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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렇게 살 바에야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2-11-17 조회수2,787 추천수32 반대(0) 신고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루가 18장 35-43절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 바에야>

 

예수님 시대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도 엄청난 십자가였습니다. 당시 장애인들은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팍팍하고 괴로운 삶을 살아갔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다 사회 안에는 요즘 우리 눈으로 볼 때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사고방식이 하나 있었는데, 신체장애를 일종의 벌로 여기는 경향이었습니다.

 

당시 장애인들이나 장애인들 가족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갔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장애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위로해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죄인 취급하면서 멀리하고 무시했습니다. 장애인들은 한마디로 당시 사회에서 왕따 중의 왕따로 극도의 고통스런 삶을 살아갔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리고의 소경이 받았던 소외나 따돌림 역시 정말 참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사회로부터, 이웃들로부터, 그리고 가족들로부터 차례차례 버림받은 그 소경은 마침내 길거리로 나앉게 됩니다. 그리고 최후의 생계 수단으로 구걸행각을 시작합니다.

 

구걸도 엄연한 직업인데, 아무나 하나요. 거지 사회에서도 위계질서가 있지요. 수입이 짭짤한 목 좋은 자리는 이미 다른 거지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숫기도 배경도 전혀 없는 그 소경의 하루 수입은 불을 보듯이 뻔했습니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도 벅찬 일이었습니다.

 

갖은 수모와 천대를 당하며 매일 굴욕적인 삶을 버텨가던 소경은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자"는 생각도 숱하게 들었지만 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데 없는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예리고의 소경은 절규합니다. "주님,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더 이상 체면도 그 무엇도 없었습니다. "소경인 주제에 어디서 떠드느냐"고 윽박지르는 사람들의 구박도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남아있는 단 한가지 소원,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있는 힘을 다해서 외칩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외침이 얼마나 절박했었는지? 얼마나 간절했었는지 예수님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 신앙생활 안에서 보다 필요한 것은 예리고의 소경이 지녔었던 눈을 뜨기 위한 그 간절함입니다. 새 삶을 한번 살아보겠다는 그 절박함입니다. 체면을 접고 "살려달라"고 크게 외치는 일입니다. 구원을 위해서라면 앞 뒤 따지지 않는 적극성입니다. 한번 변화되어보겠다는 용기입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한심하게 살아왔던 지난날, 눈뜬 소경으로 살아왔던 지난 삶을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형제의 고통 안에 머물러 계셨던 주님을 보지 못했던 소경, 모든 것이 은총이었던 제 지난 삶 구비 구비 마다 현존하고 계셨던 주님을 보지 못했던 소경이었음을 뉘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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