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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5.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5-25 조회수7,994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7년 5월 25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 18,1-8

그 무렵

1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2 거기에서 그는 폰토스

출신의 아퀼라라는

어떤 유다인을 만났다.

아퀼라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다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자기 아내

프리스킬라와 함께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바오로가 그들을

찾아갔는데,

3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
4 바오로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5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뒤로,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면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하였다.

6 그러나 그들이

반대하며 모독하는

말을 퍼붓자

바오로는 옷의 먼지를

털고 나서,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들에게로 갑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7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

티티우스 유스투스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는데,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다.

 집은 바로

회당 옆에 있었다.

8 회당장 크리스포스는

온 집안과 함께 주님을

믿게 되었다.

코린토 사람들

가운데에서 바오로의

설교를 들은 다른

많은 사람도 믿고

세례를 받았다.

복음 요한 16,16-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7 그러자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18 그들은 또 “‘조금 있으면’

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묻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내가 말한 것을 가지고

서로 묻고 있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15년 전, 제가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 우연히

자전거를 오랫동안 타신 분과

함께 자전거를 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자전거 탈 때에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이

훨씬 더 좋고, 재미있어요.”
솔직히 당시에는 정말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오르는 오르막길이

내리막길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싶었지요.

하지만 지금 현재 저 역시도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이

훨씬 더 좋고 재미있어요.”
왜 그럴까요? 오르막길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페달 질을 해야만 하는데

왜 더 좋아할까요?

바로 오르막이 끝나는 길에는

반드시 내리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나게 내려가는 내리막이 있기

때문에 힘들게 오르는

오르막길이 나쁘다거나

 싫다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등산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왜 등산을 좋아하십니까?

산 정상까지 가는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그만 밑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상쾌함과 기쁨 때문에 어렵고

힘든 길을 꾹 참고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 맛을 깨달은 사람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그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해서

다시금 남들이 어려워하는 길을

기쁜 마음으로 간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고통과 시련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기쁨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절망 안에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조금 있으면’ 일어날 일은

당신께서 배반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되어 묻히시는 일만 아니라

부활도 암시합니다. 곧 이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인 것이지요.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께서 부활하신

미래의 상태로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고통과

시련으로 크게 와 닿게 되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결코 절망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을 바라보면서

우리 역시 삶 안에서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고되고 힘들다고

여기지만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커다란 희망을 바라보면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을 통해 얻는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하라.

실패하라. 그리고 다시 도전하라.

이번에는 더 잘 해보라.

넘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단지 위험을 감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뿐이다.

 이제 여러분 차례이다.

이 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

(오프라 윈프리)

저와 오랫동안 함께 한 자전거입니다.

"낙타가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그늘 하나 없는 사막에서

낙타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체질적으로 그늘 없이도

스스로 체온조절을 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에 대한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볼 수 있었습니다.

낙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고

걷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타의 긴 목과 머리가 몸에

 그늘을 드리워서 체온조절이

가능한 것이지요.

만약 낙타가 태양의 뜨거움을

피하려고 외면했다면 온 몸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열기에

쓰러져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태양을 피하지 않는 이 낙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타의 정면승부가

낙타를 살린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삶을

똑바로 보고 또 그 상황을

피하지도 미루지도 않으면서

살아야 진정으로

이 세상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쉽고 편안한 길로만 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더 성장하는 사람은

어렵고 힘든 길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힐 수 있는 용기를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의 삶,

정면으로 부딪히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삶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통해 이를 이겨내고

정면으로 부딪힐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태양을 피하지 않는 낙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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