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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독서] 압살롬아, 내 아들아!(2사무18,9-10.14ㄴㄷ.24-25ㄱㄴ.30ㅡ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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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4 조회수227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사무18,9-10.14ㄴㄷ.24-25ㄱㄴ.30ㅡ19,3)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전갈에 깊은 충격을 받고 목 놓아 운다.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다그 노새가 큰 향엽나무의 얽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10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요압에게 알려 주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

24 그때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파수꾼이 성벽을 거쳐 성문 위 망대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다.

25 파수꾼이 소리쳐 이를 임금에게 알리자임금은 그가 혼자라면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 하고 말하였다.

달려온 그에게 30 임금이 물러나 거기 서 있어라.” 하니그가 물러나 섰다.

31 그때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기쁜 소식이 있습니다주님께서 임금님께 맞서 일어난 자들의 손에서 오늘 임금님을 건져 주셨습니다.”

32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19,1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내 아들아내 아들 압살롬아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압살롬아내 아들아내 아들아!” 하였다.

2 “임금님께서 우시며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신다.”는 말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그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그날 임금이 아들을 두고 마음 아파 한다는 소식을 군사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쟁에 관한 기술은 단지 세 절(2사무18,6-8)만을 할애하고, 압살롬의 죽음과 그의 매장,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대화는 아홉절(2사무18,9-17)이나 할애하여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만큼 다윗의 슬픔 고뇌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다윗은 이미 12장에서 자신의 범죄로 인한 하느님의 일차적 심판 즉 밧 세바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이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13장에서부터 본장에 이르기까지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은 계속되었다.


즉 암논의 이복 누이 다말의 강간, 압살롬의 암논 살인과 반역사건으로 인하여 다윗은 끊임없이 괴로움을 당한 것이다. 

물론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12,10)는 심판의 예언에서 시사하듯이, 그것으로 하느님의 심판이 완전히 끝난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13-18장에 기록된 것과 같은 극단적인 살인, 반역, 강간과 같은 일들이 그의 목전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는 않는다.


물론 20장에서 세바의 발란 사건이 보도되지만, 이번 장으로 다윗 일생의 가장 치욕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순간이 막바지 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압살롬의 죽음으로 일련의 사건을 마무리하게 된 다윗은 과연 매를 다 맞은 아이처럼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일찌기 밧 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첫 아이가 죽었을 때, '일어나' 하느님을 경배했던 다윗은 (2사무12,20), 이번에도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한 압살롬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 들이고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겠는가?

이에 저자는 압살롬의 전사 소식을 들은 다윗의 아픔과 슬픔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다윗이 고통속에서 형편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19,1)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 하였다.


즉 다윗은 일련의 사건들을 마무리하고 전쟁에서는 승리하였으나, 그 이상의 고통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다윗이 지은 죄의 결과이다.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9ㄷ)


'로슈' (roshu)는 '머리카락' (머리털)로 번역되었는데, 문자적으로는 '그의 머리' (his head)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새총처럼 갈라진 가지에 압살롬의 머리가 끼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머리털로 보아 압살롬의 머리털이 향엽나무(상수리나무)의 무성한 가지에 걸린 것이라면, 그의 자랑이었던 것이 오히려 그에게 수치를 가져다 주고,  그의 최후를 재촉하는 촉매가 된 것이다.


"온 이스라엘에서 압살롬만큼 잘 생기고,그만큼 칭찬을 받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는 머리가 무거워지면 해마다 연말에 머리카락을 자르곤 하였는데,  그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서 그것을 달아 보면,  왕궁 저울로 이백 세켈이나 나갔다." (14,26)


'노새'로 번역된 '합페레드' (haphered)는 숫나귀와 암말을 이종교배함으로써 태어난 잡종 동물이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이종교배를 엄격히 금하고 있으므로(레위19,19), 이스라엘 내에 있는 노새는 이스라엘 주변 이방 나라로부터 수입해 온 것이다.(1열왕10,25)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왕족들이 노새를 타고 다녔다.(13,29 :1열왕1,33) 압살롬은 스스로 왕임을 칭하는 자로서, 여행할 때나 전쟁할 때는 몰론이고 항상 노새를 타고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압살롬의 교만을 보여주는 노새는, 한편으로는 압살롬의 비극적인 죽음을 더 부각시켜준다.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에서 "놓여지게 되다" 라는 사역형 수동태 동사 "나탄" (nathan)이 사용되어, 이 모든 일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는 한 병사의 발언은 그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다윗의 군대에 속해 있는 모든 군사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대화에서 나타난 다윗 군대의 입장은,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하라고 한 명령(2사무18,5)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나를 보아서 저 어린 압살롬을 너그럽게 다루어 주시오" (5)


적장의 목숨이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2사무17,2.3)  이 전투에서 군사들이 적장에게 손을 대어서는 안된다는 부담을 안고 전투에 임하는 것은 사실 승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군대가 승리하였다는 것은  전쟁의 승리 하느님에 의한 것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또한 동시에 이 모든 군대가 이러한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다윗이 얼마나 애타게 압살롬을 위했는지와 더불어 얼마나 간곡하게 그에 대한 선처를 명령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매달려 있다" 에 해당되는 '탈루이' (thalui)는 특히 교수형에 처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탈라' (thala : 창세40,19)의 수동태 분사이다.

이는 압살롬의 상태가 마치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처럼 보였음을 나타내며, 동시에 이 단어는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신명21,23)라는 말씀에서 표현된 단어로, 압살롬이 하느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사실을 한번 더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 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14)


'표창'(작은 창)으로 번역된 '쉐바팀' (shebatim)의 원형 '쉐베트' (shebeth)는 '나뭇가지', '막대기', 왕의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지팡이를 가리키는 '홀',사람을 때리는 '매' 등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쉐베트' 의 복수형 '쉐바팀' 은 작은 막대기 밑을 날카롭게 만들어서 사람을 해할 수 있도록 한, 무기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요합은 압살롬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 나무로 만든 창을 세 개씩이나 가지고, 아직 나무에 달려 있는 압살롬에게로 달려 갔던 것이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완전히 무시하고서, 위기에 처한 압살롬에게 압살롬의 심장을 향해,그가 가지고 간 작은 표창 3개 중 두개 이상을 던졌다. 이것은 그만큼 요압이 압살롬을 확실히 죽이기를 원했음을 보여준다.

'타카으' (thaqah)라는 '던지다' 의 의미를 가진 동사에 3인칭 복수 목적격 접미어가 붙어 있어서,'그는 그것들을 던졌다' 라는 뜻이다.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32ㄱ)


다윗은 전쟁에서의 승리의 소식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압살롬의 안부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이것은 다윗의 마음이 아들 압살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32ㄴ)


우회적인 표현이긴 했지만, 압살롬이 죽었다는 사실이 마침내 에티오피아 사람에 의해 다윗에게 전달된다.

그의 표현에는, 압살롬이 하느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범죄자란 사실이 분명하게 전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은 다윗에게 전쟁의 승리를 잠재울 만큼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19,1ㄱ)


본문은 사람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데, 마음이 심히 어지럽고 떨리며 번뇌에 가득 찬 상태를 나타낸다. 그리고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통곡은 죽은 자를 위한 애곡이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19,1ㄴ)


본 절에서 무려 세 번이나 쓰인 '압살롬'과 무려 다섯 번이나 쓰인 '내 아들'이란 표현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대변해 준다.


다윗이 슬퍼한 것은, 우선 반인륜적이고 패역무도한 반역을 행했다 하더라도, 압살롬은 자신의 아들이었기에, 그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로서 목 놓아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주어졌다는 사실로 인한 자책에서, 가슴을 찢으며 통곡했던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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