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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2주간 목요일]사람낚는 어부(루카 5,1-1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05 조회수1,164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22주간 목요일]사람낚는 어부(루카 5,1-11)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한다. (콜로 1,9-14)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 관한 9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며 간청하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10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11 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기쁜 마음으로,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화답송 시편 98(97),2-3ㄱㄴ.3ㄷㄹ-4.5-6(◎ 2ㄱ)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 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


예수님께서 시몬과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자,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 (루카 5,1-11)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콜로1,9-14)

 

"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기쁜 마음으로  (11)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12)

 

주님께 합당한 콜로새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을 위한 사도 바오로의 세번 째 기도 제목은 하느님의 영광의 힘을 받아 강하게 되는 삶이다.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힘'에 해당하는 '토 크리토스 테스 독세스 아우투' < to kratos tes dokses autu ;his glorious might(power)>라는 표현은 하느님 자신 속에 존재하는 내적 능력 혹은 감추인 위엄을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영광 속에 존재하시는 당신 자신(이사33,17)을 나타내 보일 때에 형체가 아닌 힘으로 나타내신다(탈출19,16-25; 신명4,12.15).

여기서 '힘'을 나타내기 위해 쓰인 '크라토스'(kratos)신약에서 12번 사용되었는데, 그중에 인간에 대해 사용된 것은 한번도 없고  마귀에 대해 사용된 한번(히브2,14)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느님께 대해서만 사용되었다.

 

이런 용례에서 살펴보면, 이 단어는 단순한 물리적 힘이 아니라 권능과 권세를 나타낸다.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영적 존재이신 당신 자신에게만 있는 그 권능(크리토스)을 따라 당신 백성들을 모든 힘(뒤나미스; dynamis)으로 능하게 하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여기서 '강해져서'로 번역된 '뒤나무메노이'(dynamumenoi; strengthened)의 원형 '뒤나모오'(dynamoo)'권한을 부여하다', '강하게 하다', 말하자면 연약한 가운데 있는 어떤 것을 강하게 만든다는 뜻이다(히브11,34).

본문에서는 현재분사로 쓰였는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신앙의 여정 내내 지속적으로 부어주신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원문은 2인칭 복수 수동태로서, 성도들이 능력을 계속적으로 공급받음으로써 내적 심령이 하느님에 의해 강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온전히 추종하는 자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상기시키거나, 또는 성령님의 역동적 활동을 통해 그들을 강하게 하신다.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기쁜 마음으로'

 

본문은 전치사 '에이스'(eis; so that ~ may~)를 통해 앞 문장과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강한 힘을 의지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잃지 않고 인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향이나 결과의 의미를 지닌 전치사 '에이스'(eis)로 시작하는 본문에서 '에이스'는 결과의 의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따라 능력으로 가득한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인내하며,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야고보 서간 1장 2-4절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에 기뻐하라고 권고했듯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시련과 시험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마지막 승리를 바라보며 담대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보다 더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인격으로 성숙될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견디어 내기를'로 번역된 '휘포모넨'(hypomonen; patience)의 원형 '휘포모네'(hypoone) '~아래에'(under)를 뜻하는 전치사 '휘포'(hypo)'머물러 있다'(remain)를 뜻하는 동사 '메노'(meno)에서 유래한 합성어로서 환경적 어려움에 굴복하거나 피하지 않고 그 환경에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견디어 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참고'로 번역된 '마크로튀미안'(makrothymian; longsuffering; endurance)원형 '마크로튀미아'(makrothymia)대인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가운데서 복수하지 않고 오래 참는 모습을 가리킨다.

 

사도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바라는,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한 삶의 세번째 모습어떠한 환경적 또는 대인 관계의 어려움 앞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권능의 힘을 받아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만을 신뢰하는 자가 가지게 되는 강한 능력이고 힘이며, 동시에 흔들림없는 모습이다.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 합당한 삶을 사는 콜로새 성도들의 구체적 삶을 위한  사도 바오로의 마지막 기도 제목이 나오는데, 그것은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삶이다.

여기서 '빛의 나라에서'로 번역된 '엔 토 포티'(en to poti; in light)'빛 안에서'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영광, 은총, 사랑 등과 같은 개념이며 종말론적으로는 빛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주셨기 때문이다.

'상속의 몫을'로 번역된 '텐 메리다 투 클레루'(ten merida tu klleru; the partakers of the inheritance)에서, '상속'(기업)으로 번역된 '클레루'(klleru; inheritance)의 원형 '클레로스'(klleros)구약적 개념으로 제비뽑기로 얻게 된 '몫', '분깃'을 뜻한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입성하면서 분배받은 땅과 관련된 표현이지만, 신약 이후로는 구원 및 마지막 종말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된 상급을 상징한다.

사실 모든 성도들은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러한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하느님의 계명을 그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 응답하며 믿음을 실천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분깃이 허락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진 이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자연적으로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감사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동인 동시에 사도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이 감사 ('유카리스툰테스; eucharistuntes; giving thanks)인 것이다.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복음(루카5,1~11)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스승님'에 해당하는 '에피스타타'(epistata; master)는 신약 성경에서  루카  복음사가 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단어이다(루카8,24.45; 9,33.49; 17,13).

루카 복음사가는 일반적으로 '선생'(teacher)에 대한 묘사로서 사용되는 '디다스칼로스'(didaskalos)나 율법 교사에 대한 존칭어인 '랍비' (rabbi)라는 단어보다는 '에피스타타'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에피스타타'다른 사람보다 신분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권위를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 17장 13절의 나병 환자 열 사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제자들의 입으로 고백된 경우처럼, 이 용어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개인적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도 베드로는 다만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권위를 느껴서 예수님을 '에피스타타'로 불렀다.

그러나 이 호칭은 기적의 체험 후에는 신앙 고백적 호칭인 '퀴리에'(kyrie) 즉 '주님'(Lord)으로 바뀐다(루카5,8).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이 구절은 베드로의 믿음과 순종의 태도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러나'로 번역된 접속사 '데'(de)는 여기서 'but' 혹은 'nevertheless'의 의미를 지닌다.

 

말하자면, 전문 어부로서 고기잡이와 관련된 갈릴래아 호수에 대한 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으며, 전날 밤 밤새도록 그물질을 해보았지만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또 날이 밝은 아침(오전)에 고기가 없는 깊은 데로 저어 가서 그물을 내린다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의지가 베드로에게 있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전폭적인 순종의 의지'제가 ~내리겠습니다'로 번역된 '칼라소'(chalaso; I will let down)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단어는 미래 능동태 동사로서 자신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데, 마지 못해서나 억지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순종을 하겠다는 베드로 개인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말씀대로'에 해당하는 '에피 ~ 토 레마티 수'(epi ~ to remati su; at your word; because you say so)'당신의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뜻이다.

여기서 '스승님의 말씀'루카 복음 5장 4절의 명령 뿐만 아니라 5장 3절에 기록된 '가르침의 말씀'까지 다 포함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배 위에서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고, 거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고 진실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기에,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해야 하겠다는 모종의 결심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깊은 데로 저어 나아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5,4)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떄, 베드로는 그 명령이 비상식적으로 들렸으나 즉각적이고 능동적으로 순종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 in spite of)의 믿음과 그 믿음은 바로 주님의 가르침에서 생겨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이기에 능동적으로 기쁘게 순종하는 믿음은, 평소 주님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주님의 성품과 덕성을 체험하지 않고는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성숙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듣고, 전폭적으로 믿고 따르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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