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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만히 등을 두드리는 이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3-07-25 조회수2,879 추천수32 반대(0) 신고

7월 25일 금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마태오 20장 20-28절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가만히 등을 두드리는 이>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비교적 순탄한 성장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도로 추정됩니다. 그런 데로 먹고 살만한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각별한(각별하다 못해 도에 지나친 과잉보호)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야고보의 어머니는 좀 극성스러웠습니다. 이미 다 큰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할텐데, 오버를 합니다. 예수님께 인사청탁을 한 것입니다. 물론 어머니로서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전혀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한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된통 야단을 맞습니다.

 

복음서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출가 당시의 야고보의 상황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과도 같았습니다. 한 마디로 갈 길이 멀었던 것입니다. 지극히 출세지향적인 인간이었는가 하면 급하고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출가 당시 야고보는 예수님을 따르겠노라고 결심을 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보다는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될 세속적인 그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한 구세주로 모시겠노라고 다짐한 야고보였지만 멀고도 먼 정화와 쇄신의 길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이토록 부족한 야고보를 당신의 최측근 제자로 부르십니다.

 

출세욕이 강하고 야심이 많던 세상의 인간, 육적인 인간이었던 야고보가 하느님의 인간, 영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거쳐야만 했던 그 숱한 시행착오와 뼈를 깎는 노력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집니다.

 

사회물이 덜 빠졌던 인간, 그래서 지극히 이기적이고 세속적이었던 한 인간 야고보에게 있어 예수님 추종이란 죽음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지극히 세속적인 성향과 나약함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야고보를 강하게 하시려고 셀 수도 없이 많은 바닥체험을 허락하십니다.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떨어짐을 반복하던 야고보, 너무도 많이 깨져서 더 이상 깨질 곳이 없어 아파하던 야고보의 등을 가만히 두드리는 이가 있었는데, 돌아보니 스승님이셨습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는 사람들은 야고보처럼 고통스럽지만 한번씩 두 번씩, 수 십 번씩, 수 백 번씩의 정화와 단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결국 고통이야말로 우리를 영적으로 살게 하는 축복입니다. 고통 안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고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고통을 용감하게 극복해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바로 영적인 삶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세상과의 인연을 끊은 삶, 그래서 세상에 소홀한 삶이 아니라 세상에 더욱 충실한 삶, 더욱 철저한 삶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세상의 고통, 그 안에 담겨있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삶, 그래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하느님 안에 해결을 시도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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