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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0,34─11,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7-12 조회수7,95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7월 12일 월요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제 십자가를 지고 (마태10,3411,1)

 

1독서<이스라엘 백성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탈출1,8-14.22)

그 무렵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가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아라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10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전쟁이라도 일어나면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

11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곧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되었다.

12 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13 그리하여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14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

22 마침내 파라오가 온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

 

화답송 시편 124(123),1-3.4-6.7-8(◎ 8)

◎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

○ 이스라엘은 말하여라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사람들이 우리에게 맞서 일어났을 때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우리를 거슬러 저들의 분노가 타올랐을 때우리를 산 채로 삼켜 버렸으리라

○ 물살이 우리를 덮치고 급류가 우리를 휩쓸었으리라거품을 뿜어내는 물살이 우리를 휩쓸었으리라저들 이빨에 우리를 먹이로 내주지 않으셨으니주님은 찬미받으소서

○ 사냥꾼의 그물에서우리는 새처럼 벗어났네그물은 찢어지고우리는 벗어났네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네

 

복음<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제1독서(탈출1,8~14.22)

 

"그 무렵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8)

 

흉년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뿐 아니라 여러 많은 고통을 겪게되는 야곱 일가는 먼저 이집트로 끌려가 성공한 요셉에 의해 이집트의 고센땅에서 정착하게 된다.

그 당시 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고센땅에 내려갔을 때 가족수가 불과 70명 정도였다.

 

고센땅은 이집트 카이로에서부터 나일강의 삼각주를 통과해서 홍해바다로 가는 영역속에 존재하는 아주 비옥한 땅이다.

야곱 집안은 대대로 목축을 했기에 그 당시 고센땅에는 목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요셉의 코치에 의해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당시 부러울게 없는 최대 강국이었고, 또한 목축하는 사람들, 냄새나는 사람들 근처에는 가기 싫어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관심밖에 놓여 있을 수 있었다.

 

성서학자들은 이 고센땅을 가리켜 이스라엘 민족의 '인큐베이터'였다고 말한다.

어린 생명, 즉 아주 연약한 생명이었던 이스라엘 부족을 잘 키워가지고 바깥으로 내놓는 역할을 하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46장 3절을 보면, 이집트에 넘어 가기 전 가나안의 경계 브에르 세바에서

제사를 드린 야곱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나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야곱 집안의 고통을 보상해 주시고, 자신이 선택하신 이 민족을 키워 사용하시고자 축복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축복과 번영이 오래지 않아 어느 한 순간에 또 뒤집히기 시작한다.

 

그것이 오늘 독서의 탈출기 1장 8절이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이 새 임금이 누구인가?

출애굽의 역사의 무대를 B.C. 15 C로 보느냐?  B.C. 13 C로 보느냐? 에 따라 견해가 달라질 수 있다.

 

성서 고고학이 더 발전되면, 명확하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여기서 성경을 근거로 추정하는 한가지 설을 소개해 본다.

 

열왕기 1권 6장 1절에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한 해가 출애굽 사건이 있은지 480년이 지나 솔로몬 즉위 제 4년이라 밝히고 있다.

솔로몬 즉위 제 4년을 거의 B.C.960 년으로 보고, 여기에 480년을 더 했을 경우에

출애굽 연대는 B.C. 1440년이 된다.

 

그리고 판관기 11장 26절을 보면, B.C.1100년경에 활동했던 판관 입다가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거한지 300년이 흘렀다고 말한 것을 종합하면, 출애굽 연대를 B.C.1445-1440년경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집트 제18왕조인 투트모세 3세와 그의 아들 아멘호텝 2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했다고 추정하는 설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요셉을 알지 못했던 새로운 파라오, 즉 이집트의 통치자가 일어나면서부터 이스라엘의 운명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점점 강해지는 이스라엘 백성의 번영 앞에 위협을 느끼는 새로운 파라오는 이제 탄압의 음모를 꾸미고, 이스라엘 부족의 운명은 노예의 자리로 전락하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의 회오리 속에 빠져들게 된다.

 

파라오는 사탄의 하수인으로 줄곧 이스라엘을 괴롭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하고자 하는 음모, 즉 갓 태어난 사내 아이를 다 나일강에 던져 죽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씨를 말리려는 음모가 시작된다.

이런식으로 하느님의 선민, 계약의 백성을 이 땅에서 끊어버리기 위한 사탄의 음모는 역사를 통해 계속 반복된다.

 

그렇게 해서 사탄이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목표는 메시아(구세주 예수님)인 것이다.

그 예수님이 구원자로 역사 안에 들어 오지도 못하고 들어오더라도 제거하기 위해 사탄은 이스라엘 백성을 탄압하고 사내 아이들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을 주는 장본인은 항상 사탄이며, 하느님은 아니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하느님께서 뜻이 있어 사탄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실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땅 고센에서 계속 축복과 번영을 누리고 살았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하느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 시온의 땅을 생각했겠는가?

아마 까맣게 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땅에서 고통을 받게 되니까 비로소 '아~우리 민족을 가나안 땅에서 다시 한번 놀라운 백성으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지'하며,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되고, 시온을 향한 꿈, 시온의 본향을 향한 생각을 다시 일깨우게 된다.

고통은 하느님의 백성을 단련시키는 하느님의 훈련이다.

 

탈출기 3장 7절에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나온다.

그들은 고통을 당하면서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느님과의 통교가 살아나게 되며, 하느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되고, 하느님을 의지하니까 하느님의 쓰임받는 도구가 된다.

끊임없는 현세적 번영과 복에는 언제나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지워버리며 자신이 하느님이 되는 세속화(극도의 인본주의)가 반드시 나타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받으면서도 멸절하지 아니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과정에 있어서 당신을 경외하는 산파들을 도구로 쓰시며 (탈출1, 20~21) 당신의 일을 진행해 가신다.

이집트 고센땅으로 내려간 70명의 야곱 가족을 200만명으로 키우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가나안을 향하게 하는 모세를 준비시킨다.

 

탈출기 1장을 정리해본다.

번영과 복이 올 때 그 자체를 너무 기뻐하지 말 것이며, 그 뒤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겸허하게 하느님의 축복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고통이 올 때 너무 낙심하지 말며, 그 배후의 하느님의 뜻을 살펴봐야 한다.

사탄이 핍박하면, 사탄에게 외쳐야 한다.

'너의 계교는 성공할 수 없는 음모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계교와 거짓의 사탄아 물러가라. 물러가서 예수님 십자가 발치에 가서 그분의 명을 따르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복음(마태10,34~11,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4)

 

마태오 복음 10장 34절에서 39절까지는 '제자들이 세상과 겪게 되는 갈등의 필연성 및 절대적 헌신'의 요청에 대해 다루고 있다.

 

원문에는 마태오 복음 10장 34절과 35절에는 과거 시제, 마태오 복음 10장 36절에서 38절까지는 현재 시제, 그리고 마태오 복음 10장 39절에는 미래 시제가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첫 단락은 복음으로 말미암은 피할 수 없는 세상과의 갈등 및 박해에 대해서, 둘째 단락은 제자로서 요구되는 절대적 헌신의 삶에 대해서, 세번째 단락은 자신의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함에 대해서 각각 다루고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점층법의 구조를 통해 마지막 단락의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수준의 헌신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제자로서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승되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외의 것들은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영원한 생명의 도(道)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자만이 실천할 수 있는 높은 신앙의 경지이다.

 

여기서 '평화'에 해당하는 '에이레네'(eirene; peace)는 세상과의 타협, 그리고 '칼'에 해당하는 '마카이라'(machaira; a sword)는 하나의 은유로서 세상의 모든 죄악과 불신앙에 대해서 복음을 들고 싸우는 적극적인 대처를 상징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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