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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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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5-22 조회수78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5월 22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 18,9-18

바오로가 코린토에 있을 때,

 9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그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11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12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13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바오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15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16 그러고 나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다.

17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18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복음 요한 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를 많은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의 일상을
사진에 담아서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여기에 자신의
나쁜 것은 올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좋은 일상만을 올리고 있지요.
연인과 싸우는 모습, 돈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모습, 시험을 망쳐서
괴로워하는 모습 등을 올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좋은 모습을 보고서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는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편하고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소셜 미디어의 모습은
그 사람 삶의 몇 %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크게 잡아봐야 아마 5%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따라서 소셜 미디어의
 모습을 보고서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있다면 겨우 5%를 보고서 부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의
가장 좋은 모습이 겨우 밥 먹는 것,
차 마시는 것, 옷 입는 것 등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나와 비교하면서
 부러워할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것들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렇게 부러워할 것도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것들은 순간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진짜 나의 모습을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습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짜의 내 모습을 만드는 것보다
진짜의 내 모습을 찾아서 사랑하는
당당한 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이후 세상에
속한 자들은 웃었습니다.
자기의 뜻대로 골치 아픈 예수님을
 제거했다면서, 이제 더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로써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돌아갔을까요? 순간의 만족만
 가져다주었을 뿐, 이 세상을
마치고 하늘나라에서 큰 후회를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웃을 때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겪는
고통을 출산의 고통에 비유하십니다.
출산의 고통은 정말로 크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그 고통을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콧구멍으로 수박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아픔” 혹은 “피가 날 때까지
양 손가락으로 입을 양쪽으로 찢는 아픔
”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남자이고,
또 결혼하지 않는 신부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는 체험할 수 없지만,
 이 글만으로도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고통스러운 출산을
피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출산 후의 기쁨, 내 아기를 품에 안는
 기쁨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중에 웃게 된 이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주시는 기쁨은
 세상의 기쁨보다 크고 오래갑니다.
따라서 세상의 것이 아닌 주님께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때를 놓치지 말라.

이 말은 인가니에게 주

어진 영원한 고통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그리 대단치 않게

여기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와도

그것을 잡을 줄 모르고

때가 오지 않는다고 불평만 한다.

하지만 때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다.

(앤드류 카네기)

못된 신부, 믿음 없는 신부

예전에 본당신부로 있을 때,

본당에 한 장사꾼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너무나 힘든 여건에

처했다면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물건을 팔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온 물건이 너무나

 조잡해 보였고, 질도 기성 제품과

비교해서 너무 안 좋았습니다.

이런 물건을 성당에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했더니,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슨 신부가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신자가 물건을 가져왔으면

 믿어줘야지, 왜 신자를 믿지 못합니까?”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더욱더 차갑게

거절했습니다. 안 좋은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이유로 못된 신부,

믿음 없는 신부로 만드는 것이

괘씸했기 때문입니다.
좋게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

감정적으로만 처리한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잘한 결정이라도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이 들어 있을 때는

좋은 결론을 맺을 수가

 없는 법 같습니다.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되돌아볼 수 있는 마음,

스스로 낮추어 생각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주님의 뜻을

새기는 마음이 아닐까요?

후회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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