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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바로보기 / 일곱 귀신 이야기 (마태12,38-45)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30 조회수8,039 추천수0 반대(0) 신고

 

 

(공동번역성서) 2021. 6. 30. 성경바로보기 

 

일곱 귀신 이야기 

 

(마태12,38-45)

38 그 때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예수께 '선생님,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말하자 3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40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뱃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 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 41 심판 날이 오면 니느웨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만 듣고도 회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요나 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42 심판 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도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43 '악령이 어떤 사람 안에 들어 있다가 그에게서 나오면 물 없는 광야에서 쉴 곳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찾지 못하면 44 '전에 있던 집으로 되돌아 가야지' 하면서 다시 돌아 간다. 돌아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 나와 45 자기보다 더 흉악한 악령 일곱을 데리고 들어 가 자리잡고 산다. 그러면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선택된 인생을 삽니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이다라는 명제는 일견 옳아 보이죠. 관계를 맺을 사람을 선택하고 또 사건을 선택하고 진로를 선택하고 사물을 선택하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사는 것이 보편적 인간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심지어 인간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결정지어지도록 종교행위를 빙자해서 열심히 빌기도 하죠. 아니 거의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그러한 자신의 그 선택의 용이를 위해서 자신의 종교와 신을 이용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에 나오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느냐 죽느냐 거기에 대한 선택을 먼저 해야 돼요! 일단 죽음이냐 삶이냐를 선택을 해야 그 나머지 선택이 가능해질 수 있다 말입니다. 그렇게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에요.

소유 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요 그 소유라는 대상이 사라지거나 줄어들게 되면 상실감을 느끼게 되지만, 존재 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소유의 변화에 의해서 수시로 행복과 불행에 따른 롤로코스트를 타지 않을 수 있어요. 존재가 소유를 지배해야지 소유에 의해서 인간존재가 끌려 다니면 안 된다는 거죠.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절대 여기에 넘어가면 안 돼요. 인간은 소유의 증대를 목표로 삼아서 살아서는 안 되고 인간 존재 자체의 그 가치와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삶아야 한다라는 거죠. 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걸 다 뭉뚱그려 죄라고 해요. 인간은 소유를 늘이고 성공을 추구하며 행복을 얻도록 창조되지도 않았지만, 자기 존재의 성숙과 발전과 향상을 위해 창조된 것도 아닙니다!

역사는 인간이 착해지고 순결해지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아니라는 거예요.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죄성은요 자기 존재의 착함이나 선함등도 소유의 대상으로 끌어당겨요. 그래서 그것으로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그게 소유 지향적 삶이에요.

어떤 스님처럼 무소유의 삶을 자기의 소유로 삼기도 하고, 하느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청빈과 무소유는 그 무소유와 청빈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죄성이란 말입니다. 봉사나 구제 이런 것도 인간들은 소유로 붙들어요. 내 것! 내가 한 것! 그러니까 내가 칭찬받아야 할 일!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진짜 존재 지향적 삶을 선택할 수도 없을 뿐만이 아니라, 그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 낼 수도 없어요.

여러분 인간들이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인간의 행위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인간들에 행위, 사건화된 인간들의 행위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성경이 관심을 갖는건 그러한 행위를 하는 그를 움직이는게 무엇인가를 아는 거예요. 그래서 나쁜 일 한 놈도 천국 가고, 착한 일 많이한 이가 지옥 가는 일이 성경에 그려져 있는 거예요.

 

(고린전13,3) 3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 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게 낫땅이라는 뜻이거든요. 없다라는 뜻이에요. 헛거다. 내 모든걸 다 털어서 구제를 하는 행위 요만큼도 안 남기고 내 모든걸 전부 털어서 남을 돕는 행위란 뜻이에요. 그리고 남을 위해 내 몸을 불사르도록 분신이죠 이거? 불사르도록 내주는 헌신이 하느님의 사랑을 입고 그 사랑을 아는 이의 행위가 아니라면 전부 헛것이라는 거예요. 아니 헛것 정도가 아니라 그것 자체를 하느님이 ''라 그래요.

스님들의 소신공양 있죠? 등신불. 몸을 태워서 그걸 부처님께 드립니다. 여러분 그걸 죄라 그래요. 기특한 종교행위가 아니라...

따라서 성도의 행위는 하나도 빠짐없이 하느님이라는 사랑의 본체를 증거하는 것이어야지,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이어야지. 그러니까 내가 쇠해지고 망해지며 하느님이 드러나는 것이어야지! 그 자체의 그 성숙이나 발전이나 변화를 보여주는 용도여서는 안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가 드러난다 말입니다. 그가 높아지는 거예요.

성경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 인간의 자기평판, 자기인기, 자기 자랑 챙기기의 일환으로 드러나는 그 어떤 모양의 선한 모습도 전부 죄라고 규정해 버려요. 오히려 소유의 획득을 지향하는 기복주의자들이나 신비주의자들은 순진하기라도 하죠. 어떨 때 보면 귀엽잖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거니까 순진하기라도 해요. 그 사람들은요.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이미 들키고나 있지만,

 

(에페소2,2) 2 여러분이 죄에 얽매여 있던 때에는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고 허공을 다스리는 세력의 두목(마귀 귀신)이 지시하는 대로 살았으며 오늘날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을 조종하는 악령의 지시대로 살았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는 자들이 다 귀신들린 자들이라는 거예요. 그게 착한 일이어도 귀신들린 자의 삶이란 말이에요. 하느님은 그들의 행위에 진노하신다라고 이야기한다 말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이 무엇을 좋아하실 것인가 조차도 자신들의 선악구조로 지들끼리 합의하여 지키고 있는 거라 말이에요. 그걸 죄라고 해요. 오늘 본문의 일곱 귀신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예요.

어떤 사람 속에 귀신이 살고 있었습니다. 귀신이라는 건 실제로 존재하는 마귀의 실체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우리 속에 여전히 존재하는 자아 숭배의 삶. 나를 주인으로 하여 사는 삶. 그 자아 숭배의 삶인 그 마귀적 속성 전체를 귀신 마귀 사탄이라고 한다 말입니다! 실존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런 총합적인 개념을 마귀 귀신이라고도 해요.

어리석은 사람들이 귀신들림 이라는걸 입에 거품이나 물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죠. 헛것이나 보고 헛소리나 듣고 하는거 목소리가 막 애기 목소리로 나오고 이러는거... 그건 그냥 질병이라 그러는 거예요. 진짜 무서운 귀신들림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건 병이에요. 물론 그러한 질병도 죽음의 증상이기는 해요. 그러나 정신 분열증 같은 류의 그 정신과적 질병만을 귀신들림으로 이해를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거예요.

 

우리 인간들의 뇌세포는 무려 천억 개가 넘어요. 그 뇌세포들이 시냅스라는 연결장치로 이어져 있어요. 그 시냅스로 화학 전달 물질이 흘러서 정보가 전달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뇌세포 속에서 일을 하는 신경전달 물질 중에 도파민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도파민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모르핀 같은 역할을 해서 감정, 동기부여, 욕망, 쾌락 등에 영향을 미치죠. 이 도파민 분비 조절에 이상이 발생하면 사람에게 다양한 질환이 생기게 되는데요.

도파민의 분비가 너무 많아지면 조울증이나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고요. 도파민의 분비가 줄어들 경우에는 우울증을 일으키게 돼요. 따라서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항 도파민제 주사를 한방 주면 차분해지게 됩니다. 주님이 귀신을 쫓아낸다라는 건 보다 본질적이며 근본적인 죄의 뿌리이자 본질의 총합을 부수고 밀어내는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게 축귀인 거예요.

예수님 당시 그러한 삶을 살던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단 말입니다. 율법학자들이었단 말이에요. 지금 그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 말입니다. 그 깨끗한 사람들에게 그 착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율법의 요만큼이라도 흠이 없었던 그 사람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니들이 일곱 귀신 들린 놈들이야 이놈들아' 이야기하는 거예요.

 

(루가18,11~14) 11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 하느님!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13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14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 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열심히 기도하며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했고,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도 않았던 바리새인을 주께서 불의하다 그런데 주님께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감히 하늘도 우러러보지 못하고 멀찌감치 서서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주님이 불쌍히 여겨주시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입니다"라고 면목없이 쭈그려 있는 사람 이 사람을 하느님이 의인이라고 한다구요.

"하느님 저는 하느님의 은혜가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자인데 어쩌면 좋습니까!"하고 면목 없는 자리에 서는 것을 하느님이 요구하신다 말입니다. 하느님 앞에 카운트되는건 그 사람의 행위가 아니에요. 그가 정말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실체와 하느님이라는 존재의 위대함을 아느냐!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아는 것! 그분이 누군지를 알면 내가 누군지를 알게 돼요. 그리고 나와 그분 사이의 그 갭을 이건 도저히 메꿔질 수 없는 갭을 누군가가 채워주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것을 알고 하느님의 은혜만을 꼭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영생이라고 하는 거예요. 주님은 그토록 열심히 종교행위를 했고 그토록 열심히 착한 일을 행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기도 했어요.

 

(요한8,44) 44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너희는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고 진리 쪽에 서 본 적이 없다. 그에게는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정녕 거짓말쟁이 이며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마귀다 그런 뜻이에요. 그 착한 사람들에게 귀신들렸다 이렇게 착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기의 영광과 가치와 자랑과 만족을 챙기기 위한 모든 시도가 귀신들린 자의 행위인 거예요. 그게 마귀의 행사인 거예요.

그러니까 착한 마귀 있다? 없다? 우리의 인간적 관점으로 봤을 때 착한 마귀 있어요? 마귀는 이 땅에서 광명한 천사로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악당같은 마귀는 그건 미련한 마귀에요. 진짜 마귀는 착한 마귀로 보여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존재의 주도권을 귀신이 쥐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마태12,43-45) 43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44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45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귀신이 사람의 허락도 안 받고 자기 마음대로 나갔다 들어갔다 하죠? 우리가 여기에서 그 귀신이 애초에 있던 곳에서 왜 나갔느냐를 밝히는 건 무의미한 수고에요. 왜냐면 성경이 그것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이 귀신에 들고 나는 것에 전혀 관여를 할 수 없다라는 사실이에요. 지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한다 말입니다.

마치 감기를 비롯한 질병이 자기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것과 비슷하고요. 도박이나 알콜이나 마약들의 중독들이 자기 마음대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현상과 비슷하기도 해요.

 

중독이라는 건 우리가 의지를 결단하고 노력을 하여 몰아낼 수 있는게 아닙니다. 중독이라는건 지가 찾아왔다가 지가 나가는 거예요. 그거를 알으라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감기가 우리 허락 맡고 들어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통보하고 나가나요? 아니에요. 인간은 이렇게 늘 객체로 살게 돼있어요. 어떤 상황 어떤 사건 속에서도 인간은 주체로 행사를 할 수 없어요. 그렇게 무력한 존재에요. 인간은요. 오늘 본문 바로 위에 나오는 예수님에 말씀 한번 보세요.

 

(마태12,27~28) 27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제자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8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보다시피 구원받기 전의 인간은요 마귀의 세간일 뿐이에요. 장롱 의자 흐흐... 테이블. 마귀집의 세간 그 세간은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해요. 마귀가 놓는 곳에 있어야 돼요. 그리고 마귀가 사용하는 데로 그냥 사용당해야 돼요. 그게 세간입니다. 따라서 마귀의 세간(世間)이 행하는 모든 일은 그 모양이 아무리 깨끗하고 훌륭해 보여도 마귀의 행사에요.

그러므로 서두에서 말씀드렸던 죽느냐 사느냐 혹은 소유냐 존재냐 등의 질문에 대한 선택도 결국 인간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거예요. 모든 인간들은 자기의 주인에 의해 선택을 강요당하며 살게 되어 있어요. 마귀의 세간은 마귀의 선택을 쫓아가게 되어 있는 거구요. 하느님 나라의 백성은 하느님의 선택을 쫓아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 결정으로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내 주관으로 내 의지로 나는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다?

연약하고 우매한 인간은요 늘 선택을 강요받으며 살아요. 그래서 아담 속의 인간은 늘 죄만 선택합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다스리고 있거든요. 그가 죄를 선택하라고 늘 선택을 강요하고 있어요.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음의 길인 소유형의 삶을 선택하는 거예요.

주님은 그렇게 죄만을 선택하게 만드는 그 마귀를 결박하고 당신의 백성들을 마귀의 집에서 구출해 내기 위해 오신 거라 말이에요. 그리고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게 만들어 버리는 걸 구속이라 그래요. 그런데 구원받은 성도가 선택하게 될 그 하느님의 뜻이 뭡니까?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를 믿는 것으로 수렴이 된다 말이에요.

그래서 성도의 선택은 늘 옛 자아가 망하는 쪽으로 점철이 되게 돼요. 그래서 우리들이 뭘 선택만 하면 망하는 거예요. 내 옛 자아가 죽는 쪽으로 하느님이 나를 끌고 가는 거예요. 내 선택을 바오로와 요한이 그 구속의 현실을 어떻게 표현하나 보세요.

 

(골로사이1,13~14)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요한일3,8) 8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 마귀의 세간을 늑탈해 내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은 전부 귀신들려 귀신의 세간으로 태어나는 거구요. 그들 중 창세전에 하느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느님 백성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그 마귀에게서 구출받게 되는 거예요. 그게 역사이며 구속사인 거예요.

 

(로마6,16) 16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종으로 넘겨 순종하면 여러분이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라는 사실을 모릅니까? 여러분은 죽음으로 이끄는 죄의 종이 되거나 의로움으로 이끄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은 처음부터 죄에 순종하는 죄의 종으로 마귀의 세간으로 귀신들려서 태어나요. 그러나 그러한 귀신들린 자의 삶으로 하느님의 의가 은혜가 침노해 들어와서 그 귀신을 잡아 결박을 하고 귀신의 세력 그 죄의 세력에서 구출을 해내서 의의 종으로 순종의 종으로 만들어내 버리는 거예요. 그 어디에도 인간 측에서의 공로를 찾아볼 수 없어요. 모든게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서 침공을 당한 신자의 삶 속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요. 자기 자신의 신됨. 그래서 성도라는 이들의 삶은 이 땅에서 자기의 영광이나 인기나 스스로의 만족까지도 챙겨 살 수 없는 삶이 되고야 말아요. 그래서 힘들어요. 그걸 고난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한 선택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때 귀신이 결박된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된게 귀신 씌운 거예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침공을 받지도 못한 자들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아담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랑과 헌신과 섬김과 봉사등을 흉내내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그것을 오늘 본문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다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깨끗이 청소되어 있어요.

귀신이 잠깐 나갔다 들어왔더니, 깨끗이 청소해 놨어 귀신이 어디 다른 거처가 없을까 하고 자기 마음대로 외출했습니다. 물 없는 곳 즉 은혜의 생수가 없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다른 거처를 마련하고자 했는데 물이 없는 곳에는 귀신들이 전부 들어차 있어요. 이게 현 세상의 실체에요.

그래서 마땅히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더니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요. 귀신은 그 사람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친구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더 난장판으로 삽니다. 총 몇 마리? 여덟 마리. 그런데 왜 제가 일곱마리라고 했냐면 그건 숫자를 세는 산술적 표현이 아니라, 7이라는 완전수를 써서 그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일곱마리라고 한 거예요.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는 거예요.

사람이 하느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자면 성령의 침입으로 그 마음이 은혜로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은혜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비워져 있는 상태에서 깨끗함을 흉내 내는 그 행위 고게 바리새인들이었단 말이에요.

예수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알지도 못하고 자기들의 제사 지냄, 율법 지킴, 구제, 봉사 이런 것으로 자기들을 드러내려고 했던게 깨끗함이거든요. 청소됨이에요. 그게 바로 일곱 귀신들린 행위라는 거예요. 오늘날 교회에 그게 얼마나 많습니까? 일곱 귀신 들린 인간들 얼마나 많아요? 착한 일곱 귀신 그걸 조심하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불교나 동양철학 등의 참 선 같은 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참선이라는건요, 번뇌의 원천이 되는 마음을 아예 들어내버리는거 거든요. 그래서 그걸 몰아 무아라고 그래요. 번뇌의 원천이 되는 마음을 들어내는 거예요. 완전히 비우는 거죠.

거기에서 무소유의 삶이 나오고, 청빈이 나오고, 청결한 삶이 나온다는 거예요. 은혜를 알지 못하고 그러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 일곱 귀신 들린 행위에요. 성경이 말하는 비움은 그런게 아닙니다. 성경이 성도에게 요구하는 비움은 성령으로 채워짐까지를 말하는 거예요. 은혜로 채워짐까지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게 채워지면서 비워져 가야지 이게 채워지지 않았는데 스스로 깨끗하게 청소하는걸 일곱 귀신 들렸다고 하는 거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복음을 배워야 되는 거예요. 복음을 알아야 되는 거라 말입니다. 그런데 유대주의는 바로 그런 승려들의 비움과 같은류의 비움으로 자신들을 자랑하고 있었던 거예요.

 

본문 38절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이 이야기가 주어지고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성경 박사들입니다. 성경연구가들이니까...

그리고 그 착한 행위 종교행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거짓말 안 하겠다고 입을 스스로 꿰맸던 사람들이니까... 님은 그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다! 너희들은 마귀의 세간이야! 그 말은 '넌 마귀야! 이 귀신아!' 그런 거예요. 귀신아.

주님은 그러한 거짓 비움과 거짓 깨끗함으로 다른 이들과의 비교 상대적 우월감을 누리는 그 교활한 행위를 뭐라고 그래요? 고 위에서 '성령 거역(훼방)'이라고 그러죠. 사제 말 안듣는게 성령훼방이 아니라... 그리고 그건 절대 용서함을 입을 수 없다라고 단호하게 못을 박아요.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연결이 되어 있는건지 아세요? 이 충돌의 발화지점은요 마태복음 1222~24절에 나오는 귀신들린 벙어리 치유 사건에서 연결이 되는 거예요.

 

(마태12,22~24) 22 그때에 사람들이, 마귀 들려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 주시자, 말을 못하던 그 사람이 말도 하고 보게도 되었다. 23 그러자 군중이 모두 질겁하며, “저분이 혹시 다윗의 자손이 아니신가?” 하고 말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은 이 말을 듣고,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마귀들을 쫓아내지 못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서 눈 멀고 귀가 먼 사람에게 귀신을 쫓아주셨어요. 우리 이런거 읽으면서 또 모든 병은 다 귀신이 들어와서 그런 건가 보다 생각하면 안 돼요. 그건 하나의 상징이에요. 마귀의 세력하에 있는 자들은 반드시 죽음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그 죽음의 증상으로 질병이 온다라는 것을 상징으로 이야기해주는 거지...

모든게 다 귀신이 들어와서 되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귀신한테 책임전가 시키지 마세요. 많이 먹어서 살찌는거고 그래서 병든거고 운동 안 해서 병드는 거예요. 무슨 귀신이에요.

 

귀신은 율법주의 율법주의자들은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귀신이 들려 눈이 멀고 귀가 먼 사람은 부정한 사람이구요 저주를 받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날 때부터 소경된 이를 가리키면서 이가 누구의 죄로 이렇게 된 것이냐고 물었던 거예요. 제자들까지도...

그런데 예수라는 사람이 그러한 저주받고 부정한 자를 율법과 행위의 법칙을 넘어서서 용서의 법칙에 의해 자기 마음대로 정한 자로 만들어 버린 거예요. 자기들 눈앞에서... 이건 지금 자기들이 주장하는 삶의 원리와 정 반대되는 삶의 원리가 지금 투입이 된거란 말입니다. 유대주의 자들에게 있어서 정(, 깨끗)함과 용서받음 이라는 건 인간 측에서의 열심과 노력이 근거가 되어야 하는 거였어요. 그게 유대주의잖아요. 율법주의.

그들은 그러한 노력과 열심을 내어놓지 못한 부정하고 더러운 자들은 다니엘서 7장의 그 심판주 그 인자가 그들은 구약에 능통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 심판주인 인자가 와서 심판을 해 버릴 거라고 굳게 믿었어요.

그런데 그 어떤 노력도 행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용서가 주어지냐 말이에요. 부정한 자에게 귀신들린 자에게서 어떻게 귀신이 나가냐 말이에요. 노력도 안했는데, 율법도 안 지켰는데, 여전히 부정한 상태인데 어떻게 니가 뭔데 와서 그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냐는 거예요.

이 용서의 법칙. 덮어줌의 법칙. 이게 구원의 법칙인데... 이걸 이해를 못하고 왜 율법도 안 지키고 제사도 안 지낸 저 부정한 자를 니 맘대로 용서하냐는 거예요. 그들이 생각하고 기대해 왔던 인자이신 메시야는 그렇게 오시면 안 된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 바리새인들이 그 예수님의 축귀(逐鬼)사건을 바알제불을 힘입어 행한 사건이라고 한 거예요. ? 자기들 생각에 인자인 메시야가 와서 한 일이 아니면 마귀가 한거니까...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모독(훼방)’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서 언급을 하시는 거예요.

하느님을 향한 모든 죄와 훼방이 용서의 법칙에 의해서 선물로 덮이는 시대가 왔다는 거예요 모든 죄와 허물은 사해질 수 있다라는 전제가 떨어지고 있단 말입니다. 지금!

그 증거로 아무것도 행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는 그림을 지금 보여준 거예요. 보라고 이게 표적이라고 이게 내 십자가 죽음에 의해 귀신은 이렇게 아무 너희들의 행함을 근거하지 않고 나가게 될 것이다 라는걸 그림으로 보여준 거예요.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이 왜 하느님처럼 선악과 따먹고 하느님처럼 강하게 된 인간들이 스스로의 노력과 힘과 의지를 묵살당한 채 수동적 양자의 모습으로 내려가야 하느냐 하고 반기를 든 거예요. 요게 귀신들린 자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은혜의 법칙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는게 바로 성령훼방 사건이에요.

그러니까 알매니안 주의는 성령훼방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인자를 거역하는건 사함을 받을 수 있다 그러죠? 그건 주님이 이사야서 53장의 예언대로 연약한 자로 감추어진 자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인간인 인자 예수를 못알아 보는건 괜찮아요. 어차피 감추어져 오셨거든요.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이 분이 바로 이렇게 연약하고 감추어진 모습으로 온 이분이 바로 메시야이며 이분의 십자가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바로 승리다라는걸 성령이 와서 가르쳐 주는 시대가 온다 말이에요. 은혜의 시대. 그때에도 '은혜가 무슨 말이냐?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착해져야지'라고 하는 자들은 성령을 못 받은 거기 때문에 성령모독(훼방)죄가 되는거고, 그들은 용서 못받는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은혜의 법칙 덮어줌의 법칙 이걸 정말 절절한 눈물과 함께 이해 못한 사람은 아직 성령받은 사람 아닙니다. 착한 마귀에요.

 

(고린전15,45) 45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살려주는 영이래요. 여기서 우리들은 살려주는이라는 단어를 주의 깊게 보셔야 돼요. 살려준다는 말은 인본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기분나쁜 말이에요. 우리가 길을 가고 있는데 누가 와서 내가 당신 살려줄까요? 그럼 뭐라 그러시겠어요. 나는 살아있는데? 무슨 소리 하는거냐? 니가 왜 날 살려줘? 이게 살아있다라고 착각하는 인간들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기분 나빠해요. 살려준다라는 말을...

그런데 성경은 주님을 가리켜 살려주는 영이라 그래요. 그 말은 성령이 아니면 절대 자력으로 살아날 자가 없다란 뜻이에요. 그래서 살려주는 영이에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는 내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귀신은 성령에 의해서만 쫓겨나갈 수 있다라는 거예요. 성령에 의해서만. 우리의 노력으로 절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성령에 의해서만 그리고 그 빈자리를 성령이 채워버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는 쫓겨나간 귀신이 일곱 귀신이 아니라 700귀신을 데리고 와도 못 들어오는 거예요. 성령이 그 안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귀신이 쫓겨나간 삶이라는건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된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러나 성령이 임한 자는 반드시 그렇게 완성이 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성도의 삶이 귀신이 나간 성도의 삶이 세상적 관점으로 볼 때 고달프다 주님은 그걸 하느님 나라가 임한 자의 삶이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거면 너희들의 삶에 이미 하느님 나라가 임했다라는 말이 그 말인 거예요. 하느님 나라와 사탄의 나라를 확 구별시켜 버리는 거예요. 존경받는 바리새인들의 삶이 사탄의 나라였다라고 확정지어 버리는 거예요. 거기에서. 그렇다면 메시야로 위장한 가짜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반기는 모습으로. 우리들은 마귀를 너무 좋아합니다. 마귀도 아이큐가 있지 머리에 뿔 달고 찾아올 거 같으세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 와요. 그리고 가장 존경받을 만한 모습으로 옵니다.

 

(고린후11,14-15) 14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15 그러니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한다 하여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실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흔히 있는 일이다라는 뜻이에요. 그거 뭐 큰일이다라고 생각해? 늘 있는 일이야. 야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니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오는데 사탄의 하수인들은 어떻겠느냐? 니들이 아주 존경할만한 모습으로 온다라는 뜻이에요. 흔히 있는 일이니까 당황하지 말어.

그러나 우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인간은 날 때부터 마귀의 종으로 오기 때문에 생래적으로요 마귀의 뜻을 좋아하게 되어 있어요. 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마귀를 우호적으로 접대하게 돼요. 그래서 번영의 신약이니 뭐니 하면서 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의 획득을 돕겠다라고 하는 오스틴 같은 사람들이 인기를 끄는 거예요. 광명한 천사니까... 그런데 더욱더 무서운건 마귀가 양의 탈을 쓰고도 온다는 거예요.

 

(마태7,15~17)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이런 구절을 읽을 때 참 조심하셔야 돼요. 잘 들어보세요. 이거 읽어 드리니까 또 속으로 '거봐 좋은 열매를 맺어야 좋은 나무지' 이러고 있죠? 또 속으로...

자 마귀가 순결하고 연약하고 착하고 여린 모습 양의 탈을 쓴 모습으로 와서 그러한 것들로도 인간의 만족과 영광을 챙기게 독려한단 뜻이에요. '양의 탈을 입고 와서 양처럼 살아 그게 정말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일이란다 양처럼 살아 그리고 나를 봐 양처럼 살고 있잖아'하고 온단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알곡과 가라지를 추수때까지 놔두라 그런 거예요. 너희들은 판별 못한다고 우리는 여전히 선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판단 못해요. 그래서 놔두라는 거예요. 추수는 내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착하고 순결하고 열심있는 종교행위를 내어 놓는 사람들도 그게 좋은 열매인거 같잖아요? 사람들도 하느님의 은혜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 아니면 지옥을 면치 못한다는 거예요. 그게 마태복음 7장의 '주님, 주님!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항변한 마귀의 자식들이죠.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들이 아무리 좋은 열매 비슷한 가짜열매를 내어 놓는다 할지라도 나는 안 속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게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뿐이다라는 어구속에 들어있는 진의(眞意)인 거예요. 니들이 지금 좋은 열매인 것처럼 남들은 세상이 다 속을 만큼 그렇게 열매들을 내어 놓고 있는데 니들이 원래 나쁜 나무인데 어떻게 좋은 열매가 맺겠니? 사람들은 다 속지만 나는 안속아.” 이 뜻이에요.

착한 일 많이 해라가 아니라 좋은 열매는 하느님이 맺는 거예요. 나무가 맺는다 그러잖아요. 요한복음에서. 니들이 맺는게 아니라 내가 맺을 건데 니들은 근사한 열매들을 갖고 와갖고 세상 사람들은 다 속이고 나에게 까지 갖고 왔구나. 그런데 니들이 원래 나쁜 나무인데 어떻게 좋은 열매가 맺니? 거짓말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완전히 꺼꾸로 읽고 있는거죠 성경을? 그래서 문맥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위에서도 똑같이 나무와 열매 이야기가 등장하는 거예요. '바리새인들아 이 나쁜 나무들아 제발 착한척좀 하지 말아라! 니들이 일곱 귀신 들린 자들인데 뭘 좋은 열매를 갖고 왔다고 자꾸 이렇게 내미는거야. 이 나쁜 나무들아' 어떠세요? 일관성이 있죠.

마귀의 나라는 절대 마귀나라 백성들의 열심에 의해 정복이 안된다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마귀의 세력이 서로 충돌하여 분열을 일으키겠느냐? 그 말씀을 그래서 하신 거예요. 니들은 여전히 귀신들려 있는 자인데 귀신들려 있는 자들이 거기에서 지금 빠져 나왔다고 하는데 니들의 행사 또한 귀신들린 자의 행사야. 그런데 어떻게 그게 분열이 되겠니? 그런 뜻이에요. 귀신은 성령에 의해서만 나간다 은혜에 의해서만 나간다라는 거예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와 십자가 은혜에 의해서 죄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구원의 이야기를 질병이 치유되는 사건으로 또 귀신이 나가는 것 등으로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신게 예수님의 표적이며 행적이였던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예수를 알아보는 자들은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나가,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는 사건을 보면 예수의 은혜 그 은혜에 의해 쫓겨간 죽음. 이걸 알아먹어야 되는데 하나도 못알아 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인간의 공로와 열심을 배제한 예수님의 그 은혜사역을 가리켜서 마귀의 행사라고 비난한 거예요. '니가 마귀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착한 성도들은 제가 이런 설명하면 저보고 마귀새끼라 그래요. 이단이라고’... '어쩌면 성경과 그렇게 똑같은지 몰라' 아주 무서워요. 성경을 잘 보면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표적을 이렇게 말씀하시는걸 볼 수 있어요.

 

(마르코16,17~18)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보세요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 그러죠. 이 이야기가 그 이야기에요. 예수믿는 사람들은 전부 귀신 쫓아낼 수 있다 이런말 아닙니다. 전부 뭐 뱀 집어도 상하지 않고 독을 먹어도 죽지 않고 이거 아니에요.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의해서 세상 권세잡은 자들의 종으로 있던 사람들이 귀신들려 있던 사람들이 하느님 아들의 나라로 옮겨오는 역사가 일어난단 뜻이에요. 우리의 복음 전함의 행위에 의해서 그게 귀신이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이상한 언어(새 방언)라는 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말을 가르키는게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늘의 비밀인 하느님의 말씀이 올바로 이해되어지고 내 입을 통하여 전달되어진다는 뜻이에요.

예수를 믿는 자들의 말씀 선포에 의해 뱀의 세력이 물러간단 뜻입니다. 귀신이 쫓겨나간다는 말과 똑같은 말인 거예요.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말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맹독이라 할지라도, 세상이 그 어떤 방법으로 공격해 온다 할지라도, 내 자식이 죽고 사업이 망하고 질병이 나에게 온다 할지라도 내 영원한 생명은 건드릴 수 없다!가 독을 마셔도 그를 해할 수 없다라는 뜻인 거예요.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된다라는 것도 역시 죽음의 대표적인 증상인 질병이 복음에 의해 정복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거예요. 병이 낫는단 뜻이 아니라, 死亡이 정복될 거라는 뜻이에요. 그까짓 병 안 나으면 어때요? 병이 낫는다고 신앙이 좋아져요? 천만의 말씀.

 

(사도행전10,38)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병을 마귀에게 눌린 상태라고 이야기한단 말입니다. 복음에 의해 마귀에게 눌린 이 상태가 해결된다가 병이 낫는다 뜻이란 말이에요. 그걸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기적으로 잠시 보여줬던 거예요. 초대교회 때에. 이제 성경이 완성됐는데 그게 왜 우리에게 필요해요? 믿음이 이제 직접 오는데. 절대 우리는 그런 눈에 보이는 가시적 현상에 의해서 흔들려 다니면 안 돼요. 그건 믿음 없는 자의 대표적인 표징이에요.

믿음이 없으니까 자꾸 보여달라 그러는거 아니에요?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데 자꾸 보여달라는 건 뭐예요? '나 믿음 없어요' 그리고 다니는 거예요. 믿음 없으니까 한번만 또 보여주세요. 보여줬어요 또 보여주세요. 잊어 버렸어요. 더 큰거 보여주세요. 그 전거로는 만족이 안돼요. 그래 점점 큰걸 봐야 돼요.

성경은 이 세상의 힘의 원리와 인본주의 속에서 벗어나서 십자가의 원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걸 구원이라고, 그걸 귀신이 나가는 것이라고 그래요.

절대 어줍지 않은 착한 일 몇개 해 놓고 혹은 남이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아내어서 자신의 만족이나 인기나 평판을 챙기는 그런게 아니란 말입니다. 오히려 더 낮아지고, 비워지고, 부인되어서 연한 순처럼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감추어지고 쇠하여 져서 하느님이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흥함을 증거하는 자로 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라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요나의 표적이 뭡니까? '너희의 열심과 노력과 상관없이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죽어서, 사흘 밤 낮을 스올에 갖혀 있어야만 너희의 죄가 너희를 누루고 있는 마귀가 물러날 수 있다. 그 방법 밖에 없다!‘가 요나의 표적이에요.

'너희들에게는 그 어떤 기적을 보여줘도 봐 지금 내가 귀신 쫓아냈는데 너희들 오해하고 나보고 바알제불이라고 그러잖아. 무슨 표적을 보여주니 거기다가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은 이제 하나밖에 없어.’ 뭐예요? 내가 죽는길 밖에 없어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죽어서 이 뱀같은 왠수들이 살아나는 그 기적보다 큰 기적이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그걸 안다는 사람들이 무슨 기적을 그렇게 보여달라 그러세요?

은이빨이 금이빨로 바뀌는게 뭐 그렇게 대단한 기적입니까? 금가루가 쏟아지는게 뭐 그렇게 대단히 신기해요. 그 새끼들이 마귀새끼들인 거예요. 성경이 여태까지 우리 배운게 그거잖아요.

그런데 성령집회가 왠 말입니까? 거기 가서 뭐 하겠다는 거예요? 도대체. 눈에 보이는거 몇개 또 보고 싶다는거 아닙니까? 이 믿음 없는 사람들인 거예요. 귀가 막혀 있으면서 듣는 척 하고 앉아 있는 거예요. 이렇게... 이시대는 지금 이렇게 타락해 있어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요.

 

요한복음 1장을 보면 그렇게 하느님의 성령을 받은 이들 그래서 마귀에게서 부터 해방된 이들을 하느님께로 난 자들이라 그러죠? 하늘의 사람들이란 뜻이에요. 하느님에 의해 태어난 하늘의 사람 하느님의 아들들 구약에서 하느님의 아들들 하늘의 존재들, 천사들 나오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지금 그러한 하늘의 존재들이 됐단 뜻인데 그러면 한번 보자구요.

하늘의 존재들이 천사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부동산 투기했다는 소리 들어 보셨어요? 그들은 우리를 수종들 그런 존재들이에요. 그런데도 그 하늘의 존재들이 이 땅에 천사들이 잠깐 내려와서 무슨 일을 행했는지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뭘 하다 갔나요? 하느님의 메신저로서만 살다 그냥 가는 거예요. 천사들이 자기의 인기 명예 이런 거 챙기기 위해 남을 경쟁자로 원수로 취급했던 적있습니까? 천사들이 자기 자식새끼 좋은대학 못들어갔다고 목매달아 죽는거 보셨어요? 그런데 왜 하느님께로서 난 하늘의 존재들이 왜 우리를 수종든다고 하는 그 천사들보다도 못하게 사냐구요.

그래서 성경이 반복하여 너희들은 땅의 것 보지 말고 위에 것을 찾으라 반복하여 외치는 거예요. 위에 것을 찾으라!

그렇게 하느님 나라의 존재들 하느님의 메신저로서만 존재하는 하느님의 백성들 그들의 삶을 천사들이 잠깐 보여줬기 때문에 그 천사들에게 날개가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거예요. 영이 날개가 어디 있어요? 꼭 그림 그려놓으면 그냥 날개를 이따만한 거 그려놔갖고 징그럽게. 닭털 같은거 덕지덕지 그려놓고 하느님의 메신저로서 그 뜻을 신속히 전달한단 뜻에서 상징적으로 날개라는 표현을 쓰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 삶을 살도록 되어 있단 말입니다. 지금.

그러면 그분이 이끄는대로 내 삶 속에서 하느님만 드러나면 돼요. 그게 메신저에요. 날개달린 천사. 그런데 전부 그 날개 말고 닭 날개 달고 막 날으려고 푸드덕 거리고 있으니까... 이게 날수가 없는 거예요.

 

(골로새3,1-3) 1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귀신의 세계에서 죽고 하느님의 아들의 나라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인 거예요. 성도의 삶은 오직 하느님의 은혜와 영광만을 드러내며 찬양하는 자기부인의 삶, 십자가의 삶 즉 하느님 증거 지향적 삶이에요. 자기 존재 지향적 삶 아니에요. 하느님 증거 지향적 삶. 그게 진짜 존재 지향적 삶이에요. 나머진 전부 소유 지향적 삶입니다. 여전히 나라는 우상을 삶의 중심에 올려놓고 선악구조에 의한 이러저러한 행위들 몇개 내어놓고 나는 성숙했내 나는 발전했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네 이 딴 소리들 좀 하지 마세요.

도낀 개낀 이에요. 빽도로 나갈 수 있어요 그러다가. 그게 일곱 귀신 들린 자들의 삶이에요. 뭐가 더 났습니까? 50100보지. 둘 다. 도망가는 놈은 마찬가지예요.

더 낮아지시고 더 내려가세요. 그리고 더 벗으십시오. 그리고 더 털리셔야 돼요. 바보가 되란 뜻입니다.

발달장애아나 정신 지체아들이 암걸렸단 소리 들어보셨어요? 나는 우리 의사님한테 정신 박약아 들이 암환자로 보고된게 한 건도 없다란 소리듣고 깜짝 놀랬어요. '아 그거구나 이 시대는 너무 똑똑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거구나' 너무 똑똑해서. 옛날에 우리동네에 연탄지게 나르는 친구 이름이 성수였거든요. 그때는 늘 조금 모자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연탄지게를 날랐어요. 그죠? 그런데 저는 걔가 한번도 찡그리는걸 못봤어요. 늘 웃으면서 뭘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다니는데 늘 행복해. 밥주면 먹고, 날러 그러면 날러. 자 그러면 자 세상은 그를 바보라고 하지만...

하느님은 바로 그러한 바보들을 원하시는 거예요. '내 말만 들어! 그러면 행복할거야!' 그 자리로 내려가는 거예요. 우리 모두 바보가 됍시다. 갑자기 바보 김수환 추기경님이 생각나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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