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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이여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10-14 조회수2,815 추천수32 반대(0) 신고

10월 15일 화요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축일

 

 

<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이여>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걸어갔던 영적 여행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던지 십자가의 성 요한이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까지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녀가 도달한 높은 경지를 한목소리로 칭송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데레사의 삶을 묵상하면서 저는 한가지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데레사 역시 우리처럼 무수한 좌절과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데레사 역시 우리처럼 수없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스무 살도 안된 데레사가 도망치듯 가족을 떠나 처음 가르멜 수녀원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무엇이든 다 잘 될 것 같았습니다. 풍성하게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에 데레사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데레사 역시 일상의 작은 의무들에 충실했었고 점차 영적생활에 맛을 들여갔습니다.

 

그러나 데레사는 입회하자마다 즉시 예수님의 일생만을 관상하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에는 너무도 활동적인 기질의 소유자였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데레사의 영적 생활은 지지부진하기만 했습니다.

 

당시 데레사가 얼마나 답답했었던가는 이런 고백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잡담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한 종류의 여흥에서 다른 종류의 여흥으로, 한 가지 허영에서 다른 허영으로, 이 기회에서 저 기회로 정신 없이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데레사는 영적 생활의 풍요로움과 하느님 사랑이 얼마나 감미로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감각적인 기쁨, 향락, 오락에서 완전히 돌아설 수 없었던 데레사였습니다. 그런 모순 투성이의 생활, 방황의 생활이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지속된 것이 아니라 20년 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데레사가 거의 마흔이 다 되었지만 그 때 당시까지도 그녀의 영적생활은 갈등과 방황의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데레사처럼 영적 성장을 위해 열심히 투쟁한 성인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영적 상승을 위한 데레사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데레사는 수십 년의 세월을 "수직상승"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지만 그때마다 깊은 절벽 아래로의 추락을 거듭했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지 데레사는 이런 절규까지 하였습니다. "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삶이여! 산다고 할 수가 없고 아주 버림받아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삶이여! 언제까지 오리까? 주님! 아직 얼마나 더 계속하시렵니까?"

 

그토록 고통스런 갈등 때문에 데레사는 중병에 걸립니다. 피를 토하고, 심장과 위의 통증을 수반하는 신경장해 중세로 고생합니다. 왕진 나온 의사는 수수께끼 같은 고통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때 나흘동안이나 심각한 마비증세를 보였기에 사람들은 데레사의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수녀원 마당에 그녀를 묻을 자리를 파기 시작했으며 그녀의 병상에는 촛불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만나기도 하면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던 데레사에게 마침내 하느님 자비의 손길이 시작됩니다. 아주 작은 개인 기도실에 들어선 데레사는 "기둥에 묶인 예수님의 성화"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 순간 구세주 하느님께서 자신 때문에 저 꼴을 당한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림 앞에 엎드린 데레사는 다시는 구세주 하느님을 욕되게 하지 않겠노라고 눈물로 맹세합니다. 결국 기둥에 묶인 예수님 앞에서 데레사의 고통스러웠던 여정은 감사와 은총의 여정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숱한 실패와 갖은 역경을 잘 극복한 데레사의 영적 여행의 끝은 참으로 축복된 것이었습니다. 데레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겸손했습니다.

 

안토니오 신부가 마지막 성체를 영해주기 위해 데레사의 병실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녀의 기쁨으로 가득한 영혼에서는 무척 힘겨웠지만 진정한 이런 찬미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오, 나의 주님! 나의 정배시여. 그렇게 바라던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만날 시간입니다. 자, 갑시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제 귀양살이를 떠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나의 영혼은 그토록 갈망해왔던 소원인 당신과 함께 하게 됨으로써 기쁨에 넘쳐흐릅니다."

 

오늘 데레사의 지루하고도 험난했던 영적 여행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새출발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그 길이 어두운 밤길, 고통스런 가시밭길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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