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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성남 신부님 / 제12회 문제의 기준이 무엇인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7 조회수1,489 추천수4 반대(0) 신고

홍성남 신부의 행복한 신앙 


 



제12회 문제의 기준이 무엇인가?


안녕하십니까? 지난주부터 문제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어요. 지난주의 첫 번째 주제가 뭐였냐 하면, 문제가 누구한테 생겼는가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랬습니다. 방송을 본 신자분들이 가끔 저한테 그러세요. 눈 좀 그만 깜빡거릴 수 없냐고. 저는 제가 눈을 깜빡거리는 거를 몰라요. 그런데 보는 분들이 다 불편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러면 이분들이 문제아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계속 봤더니 볼만해요. 그러면 이제 문제가 해결이 된 거예요. 문제라는 건 사실 이런 식으로 풀어간다는 거죠. 상대방을 바꿀 수 없고, 상대방의 문제를 보고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제가 본당으로 다니면서 강의를 하러 갑니다. 강의하러 가면 신자분들이 맨 앞에 와 앉으면 좋은데, 맨 뒤에, 사이드에 이렇게 끼리끼리 모여 있어요. 그걸 보고서 "왜 저렇게 앉아서 듣고 있지?" 그러면 누가 문제가 생기죠? 제가 생기는 거예요. "아, 저분들이 정이 많아 가지고 붙어서 앉아 있구나." 그러면 문제가 안 발생한단 말이죠.

 

그런데 맨 뒤에 앉아 있는 분이 제가 칠판에 글씨 쓰는데 "안 보여요." 그러면 누가 문제가 발생한 거예요? 안 보인다고 하는 그분이 문제가 발생한 거예요. 저는 여기 쓰는 게 무슨 상관이 없어요. 저는 편해요. 문제라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지난주에 설명을 드렸지요. 이런 관점에서 설명을 면 많은 분들이 해석이 너무 까칠하다고 얘기를 하는데 까칠한 게 아니라 현실적인 해석을 해 드리는 겁니다.

 

◆ 문제의 기준이 무엇인가? 

 

오늘은 말씀드린 대로 두 번째 시간, 문제의 기준이 뭔가? 대개 주부들이 남편과 아이 문제를 갖고 옵니다. 문제인 남편과 문제가 아닌 남편을 구분을 한다면 좋은 남편의 기준이 뭘까요? 괜찮은 남편. 1. 내 말을 잘 듣는다. 이거는 애들도 마찬가지겠죠. 남편이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애들이 내 말을 잘 들어주면 그럼 문제가 없다. 2. 능력 있다. 남편이 돈을 잘 벌어오면 문제가 없다. 돈을 못 벌어오면 그때부터 문제다. 3. 성격이 좋다.

 

그럼 좋은 애는, 1. 말을 잘 듣는다. 2. 성적이 좋다. 3. 성격이 좋다. 만약에 자매님들이 좋은 남편의 기준을 이렇게 만들어 놨다고 그러면 이 중에서 몇 개 정도가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세요? 아이가 엄마 말 잘 듣고 성적 좋고, 성격이 좋아요. 그런 아이에요. 남편도 그래요. 이렇게 남편과 아이가 이런 사람이어야 된다고 내가 생각을 해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개를 키우지 왜 사람을 키우나 ^^* 사람하고 개는 다르잖아요. 이거 집에 강아지 얘기하는 건지, 사람 얘기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개는 말을 잘 들어요. 딴 데 가서 뼈다귀 가져다 집에 갖다 놔요. 머리도 좋아요. 애나, 개나 엄마들이 요구하는 거는 애인지, 개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제가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젊은 엄마들이 우리 집 애는, 우리 집 애는 그래요. 개 얘기하더라고요. 개 얘기 ^^* 또 다른 엄마들 모임에 가 가지고  애들 얘기하는 거 들으면서 그 개에 대해서 들었던 얘기하고 비교가 되는데 거의 유사해요. 이게 참 문제의 기준이라는 것이 참 애매하다. 결국 나한테 좋으면 문제가 없고, 나한테 안 좋으면 문제가 있다는 그런 기준을 우리가 갖고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형제님, 좋은 주부란? 문제가 없는 주부란? 1. 말을 잘 듣고  2. 잔소리 안 하고 3. 밥 잘하고. 요새는 젊은 남편들이 원하는 게 하나 더 있대요. 4. 돈 잘 벌어왔으면 좋겠다 맞벌이를 원한대요. 만약에 장이 없으면 재테크라도 하라고 요구한답니다. 자매님들, 이 네 개를 다 채우고 사시는 분? 없어요? 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저 사람이 문제가 있다, 없다'라는 그 기준이 사실은 이렇게 상대방이 감당지 못할 기준을 갖고 있을 때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거죠.

 

지난 시간에 본당 신부와 신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신자분들이 볼 때 괜찮은 본당 신부는 어떤 사람이어야 돼요? 1. 짧은 강론. 이 방송 나간 다음에 길게 강론하시는 분들 난리 나시겠다. 사실 그런 얘기가 있죠. 저도 선배 신부님한테 들은 얘기인데 "강론을 길게 하려면 재미있게 하라. 재미없으면 짧게 해라. 짧게 하기 싫으면 아예 하지 마라."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신자분들 입장에서는 짧은 강론이 좋다.

 

또 뭐가 있을까요? 본당 신부가 이랬으면 좋겠다. 원하는 거? 2. 신자들을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몇 년 전엔가 신자분들이 사제들에게 원하는 그런 조항이 있었어요. 아, 그걸 읽으면서 제가 숨이 갑자기 답답한 느낌이 들었는데, 내용이 1. 기도 열심히 하고 2. 열심히 같이 놀아주고 3. 사제관 지키면서 밖에 행사도 다 따라가 주고 등 전혀 맞지 않는 양극의 조건을 동시에 요구하는 그게 있었어요. 그걸 읽으면서 야, 이대로 살다가는 끝은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 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님들이 신자분들에게 바라는 것들도 있죠. 1. 기도 많이 하고 2. 헌금, 교무금 많이 내고 3. 미사 참례 빠지지 말고 기타 등등의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당 신부나, 신자나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아, 이 정도는 해 줘야 되지. 그래야 본당 신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사실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예요. 문제의 기준이 높으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죠.

 

제가 아는 신부가 이런 케이스가 있어요. 굉장히 짜증이 많은 신부였는데, 만나기만 하면 신자분들에 대한 불평을 얘기를 하는 거예요. "아, 우리 신자들은 기도도 안 하고, 헌금도 조금 내고, 만나기만 하면 서로 싸우기만 하고 지겨워 죽겠다."는 거죠. 그런 얘기를 해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면 그 얼굴이 더 짜증나. 짜증을 내는 그 얼굴이 더 짜증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야, 네가 그렇게 신자들한테 짜증내는 거 이해가 되는데 짜증 내는 네 얼굴 보는 신자들은 참 힘들겠다." 그랬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제 이 친구가 한 1년쯤 지난 다음에 만났는데 얼굴이 펴져서 나타났어요. 그래서 "아, 어떻게 요새 편해 보이냐?" 그랬더니 아, 자기는 요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거예요. 전에는 신자분들이 많았던, 이 친구가 중간에 본당이 바뀌었는데 전에 짜증 내던 본당은 신자 수가 굉장히 많은 본당이었어요. 그래 사람에 치였던 거예요. 

 

그런데 그다음 본당으로 발령이 났는데 여기는 할머니들 밖에 그것도 몇 분 밖에 없는 거예요. 가니까 사람이 귀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거죠. 그래 지금은 할머니 한 분이 안 나오시면 왜 안 나오시는 거야? 그게 아니라 아, 이제는 불안하다는 거예요. 그분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뭐 걱정도 되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러는데 마음은 더 편하다는 거죠. 사람이 귀하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기준을 아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 남의 문제를 떠맡지 마라

 

 

세 번째 얘기는 남의 문제를 떠맡지 마라.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 중에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도 문제인데 우리 남편도 문제입니다."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고 그 남편을 데리고 와야 되는데 남편은 안 데리고 오고 남편이 문제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분들한테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라는 것은 내가 걱정을 해 가지고 해결되는 게 있고, 걱정을 해도 해결이 안 되는 게 있어요. 그런데 해결될 문제 같으면 걱정을 하는 게 괜찮은데, 아무리 걱정해도 해결이 안 될 경우에는 손을 떼는 것이 좋거든요.

 

그런데 와 가지고 우리 남편이 문제에요. 저도 문제지만 우리 남편이 문제라고 하면 제 입장에서는 아, 자매님 인생이나 집중하시라, 남편 일에 대해서는 손을 떼라. 남편 문제는 자매님 문제 해결하고 그다음에 다루도록 하자라고 이렇게 문제를 정리를 해 드려야 됩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면 대개 이제 자매님들이 "아, 알았어요." 그래요. 그러고서 이제 아, 제 문제는 뭐고, 뭐고, 뭐고, 그러면서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럼 저의 남편은 어떡하죠?" 그래요. ^^* 내가 내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데 남의 문제까지 떠맡겠다고 하는 거는 그거는 걱정이 아니라 콤플렉스입니다.

 

두 사람이 있어요. 산을 넘어가야 되는데 한 사람은 건강하고, 한 사람은 병들었어요. 그런데 먹을 거는 1인분 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이 1인분을 갖다가 병자에게 먹여야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은 남의 인생을 내가 지고 가야지 하는 그 마음을 가진 분들하고 별로 다를 게 없어요. 그거를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그래요.

 

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분들은 내가 만약에 이 1인분을 갖다가 내가 다 먹고 나 혼자 건강해지면 이 사람은 더 병들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그런 눈치를 굉장히 많이 보고 사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희생을 하려고 그래요. 그런데 문제는 내 건강이 그렇게 좋지도 않은데 이 사람이 더 아파요. 산은 넘어가야 되고, 먹을 거는 1인분 밖에 없고. 그럴 때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이 사람을 업고 가야 되니까 내가 이걸 먹어야 되거든요. 그게 정상인데 그걸 굳이 이 사람한테 먹이고 산에 올라가다 둘이 같이 죽는 길을 선택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그런 콤플렉스를 가진 분들이.

 

*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문제)만 짊어지고 가야 한다.

 

그런 분들이 상담을 받으러 오면 자기 문제 얘기하다 말고 남편 문제 얘기하고, 자기 문제 얘기하다 말고 애 얘기하고, 자기 문제 얘기하다 말고 시댁 얘기하고 그래요. 그럼 학교에서 수학 문제 같다 놓고 한 문제 풀다가 갑자기 옆에 문제 한 번 보고, 이것 풀다 말고 옆에 보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산만한 인생을 살게 되면 아무 문제도 해결이 안 된다는 거죠.

 

그런 분들은 이제 문제에 대한 식별을 갖다 해 드려야 되는데 아, 이게 쉽지 않은 거예요. 그게 오랫동안 습관이 된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라 하는 것이죠. 내가 남의 문제를 갖다가 해결을 하려면 내가 갖고 있는 힘이 있어야 돼요. 성서에도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그런 얘기를 했죠. 사람마다 자기 십자가가 다 있다고.

 

이거는 심리학에서는 이제 문제라고 얘기를 하는데, 군대에서도 계급이 상병, 병장 정도 되면 정신력이라는 게 일등병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집니다. 정신력이 굉장히 좋아져요. 상병 정도 되면 체력이 좋은 이등병들이 막 허덕허덕 거리면 상병들이 자기보다 덩치가 더 큰 졸병의 배낭을 짊어지고 뛰어요. 정신력이 좋아가지고.

 

이 인생살이도 그렇다는 거죠. 이 인생살이도 내가 인생을 사는데 내가 내적인 내공, 내적인 힘이 강해요. 그런 분들은 남의 십자가를 지고 가도 돼요. 내가 남편 거, 애 거 다 짊어져도 괜찮아요. 견딜만하거든요. 그런데 내 것도 막 허덕이면서 남의 것을 지고 가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단 말이죠. 그거는 사실 힘이 없는 상태에서 남의 거를지겠다고 그러는 거는 콤플렉스라는 거죠.

 

*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타인의 문제까지 개입하는 것은 콤플렉스다.

 

그런 분들은 자기 콤플렉스가 뭔가? 내가 왜 이렇게 남의 문제에 대해서 손을 떼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분석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분석을 안 받게 되면 자기 인생의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고 그리고 에너지 소모가 많아 가지고 일찍 돌아가실 위험이 커요.

 

그다음 네 번째로 해 드려야 되는데 시간이 거의 다 된 것 같습니다. 일단 지난 시간 얘기를 조금 복습을 해 드리고 그리고 그다음 얘기를 해 드릴게요.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문제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이 뭐라고 그랬죠? 문제가 누구한테 발생했는지 보라고 그랬죠.

 

*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방법 : 문제가 누구한테 발생했는지 보라.

 

딴 사람들이 내 눈에 보기에 안 좋아 보이는 그런 경우에 사실은 상대방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일 수 있다. 내 거를 보라는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야지 문제를 푸는 방법도 같이 보인다고 얘기를 했고, 두 번째 얘기는 어떤 얘기를 했죠? 내가 갖고 있는, 저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내 문제의 기준이 어디인가? 정말로 저 사람을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고 있는가? 그거에 대해서 평가를 해야 된다고 그랬습니다.

 

* 문제 해결의 두 번째 방법 : 문제의 기준이 어디인가?

 

정신병 이상심리학에서도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기준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절대 기준이 없다고 그러죠. 어쩌면 지역마다, 민족마다 그 기준이 다 다르기도 하고, 사람마다 이렇게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기준이 다릅니다. 문제의 기준도 그렇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기준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걸 인식하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린 것이 내가 남의 십자가를 지고 가려면 내가 내 십자가를 지고도 아, 이 정도는 괜찮아. 남의 것도 질 수 있는 나한테 내적인 힘이 있어야 된다.

 

* 내적인 힘이 충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타인의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내가 건강하고 건강이 넘치다 못해서 힘이 넘쳐야지 남의 걸지고 갈 수 있지, 나도 이렇게 병들고 힘든데 남의 걸 지려고 하면 그거는 콤플렉스다 하는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거기까지가  이제 문제에 대한 세 가지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렸고, 다음 주에 말씀드리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는 문제의 포로가 되지 말라 하는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최근에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늘고 있는데, 자살을 하는 분들이 자살하는 심리 상태가 있어요. 그것을 문제와 연관 지어 한 번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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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홍성남 신부님, 문제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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