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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 (2사무 24,2.9-1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5 조회수1,005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 (2사무 24,2.9-17)

 

 흑사병

 

다윗은 주님께서 내리시려는 재앙에 괴로워하면서도 주님의 자비를 믿으며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2사무 24,2.9-17)

다윗 임금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군대의 장수 요압에게 말하였다. “단에서 브에르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시오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 하오.”

요압이 조사한 백성의 수를 임금에게 보고하였는데이스라엘에서 칼을 다룰 수 있는 장정이 팔십만 명유다에서 오십만 명이었다.

10 다윗은 이렇게 인구 조사를 한 다음양심에 가책을 느껴 주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그러나 주님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11 이튿날 아침 다윗이 일어났을 때주님의 말씀이 다윗의 환시가인 가드 예언자에게 내렸다.

12 “다윗에게 가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면서 일러라. ‘내가 너에게 세 가지를 내놓을 터이니그 가운데에서 하나를 골라라그러면 내가 너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13 가드가 다윗에게 가서 이렇게 알렸다. “임금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기근이 드는 것이 좋습니까아니면임금님을 뒤쫓는 적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 다니시는 것이 좋습니까아니면임금님 나라에 사흘 동안 흑사병이 퍼지는 것이 좋습니까저를 보내신 분께 무엇이라고 회답해야 할지 지금 잘 생각하여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14 그러자 다윗이 가드에게 말하였다. “괴롭기 그지없구려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15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날 아침부터 정해진 날까지 이스라엘에 흑사병을 내리시니단에서 브에르세바까지 백성 가운데에서 칠만 명이 죽었다.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

17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다윗이 주님께 아뢰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제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조사하시오.  내가 백성의 수를 알고자 하오." (2)

 

다윗이 자신이 데리고 있는 장수 요압에게 한 명령이다. 그런데 이 명령은 1절에 보면,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부추기시며 내리신 명령이다.

한편 3절에는 요압이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말리는 내용이 나온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려 하십니까?"


그리고 10절에는 다윗이 주님의 명령대로 인구 조사를 한 다음,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내용이 나온다.

"제가 이런 것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악을 없애 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인구조사가 1절에서는 주님의 명령으로 나오고, 3절과 10절에서는 다윗의 범죄행위로 나오니까 헷갈린다.

더군다가 역대기 상권 21절 1절 이하에 <인구조사와 흑사병>에 관한 유사한 기사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사탄이 이스라엘을 거슬러 일어나,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려고 다윗을 부추겼다" 고 나온다.

 

인구조사를 다윗에게 부추긴 주체가 사무엘 하권 24장 6절에는 주님, 역대기 상권 21장 1절에는 사탄으로 나온다. 문장의 주어가 서로 다르다.

그렇다면 과연 하느님께서 하신 것인가?  아니면 사탄이 행한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사탄이 같이 행한 것인가?

 

'A는 B이다' 와 'A는 B가 아니다' 와의 두 판단 사이에 중간의 것은 없다는 사유 법칙 중의 하나가 서양 철학의 형식 논리학에서 문제로서 제기된다. 그런데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되는 고대 그리스 사고와는 현격히 다른 히브리적 사고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은 곧 하느님이 그것을 행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신(神)중심적인 사고에서 근거한 것으로, 하느님의 섭리 아래에서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분의 영역으로 돌려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히브리인들의 사고는, 자칫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악을 조장하시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단정적으로 말해,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사람을 죄로 유혹하지 않으신다.(야고1,13-15)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은 시험하시지 죄로 유혹하지 않으신다. 죄로 유인하고 유혹하여 인간을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이간질하는 자는 사탄이다.

따라서 본문의 이러한 표현은, 하느님께서 사탄과 같이 인간을 죄짓도록 유혹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모든 사건의 주재자가 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강조한 히브리적 표현 뿐이며, 하느님의 죄에 대한 허락 설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실제로는, 역대기 상권 21장 1절처럼 사탄이 다윗을 부추겼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기 저자가 이렇게 표현한 것은, 다윗 개인의 범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스라엘 전체 회중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와 다윗의 범죄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그러한 의도보다는, 범죄의 일차 조장자가 사탄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탄을 문장 주어로 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탄은 마치 천사처럼 하느님의 도구로 쓰인 것인가?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끔 하신 하느님의 목적은, 나라가 부강해짐에 따라 점점 교만해져서, 당신 보다는 강대한 군사력 자체를 의지하고, 그 세력을 뽐내려 한 다윗에게 큰 시련을 주심으로써, 다시 주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게끔 부추긴 사탄의 목적 달랐다. 그는 동일한 그 일을 통해 오히려 다윗에게 크나큰 타격을 주고, 그 가운데서 절망하게 하여, 주님을 떠나게 하려는 것 목적이었다.

 

즉, 하느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자비로운 동기에서, 다윗과 그의 백성이 배워야 할 교훈을 그들에게 가르쳐주며, 또한 그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들기 위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도록 부추기신 반면에, 사탄은 근본적으로 악의에 찬 동기에서 이스라엘에 혹독한 타격을 가하며, 다윗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기 위하여 다윗을 부추겼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과 사탄이 동시에 다윗의 범죄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나, 이 일을 통해 성취하고자 한 목적이 서로 달랐으므로, 결단코 사탄을 하느님의 도구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란  표현은, 이스라엘 전역을 일컫는 관용구이다.(2사무 17,11 : 1사무3,20)

 

"백성의 수" 에서 "백성" 에 해당하는 단어, '하암' (haam)은 여성과 노인, 어린이를 제외한 성인 남자들만을 지칭한다. 모세 당시 인구조사는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를 대상으로 행해졌으며(민수1,3),  다윗 역시 동일한 형태의 인구조사를 하였다. (9)

그래서 여러 번역본을 보면, '백성'을 '전사들' 또는 '민병대'로 번역했다.

 

다윗은 자신이 명령하여 시행한 이러한 인구조사에 대해, 자신의 입으로 범죄라고 자백했고(10절), 하느님께서는 이 일로 인하여, 칠만 명을 흑사병으로 죽이시는 엄청난 징계를 내리셨다. (15절)

따라서 도대체 인구조사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커다란 하느님의 징계를 가져온 심각한 범죄가 되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로, 이 인구조사가 또 다른 군사적 정벌을 위한 준비였다고 보는 것이다. 사무엘 하권 24장 5-7절의 요압의 인구조사 경로에서 나타나듯이, 이스라엘은 이미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영토를 점유하고 있었다. (민수34,1-15)

그런데도, 정복 전쟁을 위한 모병의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시행한 것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영토를 넘어서, 더 넓은 영토를 가지려는 교만한 마음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다.

 

다윗은 군사를 총괄하는 군대 장수 요압을 통하여 인구 조사를 함으로써 하느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군사력을 더 의지했고, 더 나아가서 군사적 행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명하시지도 않은 정복 전쟁을 수행할 목적을 지녔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런 일련의 동기와 의도는 분명 정죄받아 마땅한 것이다.

 

두번째로, 다윗의 인구조사가 하느님의 통치를 부정하는 행위 보는 것이다. "내가 알고자 하오" 에 해당하는 '웨야다으티' (jejadathi)란 표현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견해다.

고대의 모든 셈족들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어떤 사람 혹은 대상에 대해 힘 혹은 지배권을 행사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으며, '수효를 알기 위해' 가축이나 사람들의 수를 세는 것은 절대적이고 무제한적인 지배를 선언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지배는 오직 만유의 주재자이신 하느님께만 정당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에 대한 인구조사는 하느님의 통치권에 대한 월권 행위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같은 교만은 마땅히 정죄되어야 한다.

 

세번째는, 다윗의 인간적 자랑과 과시 욕구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견해이다. 다윗은 이 일을 통해 자신의 군사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것은 명백하게 자신의 나라의 부강함과 그것을 다스리는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고자 하는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또한 신앙적인 차원에서 이것을 보게되면, 하느님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더 의지하였다는 불신앙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역대기 상권 21장 3절에 기록된 대로, 요압이 이 행위를 가리켜 하느님을 반역하는 것이라고 간언하며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단호하게 이를 묵살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실상 한 나라의 통치자가 세금의 징수, 또는 국방력을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그 행위가 하느님 앞에 죄악된 것임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 이라고 10절에 고백한다.


다윗은 자신이 굳이 인구조사를 통해 군대의 수효를 확인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언약대로(7,6-17) 자신과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주실 것인데, 그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자신이 인구조사를 청했다는 의미에서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눈에 아무리 지혜로워 보여도,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는 이상 그 행동은 미련한 것일 수 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1코린1,25)


"이튿날 아침 다윗이 일어났을 때, 주님의 말씀이  다윗의 환시가인 가드 예언자에게 내렸다." (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났다'는 표현은 역대기 상권 21장 9절에는 나타나지 않는 표현이다. 이것은 다윗이 지난 밤을 깊은 회개로 지새운 후, 아침을 맞았다는 의미이며, 이 아침에 선견자 가드가 다윗을 찾아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것은 간밤의 다윗의 깊은 회개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일어났다' 는 표현은 단순히 '잠에서 깼다' 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다윗이 왕으로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 앞에서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12,20)

 

이제 선견자 가드를 통해  세 가지 형벌 제시된다.(13) "내가 너에게 세 가지를 내놓을 터이니,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12) 이것은 하느님께서 제안하는 세 가지 형벌이 모두 다윗 한사람에게 주어지는 직접적 형벌임을 암시한다.

 

그런데 세 가지 중, 다윗에 대한 직접적 징계는 '다윗이 대적에게 쫓겨 석달을 도망다니는 것' 하나 뿐이고, 나머지 둘은 모두 다윗 당사자에게 주어지는 형벌이 아닌 이스라엘 전체에 임하는 형벌이다. 이것은 다윗과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 전역에 칠년 기근이 드는 것, 다윗이 대적에게 쫓겨 석달을 도망 다니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 전역에 삼일동안 흑사병이 퍼지는 것이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제시하신 세 가지 형벌이다. 선택 사항으로 제시된 이 세가지 재앙은 모두 다 심각한 것으로,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다윗은 13절에 "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 하면서, 삼일 동안의 흑사병을 택한다.

 

'괴롭기 그지없구려' 에 해당하는 '차르'(char : 곤경)는 본래 몸을 운신하기 힘든 좁은 장소나 그 장소 안에 갇혀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인데(민수22,26), 본문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정도의 심한 스트레스를 나타낸다.

이 세가지를 어느 하나도 다윗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주님 손에 당하는 흑사병을 택한다.

 

<사람 손과 주님 손>을 여기서 좀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 손에 당하는 것은 사람의 도움을 통해 그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리키며,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은 주님의 도우심으로만 그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사실 기근은 사람이 아닌 자연을 주관하시는 주님에 의해서만 주어질 수 있는 재앙이기는 하지만, 그 기근의 때에 주변 나라들의 원조를 청하여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어느 정도 구제할 수 있으며, 대적에게 쫓기는 상황은 그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화친 조약을 맺은 나라의 도움을 청하여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가 '흑사병'을 '주님의 칼'로  묘사한 것에도 알 수 있듯이(1역대21,12), 주님께서 내리신 흑사병은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치료할 수 없으므로, 다윗이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전무하며, 오직 주님의 도움으로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다윗은 결국 형벌로서 '흑사병'을 선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인해 발생할 이번 재앙과 그것의 해결 역시 오로지 주 하느님께 전적으로 맡기고자 했던 것이다.


흑사병은 선(線) 페스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대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전염병 중의 하나로 쥐벼룩(puler cheepis)에 의해 옮겨지는 것이다. 잠복 기간이 거의 없이 즉시 발병하여 오한, 출혈, 폐렴을 수반하고, 감염된 환자가 죽는 데까지 24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이 질병은 발병 경로와 치유책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던 고대인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로 여겨졌다. 흑사병은 과거에도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징계에 하나로 주어졌다. (레위26,25 : 민수14,12)

 

끝으로, 역대기 상권 21장에는 '칠년 기근'이 아닌 '삼년 기근'으로 나오는 불일치에 대해 한 마디 한다. 하느님의 징계인 칠년 기근 중에 이미 4년의 기근을 받았다고 추측하고, 이것과 관련해서 나머지 잔여 기간으로 3년을 말했을 수도 있다는 견해가 지지를 받고 있다.

역대기에는, 선견자 가드가 다윗에게 이르러 징계의 선택에 대해 말하기에(1역대21,9) 앞서, '이 일이 하느님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치셨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1역대21,7), 이것을 이미 진행된 4년의 기근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윗의 긍정적 이미지를 보다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즉 어떠한 징계가 주어지기 이전에, 다윗이 먼저 하느님 대전에 회개하였음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이미 4년의 기근이 경과된 것을 생략하고, 칠년 기근을 삼년 기근으로 역대기에서 기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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