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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5,13-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6-08 조회수7,97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6월 8일 화요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5,13-16)

   연중 제10주간 화요일(6/07)

 

1독서<예수님께서는 늘!”만 있을 따름입니다.> (2코린1,18-22)

형제 여러분, 18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말하는데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 하면서 아니요!” 하는 것이 아닙니다.

19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그분께는 늘 !”만 있을 따름입니다.

20 하느님의 그 많은 약속이 그분에게서 !”가 됩니다그러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아멘!”합니다.

21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19(118),129.130.131.132.133.135(◎ 135ㄱ 참조)

◎ 주님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소서.

○ 당신의 법 하도 놀라워제 영혼 그 법을 따르나이다

○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미련한 이들이 깨치나이다

○ 당신 계명을 열망하기에저는 입을 벌리고 헐떡이나이다

○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에게 약속하신 대로저를 돌아보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 당신 말씀대로 제 발걸음을 굳건히 하시고어떠한 불의도 저를 짓누르지 못하게 하소서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복음<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코린1,18~22)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21~22) 

 

사도 바오로는 비난받고 있는 자신의 성실함의 근거를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성실하심'에 둔 다음, 코린토 2서 1장 21~22절에서 코린토 교회 방문에 대한 변경된 계획의 문제를 미루어 놓고, 우선 이 주제를  신학적으로 더욱 발전시킨다. 

 

코린토 2서 1장 18절의 '하느님의 성실하심'은 어떻게 믿는 이들에게 전달되는지를 설명하는데, 바로 하느님 당신 자신이 그것을 전달한다고 사도 바오로는 제시한다.

 

특히 코린토 2서 1장 21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기름을 부어 주신'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굳세게 하시고'에 해당하는 '베바이온'(bebaion; stand firm)은 '견고케하다', '보증하다'는 뜻을 지닌 '베바이오오'(bebaioo)의 현재 분사형이다. 

 

이 단어는 사도 바오로와 믿는 이들 모두가 하느님 자신에 의해 그리스도의 것으로 보증되었으며, 하느님의 존재와 성실하심이 이 사실을 보증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에 해당하는 '에이스 크리스톤'(eis Christon; in Christ)에서 '안에서'라는 뜻을 전치사 '엔'(en; in)이 사용되지 않고, '~안으로'라는 뜻을 지닌 전치사 '에이스'(eis; into)가 사용되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왔다는 점을 표현했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이 하느님이심을 언급하고 있는데, '기름을 부어 주신'에 해당하는 '크리사스'(chrisas; anointed) '그리스도'로 번역된 '크리스톤'(Christon; Christ)과 더불어 언어 유희적 표현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구약의 사제, 임금, 예언자와 같은 직무와 역할을 감당해야 할 자로 선택하셨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께서 오늘날 우리 믿는 이들에게도 기름을 부으셨다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역시 구약 시대의 하느님 나라 확장의 주체로서 선택된 사제, 임금, 예언자와 같은 직무와 역할을 오늘날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제 코린토 2서 1장 22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는 이들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셨다. 여기서 '인장을 찍으시고'에 해당하는 '스프라기사메노스'(sphragisamenos; set his seal of ownership on)는 '공문서의 효력을 보장해 주다'는  뜻을 지닌 '스프라기조'(sphragizo)의  부정(不定) 과거 분사형이다. 

 

보통 인장이 찍혀진 채로 있는 봉인은 서류가 변조되지 않았거나 또는 수송 중에 물건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소유권'의 표시다. 

 

여기서는 믿는 이들을 굳세게 하시고 기름을 부어 주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간택하심이 결코 무료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표시로 인장을 찍으신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인장을 찍으심의 수단이 되시는 성령께서 그 인장 찍으심의 보증이 되신다. 

 

이러한 사실은 성령으로 인장 찍으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심판 날에 간택받은 자로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을 내포한다(에제9,4). 

 

한편 여기서 '보증'으로 번역된 '아르라보나'(arrabona; a deposit)는 히브리어 '아라본'(arabon)에서 유래한 상업적인 단어(창세38,18)인데, 어떤 물건을 매입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금의 총액 중 첫번째 분납금 (down payment)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성령'으로 번역된  소유격 '투 프뉴마토스'(tou pneumatos)가 동격의 소유격이므로, 이것은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보증'이라는 뜻이다. 

 

보증을 받은 사람은 그 약속한 자가 계약을 충실히 완수할 것에 대해 확신하게 된다. 따라서 구원의 일을 시작하시는 성령을 보증으로 받은 이는 하느님께서 그 구원을 완성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세상의 소금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피의 계약(말씀)은 구원의 힘이다

(마태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우리는 흙으로 지어진 그릇그 그릇에 소금을 담으면 소금 그릇이 되는 그 의미의 너희는 소금이다라 하신 것입니다소금은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물질로 부패를 방지하는 곧 죽을 죄인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말씀을 뜻합니다.


(탈출30,35) 너는 향 제조사가 하듯이이것들을 잘 섞고 소금(말씀)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한 것을 만들어라.


(민수18,19)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거룩한 예물(예수)은 모두영원한 규정에 따라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


(레위2,13) 너희가 곡식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

소금계약(말씀)에 맞는 제물과 예물을 드림.


(2역대13,5) 너희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소금 계약으로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권을 영원히 주신 것을 알지 않느냐?

소금계약(말씀)-영원한 왕권.


(2열왕2,19-21) 19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어르신께서 보시다시피 이 성읍(교회)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그러나 물이 나빠서 이 땅이 생산력(구원)을 잃어버렸습니다.” 20 이 말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시오.” 하고 일렀다그들이 소금을 가져오자, 21 엘리사는 물이 나오는 곳에 가서 거기에 소금을 뿌리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되살렸으니이제 다시는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생산력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죄인을 거룩하게 하여 다시 살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소금계약은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맺는 새 계약인 것.


(루가22,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죄인들의 죄가 되시어 십자가에 달리시어 다 이루어졌다’ 하고 죽으신 그 예수님의 몸과 피를 소금계약구원의 새 계약으로 먹고 마셔야(믿어야죽거나 생산력을 잃는 일곡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소금이 제맛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것곧 소금계약인 영원히 변치않는 하느님의 왕권그 말씀의 힘인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거룩과 생명을 믿지 못하는 것그래서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 미련을 둔다면 롯의 아내처럼 소금 기둥이 됩니다.(창세19,29)

또한 단순히 예수님의 몸과 피로만 먹고 마신다면그래서 소금계약 그 새 계약의 맛(믿음)을 못낸다면쓸모가 없어 버려질 것이며 사람들의 놀림을 당하는짓밟힐 것입니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소금과 같이 그릇에 빛을 담으면 등불-빛이 되는 것. -빛은 예수그리스도(요한1,9~)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비추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


(묵시21,23) 그 도성(새 하늘과 새 땅)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등불(-예수), 등경(교회), 교회는 집 안(교인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자신들의 뜻을 위한 빛이 아닌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빛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빛으로 자신들의 어둠(죄인)임을 깨닫고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요한1,5.9.11-12)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나의 빛나의 착한 행실은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이 되어야 그것이~~


(요한10,11) 나는 착한 목자다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는 목자그 예수님의 착한 일을 전하는착한일.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그 십자가의 피로 맺는 새 계약(소금계약)을 전하는 그 착한 행실을 했을 때그 복음을 듣는 이들이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게 되지요. ( 인간적 착한 행실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만을 칭찬 합니다.)


(마르9,50) “소금은 좋은 것이다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소금계약그 영원한 말씀으로만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1코린1,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아멘.

 

 

 

복음묵상/ 2014년 6월 10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3) 

 

하느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밝히며 세상과 타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근본 역할에 대한 가르침이다. 

 

'너희는 소금이다'에 해당하는 '휘메이스 에스테 토 할라스 테스 게스'(hymeis este to hallas tes ges;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에서 '에스테'(este)는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에이미'(eimi)동사의 현재 직설법 2인칭 복수형이다. 

 

여기서 현재형이 사용된 것은 이 교훈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경할 수 없는 절대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되라'는 명령법이 쓰이지 않고, '~이다'라는 직설법이 사용된 것은 이 말씀을 들은 이후부터 세상의 소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금의 역할을 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고, 이미 하느님의 통치권 안에 속한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된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세상의 소금이며, 소금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당위성과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소금에 해당하는 '할라스'(hallas; salt)는 성경이나 유대 문헌과 관련하여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첫째,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물, 불, 곡식, 의복 등과 같이 삶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품이다. 따라서 소금으로서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가 없는 세상은  영적 생명이 끊어진 세상이다. 

 

둘째, 방부제의 역할을 한다. 생선과 고기를 보존하는 데 사용되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없는 세상은 부패할 수 밖에 없고, 반대로 세상이 부패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째,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세상의 빛이라는 빛의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맛의 미각적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녹아서 맛을 내는 소금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도 겸손하게 자신을 숨기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와 맛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치료제의 역할을 한다. 유대 문헌에 보면 치통도 소금으로 고치고, 신생아도 소금으로 문질러 그 몸을 깨끗하게 했듯이 이 세상의 환부를 치료하는 역할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해야만 한다. 

 

다섯째, 정결한 희생을 상징한다.  구약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은 방부제의 역할과 더불어 제물을 정결하게 하는 소금을 뿌렸듯이 그리스도의 제자도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물 위에 뿌려져서 타서 없어지는 소금처럼 정결한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한다.    

 

한편, '세상의'에 해당하는 '테스 게스'(tes ges; of the earth)에서 '게스'(ges)는 하늘과 대조되는 입장에서의 '땅', 사람이 거주하는 '지구', 혹은 '사람','인류'라는 복합적 의미를 지니는 '게'(ge)의 소유격이다. 따라서 '세상의 소금'이라는 표현은 '땅의 소금'이라는 의미가 된다.

 

팔레스티나에서는 소금을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로 사해 지역의 늪 지역에서 채취하거나 땅에서 암염을 캐내어 사용했으므로, '테스 게스'는 땅에서 채취하는 팔레스티나 특유의 소금 생산 방법을 반영하는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사람들 가운데서의 소금이라는 의미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선민 의식과 자기식의 의(義)와 거룩함을 주장하며, 이방인들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불결한 자로 취급하며 멀리했던 유다인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들은 그들과 교류하며 자신을 희생하여 그들을 변화시키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의 문장에서 서두에 나오는 '만약'(그러나)에 해당하는 '에안'(ean)은 여기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을 서술할 때 쓰이는 '호탄'(hotan)처럼, '~할 때면 언제나'(whenever) 혹은 '~하는 즉시'(as soon as)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그 즉시' 혹은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예외없이 언제나'라는 뜻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오늘날처럼 정제된 순도가 높은 소금이 아니라 땅에서 채취한 불순물이 많은 암염을 사용했는데, 잘못 보관하면 염분은 빠져나가 버리고 찌꺼기만 남아 짠 맛을 도무지 낼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처럼 염분이 사라져 버린 소금은 전혀 가치가 없게 되듯이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삶이 되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짓밟힐'에 해당하는 '카타파테이스타이'(katapateisthai; and to be trodden; and trampled)는 부정사 현재 수동형이다. 여기서 수동형이 사용된 것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밟히게 됨을 보여 주고, 부정사 현재형이 사용된 것은 '항상 밟힌다'는 뜻이다.  

 

실제로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쓰레기로 취급되어 길에 버려지기도 했으며, 가옥의 옥상에 뿌려 흙을 딱딱하게 굳도록 만들어 평평한 휴식 공간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어쨌든,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사람으로부터 짓밟힐 정도로 무가치하고 비참해지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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