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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8.0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01 조회수1,82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0년 8월 1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예레 26,11-16.24
그 무렵 11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귀로 들으신 것처럼
이 사람은 이 도성을
거슬러 예언하였으니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12 이에 예레미야가 모든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집과
도성에 대하여 여러분이 들으신
이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13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입니다.
14 이 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
15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16 그러자 대신들과 온 백성이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당할 만한
 죄목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
24 예레미야는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백성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
복음 마태 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경험했을 때,
그 원인을 외부의 어떤 사건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사건의 결과로
자신이 기쁘다든지, 화가 났다든지
하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대학에 합격하면 기쁘고, 떨어지면
우울하다. 회사에서 승진하면 기쁘고,
승진에서 탈락하면 슬프다.’
당연합니까? 당연하게 보이는
인과 관계이지만 사실 사건을 바라보는
 자기 생각과 신념이 심리적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매우 기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는 어떨까요?
지금의 점수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어서 하향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합격했어도 원하는 대학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특별히 비합리적이고,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했을 때는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게 되는 합리적인 생각을 하면, 실망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두려워합니다.
헤로데는 목 베어 죽인 요한이 되살아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으며,
엘리야의 영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부활했기에
더욱 큰 힘을 지니게 된 것이라면서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불합리한 생각이었고,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꾸짖는
세례자 요한만 없어지면 편안해질
것이라는 생각, 사람들 앞에서 했던
맹세를 거두었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생각 등으로
 그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역사상 잊히지
않는 큰 죄를 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느니 임금의 분노를 사는 편을
 택했지요. 헤로데는 맹세를 깨뜨리는
것과 손님들의 눈을 겁냈지만,
사실 이보다 훨씬 무서운 하느님을
겁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바로
 하느님 편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의 고백처럼,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예레 26,15)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안에서 두려움 없이
하느님을 선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더라도 한 가지는 남는다.
주어진 상황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 선택할 자유, 자기 방식을
결정할 자유가 그것이다.
(빅터 프랭클)

나를 만든 어머니의 입맞춤

외출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집이 완전히 난장판입니다.

그것도 집안 전체가 물감투성이로

되어있다면 어떠시겠습니까?

분명히 깜짝 놀라고 화가 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난장판의 주범이 집을 지키고

있었던 어린 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음에 똑같은 말썽을

부릴 수도 있어서 아마 따끔하게

혼내는 것이 정상으로 생각하실 것입니다.
미국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벤저민 웨스트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께서 장을 보러

외출한 사이에 여동생 샐리를 돌보다가

그림물감을 발견하고는 동생 초상화를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동생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물감으로 장난을

쳤습니다. 그래서 집안 전체가

물감투성이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림 종이를 집어 들고는

“참 근사하게 그렸구나.” 하면서

아들에게 입을 맞춰줬다고 합니다.

벤저민은 훗날 인생을 전환점을 가져다준

그 날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어머니의 입맞춤이 저를 만들었습니다.”
자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입니다.

그런데 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로 인해서

자녀의 성공을 가로막았던 것은 아닐까요?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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