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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성남 신부님 / 제22회 대인관계 방해 세 가지 요소 3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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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5 조회수322 추천수2 반대(0) 신고

홍성남 신부의 행복한 신앙


 


제22회  대인관계 방해 세 가지 요소 3 <기대>


안녕하십니까? 제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강의를 세 번째 마쳤고요. 함께 사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 세 가지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뭐라고 그랬죠? 짜증, 잔소리, 기대. 짜증과 잔소리는 앞선 강의에서 해 드렸고, 오늘은 대에 대해서 강의를 해 드릴까 합니다.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짜증과 잔소리는 기대에서 나옵니다. 인생을 살면서 기대를 안 갖고 사는 사람들은 없죠. 다 삶에 대한 기대,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사람에게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하죠. 그래서 오늘은 기대에 대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어느 날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모아 놓고 세상에 내려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오라고 그러셨대요. 천사들이 세상 구경을 하고 난 다음에 보고를 했답니다. 한 천사가 와서 기하기를 아,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신부들 같다고 그랬대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서 사는 게 참 애처롭기 그지없더라. 그래서 하느님이 그러셨대요. 그놈들은 바가지 긁는 마누라도 고 속 썩이는 자식새끼도 없이 사니까 상팔자다. 잘못 봤다. 그러시더래요.

 

그래 다른 천사가 나서 가지고 제가 보기에는 산속에 있는 중들이 가장 힘들게 사는 거 같습니다. 그랬대요. 산속에서 찾아오는 사람 없이 매일 풀만 먹고사는 거 보니까 불쌍하다. 그랬답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그러셨대요. 산중의 전원주택에서 다이어트 식품만 먹고 웰빙 라이프를 즐기는데 뭐가 불쌍하냐? 그놈들도 아니라고 그러셨대요.^^*~~ 

 

그래 마지막 천사가 나와 가지고 제가 보기에는 애 키우고 사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보입니다. 그랬더니 하느님께서 빙고! 그러셨대요. ^^* 맞다. 애 키우는 게 쉽지 않죠. 왜 어렵죠? 내 맘대로 안 되거든요. 꽃하고, 개 하고, 애 하고 어느 게 가장 신경 쓰이죠? 이렇게 비교를 하면 좀 그런데. 식물하고, 동물하고 애는 사람일까요? 동물일까요? 사람이겠죠?^^*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말 안 들을 때는 개 패듯이 패는데 ^^*

 

그런데 왜 애가 힘드냐 하면 꽃이나 개는 자기들 주도권이 없어요. 처음에도 얘기를 했죠. 애들은 자기 주도권을 주장합니다. 나도 사람이라고 빽빽빽 울어대고, 아~ 심통을 부리고, 떼거지를 씁니다. 그래서 키우기가 어렵다고 얘기를 하죠. 또 어느 게 가장 많이 신경 쓰입니까? 예를 들면 내가 어디를 나가려고 해요. 꽃 때문에 외출 못하는 분 계세요? 개 때문에 여행 못 가시는 분? 애 때문에 못 나가는 분은 많아요.

 

꽃이 죽으면 좀 울어요. 그리고 새 꽃 사다 놔요. 개가 죽으면 일주일 정도 울고 새끼를 사 와요. 애가 죽으면 이거는 평생 가슴에 ... 그러니까 애 키우는 게 그만큼 힘들다 하는 거죠. 우리는 아이들에 대해서 기대 같은 걸 가지고 있어요. 개나 꽃한테 기대를 갖고 사는 분은 없단 말이죠. 그냥 키우지. 그런데 애들한테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애들이 태어나 100일째 되는 날 해 주는 잔치는 백일잔치라고 그러죠. 1년에 해 주면 돌잔치라고 하고. 왜 그런 잔치를 해 줄까요? 옛날에는 의료시설이 별로 안 좋아서 애들이 태어나자마자 죽는 애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100일만 살아도 기특하다고 잔치해 주고, 1년 살면 아, 정말 대단하다고 해서 잔치를 해 줬는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잔치할 때 보면 애들 앉혀 놓고 앞에다 상을 차려주죠. 어떤 물건을 놓습니까? 돈, 실, 연필, 마이크, 청진기, 마우스, 야구공, 화투^^  마우스를 잡으면 아, 얘가 인터넷 계의 뭐가 되겠다. 청진기를 잡으면 의사, 마이크 잡으면 연예인, 돈을 잡으면 사업가, 실은 장수하겠다. 연필은 학자, 쌀은 굶어 죽지는 않겠다.

 

이런 모든 것들이 그 뒤에 있는 게 뭐냐 하면 기대입니다. 아, 얘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 심리가 뒤에 깔려 있는 거죠.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대해서 얼마나 많은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느냐에 달렸대요. 만약에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아, 우리 애가 머리도 좋고 괜찮다는 기대를 가지면 그 애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답니다. 그런데 야, 우리 집안은 오빠만 잘 되면 돼. 야, 딸들은 그냥 대충대충 살아. 그러면 아무리 머리 좋은 딸들도 크지는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가지고, 기대를 걸고 그래야 클 수가 있다고 그래요.

 

프로이트라는 심리학자가 그거에 대해서 아주 굉장히 강조를 한 사람인데, 지금 프로이트는 심리학의 원조라고 불려지는 사람이죠. 심리학이 그리스 철학자들부터 이어져 내려오는데 체계를 잡은 것은 프로이트로부터 체계를 잡아왔죠. 이 프로이트가 원래 머리가 좋은 데다가 이 사람이 학자로서 면모를 갖게 된 데는 자기 어머니의 기대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수록을 했어요. 프로이트의 어머니가 아말리아라는 분이었다고 그래요. 그런데 21살에 시집을 와 가지고 그것도 전처의 자식이 있는 집에 시집가서 낳은 게 프로이트랍니다.

 

그런데 프로이트를 낳았는데 동네의 어떤 노파가 아기 프로이트를 보니 나중에 큰 사람이 되겠다고 얘기를 했대요. 그런데 그 엄마가 그 얘기를 귀담아들었대요. 자기 아들을 정말 애지중지 키운 거예요. 그래 프로이트가 나중에 내가 이렇게 된 건 우리 엄마 덕분이라고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엄마들이 가지고 있는 치맛바람이라는 거는 이해를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이 애들에 대해서 왜 속상해하는가? 기대하는 거하고 아이들이 보여주는 게 기대에 못 미쳤을 때 그렇다는 거죠. 그런데 그거는 부모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 관계에서도 똑같죠. 그러나 상대방에 대해서 기대를 갖고 있는 게 수준 이하면 실망하고 기대 이상이면 만족한단 말이죠.

 

여기는 자매님들 많으시니까 자매님들이 한 분이 한 가지씩만 남편에게 거는 기대 얘기해 보세요. 나한테, 잘해라. 젊게 살았으면 좋겠다. 술 좀 적게 먹어라. 그다음 분은 애한테 바라는 거에 대해서 얘기해 보세요. 공부 잘하는 거,  짜증 덜 내기, 살 좀 쪘으면 좋겠다.

 

기대와 속상함은 묘한 관계예요. 아주 묘한 관계. 내가 기대가 많으면 속상함도 많아져요. 기대가 적으면 속상함도 적어져요. 이게 법칙입니다. 아주 간단한 법칙인데 문제는 내가 계속해서 속상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계속해서 내가 기대를 걸고 있다는 거예요. 기대를 낮추지 못하면 계속 속상할 수밖에 없는데도 낮추지는 못하고 있다는 거죠. 그거를 이제 기대 콤플렉스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럼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기대 목록을 만드셔야 돼요. 방금 제가 써 드린 거 같은 거 있죠. 예를 들어서 내가 만약에 남편 때문에 속상하다 그러면 아까는 제가 하나씩만 물어봤는데 집에 가서 이거는 한 번 실습을 해 보세요. 나를 속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걸 써 보세요. 예를 들면 본당 신부가 원하는 신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여러분들 생각에. 헌금, 교무금 많이 내고, 기도 많이 하고, 본당 신부 말 잘 듣고, 봉사활동 많이 하고, 늘 성당에 살고.^^*

 

이런 기대 목록을 갖다 내가 가졌습니다. 제가 만약 강론 시간에 이거를 얘기를 했어요. 여러분들 헌금, 교무금 내십시오. 기도 하루 종일 하세요. 제 말 잘 들으세요. 봉사 많이 하세요. 집안일 다 포기하고 성당에 사세요. 그러면 저한테 뭐라고 그러시겠어요? "혼자 살더니 가는구나. 가!" ^^*

 

이 중에서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헌금, 교무금 그러면 약하고, 십일조를 내라고 그러면 낼 수 있겠어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여간 힘들단 말이죠. 애들 학비도 들어가고, 생활비 들어가고 그러면 그냥 더 내라는 얘기만 들어도, 연말이 되면 신자분들이 스트레스 받는 게, 연말에 교무금 정산하자고 그러고, 건축기금 내라고 그러면 막 스트레스 받고 그러죠.

 

하루 종일 기도하라고 그러면, 생리적으로 안 돼요. 드라마는 세 시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기도는 세 시간 절대로 못합니다. 기도는 5분 하면 많이 하고 10분 이상 들어가면 그때부터 몸부림쳐요. 본당 신부님 말 잘 듣는 거, 이것도 쉽지 않죠. 봉사활동 많이 해라, 이것도 어려워요. 하루 종일 성당에 지키고 있어라, 이것도 쉽지 않은 거예요. 이렇게 다 쉽지 않은 거를 갖다가 제가 만약에 얘기를 했는데 여러분들이 "아, 못하겠다." 그러면 누가 속상할까요? 제가 속상한 거예요.

 

반대로 신자분들이 신부들한테 거는 기대가 있어요. 뭐가 있을까요? 늘 기도하고, 사제관을 지키고, 늘 내가 갈 때마다 나를 반겨주고, 늘 나랑만 놀아주고 ^^*  다른 자매들은 쳐다보지 말고 나만 봐 주고, 내가 전화 걸면 늘 받아주고, 내가 방문하면 늘 반겨주고. 만약에 그런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그러면 본당 신부가 힘든 게 아니라 기대 걸었던 사람이 힘든 거란 말이죠.

 

이런 기대를 내가 저 사람 때문에 힘들어 그럴 때는 내 마음 안에 그런 기대 목록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기대 목록 중에서 이거는 안 되는 거구나 하는 것을 줄여 가면 돼요. 이거를 포기라고 하는 겁니다. 집착을 끊는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거는 아, 진짜 어려운 표현이고, 안 되는 거에서 손을 놓는 거를 포기라고 얘기를 해요. 내려놓으면 내가 편해지니까.

 

제가 본당 사목을 하면서 심리치료를 공부하기 전에는 신자분들한테 짜증을 냈어요. 그런데 짜증을 내면서 짜증을 낸 이유를 찾다가 나중에 분석을 했는데, 보니까 제가 신자분들을 신자로 안 보고 수도자로 본 거예요. 왜 당신들 수도자로 안 살아. 왜 기도 안 해. 왜 하느님께 봉헌 안 해. 그 얘기는 왜 수도자같이 안 살아. 당신들 하느님 믿으러 온 사람들 아니야? 이런 수도자여야만 되라는 당연히 .. 해야 해.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거예요. Should라고 하는데 일종의 Should강박이라고 합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되라는 생각을 갖고 순간에 짜증이 나는 거예요. 왜 여름철에 옷을 푹 파진 것을 입고 오는 거야? 다 이렇게 수도복같이 입고 오지. 그런 짜증을 내는 신부들은 신자에 대해서 이런 기대(수도자 같이)를 갖고 있는 거예요. 저도 제가 신자분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에 대해서 분석을 하다가 이걸(수도자 이) 본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에 안 게 뭐냐 하면 성당에 나오는 분들은 수도자가 아니에요. 수도자가 아니고 정확하게 말하면 환자예요. ^^* 마음의 병을 가졌으니까 고치려고 나왔으니까 환자거든요. 예수님도 그랬잖아요. 나는 의인을 위해서 오지 않고 죄인을 위해서 왔다. 죄인이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고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다는 겁니다. 죄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 내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다고 얘기하신 거예요.

 

그렇다면 당연히 신자들은 환자인 거죠. 그러면 그걸 아는 순간에 성당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사목에 대한 개념이 바뀌더라고요. 그전에는 성당이 수도원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오면 무조건 침묵을 지키고, 무조건 조용히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떠드는 신자들 보면 화가 나고, 애들이 미사 중에 떠들면 그냥 군기 잡고 그랬는데, 성당이 수도원이 아니더라고요. 보니까 심리치료 센터예요. 그러니까 6일 동안 바깥에서 시달리다가 하루 치료받으러 오신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One day care 해 주는 날이 주일 날이더라고요. 그래 성당의 모든 시스템이 사실 심리치료용으로 돼 있다는 거를 나중에 알았어요. 그리되면 강론은 이거는 인지치료예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건강하지 못한 신념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게 사람 인생을 많이 병들게 하는데 강론을 통해 그 생각을 교정해 줘야 돼요. 미사는 뭡니까? 외로움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한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공동체 치료예요.

 

성가, 성화 이거는 예술 치료예요. 또 고해성사가 있어요. 고해성사는 내가 꼭 죄를 고백하는 자리가 아니고, 고해성사는 나중에 따로 한 시간 정도 얘기를 해야 되는데 사람 마음 안에는 자기가 이렇게 누구한테도 말 못 한 뭔가를 갖고 있으면 그게 병이 됩니다. 반드시 밖에 털어놔야 돼요. 그런데 그걸 누구한테 얘기를 해요. 고해소 안에 있는 익명의 신부한테 털어놓고 자기 마음 안의 짐을 더는 것이 고해성사입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는 정신치료 작업이란 말이죠.

 

미사 시간에 영성체하잖아요. 성체는 어떻습니까? 환자는 병원 가면 타는 게 뭐죠? 약이에요. 성체는 약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거룩한 성체 그래가지고 죄를 지으면 가까이 안 갈려고 그러는데, 만약에 환자가 병원에 가서 의사가 약을 주는데 "나는 약 받을 자격이 없는 자"라고 그러면 그 의사가 뭐라고 그러겠어요? ^^* 성체는 우리의 마음과 몸의 병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주님이 우리한테 주신 당신의 몸이고, 당신 몸이 우리한테는 약이에요.

 

우리나라 옛날 영화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부모님이 아파 계시는데 꿈이 신령이 나타나 "네 부모님 병이 나으려면 산에 가면 묘지가 하나 있는데 그 묘지를 파라. 거기 사람의 시신이 있는데 그 시신을 갖다가 탕을 끓여 가지고 먹이면 된다." 그래 가지고 이 사람이 꿈을 깬 다음에 그 산을 찾아갔대요. 찾아가 정말 귀신이 드글 거리는 데서 무덤을 파 가지고 시신을 꺼내다가 탕을 끓여 가지고 부모님을 드렸더니 낫대요. 그런데 낫고 난 다음에 자기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자결을 하려고 그랬는데 신령님이 나타나서 그랬다고 그래요. "내가 너를 테스트 했다. 그게 아니고 산삼이었다."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한테는 산삼인 거예요. 우리는 일주일마다 한 번씩 보약을 먹는 그게 성체성사거든요. 그런데 이거는 어느 때부터인가 성체를 영하려면 자격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자격 조건을 너무 강화시켜 놓으니까 그냥 미사 때 헌금 다 내놓고도 먹지 못하고 이렇게 가만히 ^^* 그러다 보면 이제 마음이 멀어지고, 멀어지면 성당에서 진짜 멀어지고 냉담을 하게 된다는 거죠.

 

저도 그래요. 본당에서 영성체 너무 못하는 분들한테는 그냥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밥이다. 그리스도의 약이다. 내가 나한테 필요해서 영하는 것이지, 이거는 내가 모시고 있는 게 아니다. 영하시라고 이렇게 얘기를 해 드립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통해 가지고 사람이 치유가 될 수 있는 것이 성당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다음부터는 신자분들한테 짜증 낼 일이 없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파서 온 분들이니까, 아파서 오신 분들한테 짜증을 내면 짜증 내는 사람이 미친놈이 되는 거죠. 아파서 온 환자들한테 무슨 기대를 걸겠어요. 아파서 온 환자들한테 무슨 기대를 걸겠어요. 그러니까 기대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성당일 때문에 화가 날 때 제 자신을 들여다보면 또 기대를 걸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편안한 관계를 갖고 내 생활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기대 수준을 낮추는 게 좋다.

 

* 타인과 편안한 관계를 맺고 내 생활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타인에 대해 기대 수준을 낮추어야 한다

 

아예 기대를 안 갖게 되면 허망하고 기대는 가지되 상대방도 감당할 수 있고, 나도 현실적인 그런 기대를 갖고 사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거는 신부와 신자들과의 관계뿐만이 아니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그렇고 더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나, 자기 기대, 이건 진짜 중요한 개념인데 내가 나한테 거는 기대가 있어요. 이게 너무 높으면 안 돼요. 너무 낮아도 안 되고. 첫 시간에 얘기했었죠. 이상적 자기, 현실적 자기.

 

현실적 자기에 너무 만족하면 게을러져요. 안주하고. 그런데 너무 높은 자기 자신에 집착을 하게 되면 정신병에 걸릴 수가 있어요. 내가 나한테 적당한 기대를 걸어줘야 돼요. 현실적 자기다는 조금 더 변화하자. 조금 더 나아야 되지 않겠니? 그런 기대감을 가졌을 때에 가장 건강할 수 있고, 그런 자기 기대감이 건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한테도 큰 기대를 안 걸고 상대방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요구하고 기대를 건다는 거죠. 그게 건강한 신앙생활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려드립니다.

 

오늘까지 설명드린 것이 함께 살기 중에서 짜증과 잔소리와 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집에 가시거든 기대 목록을 한 번 만들어 보시고, 목록 중에서 비현실적인 거 그런 거 다 줄여보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홍성남 신부님, 행복한 신앙,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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