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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 -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
작성자신대철 쪽지 캡슐 작성일2015-12-21 조회수6,260 추천수3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께 부족한 저와 저희 가정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이 시간 허락해주신 사랑하는 저의 모든 것이신 아버지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현재 전 일본에 살고있는 신은정 가타리나라고 합니다~ 해외거주자가 굿뉴스에 가입하기가 까다로워 동생이 대신 가입해줘서 이름이 다름을 밝힙니다!>

 

2010년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처음 시댁으로 인사갔던 날, 시어머님의 냉랭한 반응 잊혀 지지가 않습니다. 어머니는 톨릭 신자인 저를 이방인이라 호칭하시며, 성교회와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까지 마구 비판하셨습니다.

 

결혼을 6개월 앞두고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보라 하셔서, 새벽미사를 드리고 시댁에서 다니는 교회에 가야했습니다. 다행히 담임목사님의 말씀이 참 좋아서 제 마음에 많은 위로가 되었고 주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식 일주일 전에 관면혼배를 하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주님께서는 저희 부부를 도쿄로 보내주셨습니다.

 

도쿄에 와서도 처음 얼마 동안은 성당가서 미사를 드리고 다시 한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는데 어느 날 신랑이 힘들었던지 저더러 혼자 성당가서 미사 드리고 오라고 권하였습니다. 자기는 집에서 인터넷으로 말씀 듣는다면서요. 어쩌다 가끔 주일 미사를 같이 드리기도 했지만, 신랑은 주일을 지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결혼 후 일 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에 계시는 시어머님께서 ‘신천지’라는 이단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셨습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저희 부부는 시어머님의 끈질긴 요구로 인해 도쿄 한인타운의 어느 목사님의 집으로 가서 성경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세 번 정도 그 곳을 방문했을 때 느낌이 이상해 찾아보니 다름 아닌‘신천지’ 였습니다.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그 곳 목사님의 실체는 목회자가 아닌 선교사라 칭하는 사람이었고, 그 곳으로 대학생들과 다른 개신교회에 다니는 많은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찾아들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저희 신랑이었습니다. 어머님께 엄청난 실망을 한 신랑이 왜 당당히 신천지라고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셨어요?” 질문을 하 어머님은 마치 로봇처럼 신천지에서 교육받은 대로 같은 말만 되풀이하셨습니다. 신랑과 시어머님의 의미 없는 여러 차례의 긴 전화 통화를 들으며 저는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하단 생각만 들었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그 이후로도 일본에 파견된 신천지 사람들에게 저희의 연락처를 주며 끊임없이 힘들게 하셨습니다. 아침부터 전화가 오고, 안 받으면 음성메일을 남깁니다. ‘효도하는 마음으로 신천지의 말씀을 배워봐라.’가 그들이 남긴 음성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희 부부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오는 전화는 일절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괴로운 중에도 한 가지 얻은 것이 생겼습니다. 신랑이 저와 주일 미사에 함께 참례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시어머님의 신천지 사건과 겹쳐 저는 일생일대의 큰 사건을 겪게 되었는데 바로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일본 동북 대지진 사건입니다. 지진이 나던 그 날 저는 김치전을 먹으며 티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온 세상이 흔들립니다. 벽에 걸린 시계가 갑자기 덜컹거리며 벽에 부딪히며 마찰음을 내는데 갑작스런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삽시간에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지진 나면 무조건 식탁이나 책상 밑으로 들어가라던 남편 말이 떠올라 얼른 식탁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있으면 멈출 거라며 다독이며 혼자서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지진은 멈추기는커녕 계속되었고, 저는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남편한테 전화를 해도 전파차단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고,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성모상을 껴안고 책상 밑으로 다시 기어들어갔습니다.

 

그냥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절로 기도가 튀어 나왔습니다. 성모님 치맛자락이라도 잡고 매달리면 지옥은 면하지 않을까 하는 절실한 마음에 펑 펑 울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책상 밑에 앉아 있는데 ‘김치전 먹다가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니 제 인생이 너무나 후회스럽고 한심했습니다. ‘한번만 살려주시면 저 아버지만 섬기며 잘 살겠습니다~!진심으로 통회하며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 후에도 여진은 계속되었고, 간헐적으로 계속 흔들리는데, 그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해 잠을 자다가도 깜짝 깜짝 놀라서 깨고 금방이라도 건물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정신 나간 상태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나? 이 나라에서 어떻게 도망가지?’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서 남편한테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 전, 시어머님과의 갈등 속에서 결혼 고민을 했던 저에게‘내가 왜 내 커리어도 포기하며 싫어하는 나라 일본에 와서 이렇게 불안 속에서 살아야하나?’라는 의문이 떠나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제 머릿속을 지배하는 물음표를 떨쳐내지 못하고 남편이랑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 다른 나라에 가서 일을 하던 공부를 하던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여기저기를 뒤지며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미사를 드려도, 기도를 해도 제 안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지옥 같은 삶 그 자체였습니다.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갔지만, 아프신 주임 신부님을 대신해 손님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시는 경우가 많았고, 한 동안 수녀님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글프고 외로운 마음이 자주 들어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저는 마치 길 잃은 양처럼 그렇게 헤매고 다녔습니다.

 

고국의 식구들과 통화를 할 때면 혹시라도 친정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봐‘괜찮아요, 엄마, 전 잘 지내고 있어요...’말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께서도 그러셨을 것입니다. 자식 목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어떤지 다 아는 것이 부모 마음이니까요. 나중에 낳아 키워보니 부모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본 지진 이후에 저희 어머니는 많이 늙으셨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보다도 저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힘들어 하는 저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습니까!

 

신천지 사건으로 주일 미사를 다니기는 하였으나 동북 지진 이후 신랑과 저는 몸도 마음도 지치고 황량해져 서로가 말은 하지 않았으나 위기감을 느끼고 기쁨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저희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동경을 떠나지 못한 주위의 많은 이들이 공포와 불안으로 죽음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지요. 주님께서는 과연 자비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동경 한복판을 헤매고 있는 길 잃은 양들을 위해 이해욱 프란치스코 신부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해 오신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미사를 드리는데, 제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뜻밖의 기쁨이 넘쳐흘렀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시며 참으로 위대하신 하느님이 우주만물, 그리고 나를 창조하셨고, 그분이 나의 주인이시며, 진정으로 내가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인식하고 인정해 드린다면 신앙인인 나의 삶이 너무나도 기쁘고 즐겁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듣는 순간 “바로 이 말씀이다!”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신부님의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은 제 맘에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고, 기쁨이 되어 저를 주님께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크게 경험하고 더구나 죽음 직전까지 가는 병고를 겪으신 신부님의 “거룩한 내맡김”은 참으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나의 모든 것, 나의 부족함과 죄까지도 송두리째 모두 다 하느님께 내맡겨 드렸고, 그분께서는 나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 주셨다. 나의 모든 것이 이미 다 그분의 것이 되었는데 무슨 걱정과 두려움이 남아 있겠는가 말이다.”

 

저는 신부님 말씀대로 살아봐야겠다는 굳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저는 매 주일 간절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은총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신부님 옆에 붙어있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저희 부부는 개인적으로 신부님과 함께 식사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신부님을 통해 신랑의 마음을 열어주셨고, 새로 시작하는 예비신자 교리반에 입교하여 톨릭 신자로 세례를 받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동북부 지진 사건을 겪은 지 약 일 년만의 일입니다.

 

결혼 전,‘평생을 신랑은 교회로, 저는 성당으로 각각 따로 다녀야 하나? 이 결혼이 과연 맞는가?’를 밤새워 고민하고 그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던 저에게 이보다 더 큰 은총은 없었습니다. 남의 신앙에 대한 비판과 단죄를 서슴지 않으시면서 자신만이 옳다는 영적 편견에 싸여있는 시어머님과의 관계며, 어떻게 해야 집안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내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4대 째 내려오는 개신교 집안의 장남인 신랑의 세례 당일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끔찍한 지진 후유증을 신부님의 영적 지도로 말끔히 치유해 주신 주님의 은총에 한없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끝없이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님, 부족한 저와 저희 가정을 통하여 홀로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한편 저희 부부는 결혼하고 바로 일본에 와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느라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고, 결혼 후 1년간은 잘못인 줄도 모르고 피임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2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조금 일본 생활에 적응이 되면서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번 시도를 해보았는데 임신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습니다. 약을 지어 보내주시는 등 부모님께서도 신경을 많이 써 주셨는데 정성을 들이면 들이는 만큼 임신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색은 안 하셨지만 양가 어른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고 저희 부부도 초조해져 갔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모든 것을 주님께 내맡기라.”는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말씀에 희망을 가졌습니다. 임신 여부에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 마음을 접고 ‘주님, 당신께서 가장 좋은 때에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희 부부의 모든 것을 내맡깁니다!’ 하며 내맡김의 화살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가르침대로 곰곰이, 담담히, 묵묵히 화살기도만 했습니다.

 

그러다 2013년 3월 친정아버지께서 갑자기 패혈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원래 지병이 있으시긴 했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운명이셔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식사를 못하고 가슴이 콩닥거려 밤에 잠도 잘 못자니 그야말로 산송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저 자신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아 신부님께 기도를 청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해도 잘 안 되었습니다. 그저 두렵고 슬프기만 했습니다.

 

때는 힘들어서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어둠으로부터 온 유혹이었습니다. 화살기도를 해야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하게 되는데, 화살기도를 안 하니 별별 생각이 다 들며 주님께 내맡기고 살았던 시절의 평화를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성령강림대축일부터 시작해서 111배 몸기도를 100일 동안 드려 보라고 권유해 주셨습니다. 마침 그 날은 저희 신랑이 견진성사를 받는 날이어서 저희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죽기 살기로 몸기도를 시작했고,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냥 입으로 화살기도를 드릴 때보다 힘은 들지만 훨씬 집중이 잘 되었고 그랬기에 더욱 간절히 올리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간절한 내맡김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렇게 3주 정도가 지난 무렵, 결혼한 지 3년 만에 주님께서 저의 태를 열어주시어 귀한 생명을 주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감격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희는 아기 태명을‘맡김이’로 지었습니다.

 

참으로 오묘하신 주님이십니다. 갑작스럽게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많이 힘드셨을 친정엄마와 친정 가족들에게도 기쁨이었고, 그 동안 언제 주시려나 하면서 기다렸던 저희 부부는 물론 시어른들께도 임신 소식은 축복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별 탈 없이 탄생한 딸 하은 에즈마리는 무럭무럭 건강한 아기로 자라 지금은 이 세상에 나온 지 19개월 차가 되었습니다. “아멘!”을 잘 하고, 춤추기를 좋아라 하며, 앞구르기를 즐겨하는 주님의 사랑스런 귀염둥이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 뱃속에는 주님의 또 다른 선물인 ‘피앗’이 무럭무럭 크고 있고, 12월 중순경에 태어날 예정입니다. 어쩌면 이 글이 세상에 전해질 때면 이미 이 세상에 나와 주님의 영광을 전해주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선 이 모든 은총들을 성교회와 한 사제를 통해 제게 허락하셨습니다.프란치스코 신부님을 도쿄에 보내주셔서 저로 하여금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의 삶으로 이끌어 주셨고, 온전히 주님께 내맡겨 드리고 그 분만을 뜨겁게 사랑하면 이곳에서부터 천상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에 저는 지금까지의 비참한 지옥 같은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화살기도를 불렀고, 아직도 정화될 이 너무나 많은 부족한 저이지만 그 마저도 조급함 없이 맡겨드리며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3.11 동북부 대지진 이후에 언제 또 대지진이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일본에 여전히 살고 있지만 지진 참사의 불안과 방사능으로 인한 먹거리에 대한 불신감등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버지의 뜻이고, 저는 그저 감사와 기쁨으로 살면 된다는 참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 주님께 엎드려 감사드릴 뿐입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 내맡기게 해 주셔서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저를 진정으로 살게 해 주셔서요.

 

저는 모태 신앙 집안에서 자라 기본적인 신앙교육은 엄격하게 받고 자랐으나 가장 중요한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제 뜻대로 살아, 제 신앙은 죽어 있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부족한 저를 한 걸음씩 주님께로 이끌어주신 분은 역시 내맡김으로 주님만을 뜨겁게 사랑하게 된 한 사제이셨습니다. 이제는 주님만이 저의 행복이시라고 고백하게 해 주심에 눈물만 나며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 16,2)

 

이 모든 은총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주님 말씀에, 부족하지만 용기 내어 써 봅니다. 지금 과거의 저처럼 참 행복과 평화 없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빠! 아버지!

부족한 저와 저희 가정을 당신께 내맡기오니 온전히 당신 뜻대로 이끄시고

저희를 통하여 홀로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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