무엇(獨學)을 해 나가려 이 카페의 활동(보충수업)을 멈춘다면,
그 학생(내맡긴 영혼)의 성적(신앙수준)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 학생(보충수업을 거부한)이 다른 훌륭한 보조교사
(영적지도 신부)를 만나게 되어 카페활동을 멈추었다면,
그것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저를 통해 내맡기게 되신 많은 영혼들이
저보다 뛰어난 훌륭한 영적지도 신부를 찾아 떠나기를 정말로 원합니다.


이것은, 제가 일부러 겸손을 가장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의 첫째 특징은 "마음 숨김"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숨기는 사람이 100%를 다 내맡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숨은 일도 다 아시는 그분(마태 6,6)" 앞에 다 내맡겼는데
내맡긴 영혼들 앞에서 무엇을 더 숨기겠습니까?


내맡긴 영혼들의 특징은 "요란함이 없는 단순 명료함"입니다.
단순 명료의 속성이 "거짓 없음"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없음"은 "숨김 없음"과 같은 말입니다.
거짓이 없는데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내맡긴 영혼들이 저를 떠나 더 탁월한 영적지도 신부를 만나게 된다면,
저를 비롯한 저를 통해 보충수업을 받고 있는 남아 있는 다른
내맡긴 영혼들의 영적성장을 위해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영적성장을 위해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100% 다 내맡긴 영혼이
아닐 것입니다.


얼마든지 저를 떠나 저보다 더 훌륭한 영적지도 신부를 찾아가시라는 말은
 한편으로 저의 "겸손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지금 저를 통해 엄청난 역사를 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맡김의 삶을 살기 시작한 이후에 저를 통해 드러나는
많은 일들에서 저는 그 사실을 아주 확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제 앞에서 하느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계신데
제가 그것을 부인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주님, 저를 통해 드러내시는 당신의 모든 일을 통해,
당신 마음껏 찬미, 영광 받으소서!"


내맡긴 모든 영혼은 반드시 "영적지도 신부"가 필요합니다.
스승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것을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사제직"을 설립하셨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이 세상에 있어서 "비가시적"인 당신을 대신할
가시적인 당신의 대리자가 필요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제란 가시적인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용해 비가시적인
하느님의 은총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게 하는
 하느님의 이 세상 대리자입니다.


과거에 제가 이러한 말씀을 드렸다면,
신자들에게 저의 사제적 권위에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였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의 저는 그러한 인위적 권위가 필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 많은 성인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 뛰어난 영적 경지에 오른 성인들께서도 반드시
"영적지도자와 고해 신부"를 필요로 하셨음을 말입니다.


누구나 영적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영적지도자와 고해 신부를 둘 것을
 강조하셨으며, 더 나아가 영적성장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고해 신부도 과감히 바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 이 카페의 활동을 멈추고 "조용히 관상"하며 살겠다는,
어떤 분이 계셨습니다. 저를 통해 내맡긴 그분에게 이 카페의
"내맡김의 영성"을 열심히 읽어보라고 수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내맡김의 영성을 읽어 보지 않고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 카페에 한두 번 들어오다 활동을 멈추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이 카페에서 활동을 하면 세상일들에 휩쓸리게 되어
"고요"를 잃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쩔때로 "마리아"만은 아니 된다고 말입니다.
"마리아" 속엔 "마르타"가 반드시 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타" 속엔 "마리아"가 반드시 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리아의 참모습이요, 마르타의 참모습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속에 "하느님"이 숨어 계시고,
"하느님" 속에 "예수님"이 숨어 계시고,
하느님 속에 "예수님과 성령님"이 숨어 계심과 같은 원리 입니다.
하느님의 활동도 절대로 개인플레이를 안 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다 함께 작용하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특성 중 아주 크신 특성이십니다.


열씸해지려는 그 누가 자신의 영적 고요만을 위해 고요를 고집한다면,
그 고요 속엔 "영원한 고요", "침묵의 고요", "고정된 고요",
"죽음의 고요"가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침묵과 고요"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함이지
"침묵과 고요를 즐기기 위한 침묵과 고요"가 되어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침묵 속에 계시지만, 침묵 속에 계신
하느님이 "엄청난 힘"으로 움직이고 활동하고 계심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침묵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 영혼들의 큰 특징은 "움직임"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면 그분께서 고요 속에 아니 그냥 버려두십니다.
하느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한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은,
그 "움직임"이 "고요하면서도 엄청난 큰 움직임"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 "움직임"은 "요란한 움직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란한 움직임 속엔 하느님이 아니 계심도 우리가 분명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많고 시끄러운 사람"을 우리가 늘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가장 말 많고 시끄러운 사람이 누구인가?
내가 그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입을 닫으라는 소리는 더욱 아닙니다.
늘 말없이 입 다물고 있는 사람은 더욱 쪼심해야 할 싸람입니다.
"참 움직임"은 파도를 탑니다.
서로 주고받는 리듬을 탑니다.


일부러 리듬을 타려고 해서 리듬을 타는 것이 아니라,
"참 움직임"이 그 사람 안에 자리하고 있기에 저절로 리듬을
 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참 움직임의 원동력이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100% 내맡긴 영혼은 그 참 움직임,
 "생명의 리듬"을 타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리듬은 "자유", 그 자체입니다.
자유의 근원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맡긴 영혼은 이 세상 어느 것에서도 전혀 얽매임이 없게 됩니다.
"참 자유인"입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고요는 가짜 고요요, 죽음입니다.
참 생명은 고요 속에서 요동치고 있습니다.
요동치고 움직이는 것이 참 생명입니다,
참 생명의 주인의 모습이 그러하시기 때문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고요 속에 사탄이 숨어 있음을 모리십니까?
움직이지 않는 고요가 사탄의 그물망인 것을 그렇게도 모리십니까?
사탄이 있는 곳에 "어두움"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에는 "빛"이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고요는 어둡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모든 것은 어둡기만 합니다.
어둠의 주인이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은 움직여야 합니다.
자유로운 생명의 리듬을 타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영육으로 병이 듭니다.
힘차게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빛을 발합니다.
움직이는 고요는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빛의 주인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열씸히 카페 활동을 하십시오.
카페 활동은 고요 속의 리듬입니다.
리듬을 타십시오.
글을 올리고 싶은 느낌이 있으시면 글을 올리십시오.
그러나 생각을 올리지는 마십시오.
생각을 올리면 글이 부자연스럽게 됩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며,
그 넘이 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움"입니다.
자꾸 그 넘이 우리의 생각을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이 카페의 활동을 주관하는 분은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 안에서 평화로이 활동(리듬)을 타시기 바랍니다.
그 리듬이 리듬의 주관자이신 그분께로 님들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소리로 듣기)

 

 

 

 

  

  http://cafe.daum.net/likeamaria (다음 "마리아처럼" 카페 바로가기)

 

  

 

 

 

 

 이해욱 신부님의 책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가 출간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참으로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사는 것,

즉, <거룩한 내맡김 영성>의 삶입니다.

   

 

 


 가톨릭 출판사 인터넷 쇼핑몰  www.catholicbook.kr

 직영매장: 명동 대성당 (02)-776-3601

                가톨릭회관  (02)-777-2521

                서초동성당  (02)-313-1886

                서울성모병원 (02)-534-1886

                절두산순교성지 (02)-3141-1886

                부천성모병원 (032)-343-1886

                  미주지사 (323)-734-338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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