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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4년 4월 18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_이영근 신부님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17 조회수76 추천수4 반대(0) 신고

 

푸른잎새추천 0조회 224.04.17 21:57댓글 0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군중들은 그분을 두고 수군거렸습니다(요한 6,4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살아있는 빵'이란 당신께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생명의 빵이요, 건너와 관계를 맺는 활동 중인 '빵'임을 말해줍니다.

곧 자신을 죽여 타인을 살리고 있는 ‘살아있는 활동중인 빵’입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빵'은 동시에 '살리는 빵'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곧 먹는 이 안에서 ‘부활하는 빵’입니다. 

이 빵은 다름 아닌 '당신의 살', 곧 ‘살아있는 살’이요, ‘떼어 나누어진 살’입니다.

먹혀서 ‘먹는 이’에게서 살아있는 살이 되고, 그를 당신과 한 몸이 되게 하고, 당신의 생명이 되게 하는 ‘살’입니다.

이는 당신의 증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죽음을 몰아내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참으로 놀라운 신비입니다.

우리를 당신 신성에 들게 하고, 우리를 부활시키시는 신비입니다.

그러니 '부활'은 단지 ‘죽지 않고 사는 것만이 아니라 드높여지고 영광되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탄하올 신비인지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 까닭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빵'을 ‘먹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가 응답해야 할 몫입니다.

만약 이를 알면서도 먹지 않는다면, 참으로 어리석음은 일인 것입니다.

 

사실 '먹다'(τρωγω, ‘씹다, 씹어서 부수다’)라는 동사는 인간이 음식을 씹을 때 사용하는 동사가 아니라, 초식동물이 풀을 먹을 때 ‘새싹을 입으로 뜯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곧 초식동물이 풀을 씹을 때는 입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의 근육을 연계해 온몸이 함께 움직여 씹듯이, 말씀을 온몸으로 음미하며 먹는 것, 곧 삶으로 ‘실행’하는 것, ‘실행’으로 먹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를르의 체사리우스는 말합니다.
“만일 누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먹지’ 않는다면, (먹지 않고 저장된) 말씀은 만나에 구더기가 들끓었듯이 구더기가 들끓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있는 이 빵을, 바로 하느님의 참된 사랑을 받아먹고 살아갑니다. 

바로 이 큰 사랑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어 살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요한 6,51)이라 하셨으니, 동시에 그 살을 먹은 우리 역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살’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의 생명이 제 삶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먹혀서 저를 살리듯 저도 먹혀서 타인을 살리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주님!

오늘도 당신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당신 자신을 쪼개어 떼어 주시오니,

오늘 제가 저 자신을 위한 빵이 아니라 세상에 건네주는 빵이 되게 하소서!

제가 만든 빵이 아니라 당신이 주신 빵을 건네주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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