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그냥, 좋아서!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4-04-07 조회수2,380 추천수32 반대(0) 신고

4월 8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요한 13장 1-15절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그냥, 좋아서!>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야외로 나갔다가 눈요기를 제법 했습니다. 산들바람에도 온 몸을 흩날리며 떨어져 내리는 꽃잎들을 바라보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 세월 제가 만나고 헤어졌던 수많은 아이들 얼굴들이 꽃잎같이 화사한 얼굴, 어여쁜 얼굴로 하나 하나 다가왔습니다.

 

저는 살레시오 회원으로 운이 좋았던지 서품 후 언제나 아이들 틈에서 지냈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만났었고, 함께 부대끼며, 미워도 하고, 좋아도 하고,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거리기도 하고...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세월과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일입니다. 갈수록 가슴 뛰는 일, 흥미진진한 일, 특별한 일은 점점 줄어들고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서글퍼지지요. 좋은 소식, "이거다!" 하는 소식이 줄어드는 대신 부고 소식은 얼마나 자주 듣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제 나도 서서히 나이를 들어가는구나. 왜 이리 세월은 속절없이 빠르기만 한건가?" 하는 마음에 서운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이 먹어가면서 좋은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혈기왕성할 때는 아이들이 어찌 그리 밉던지? 싸우기도 엄청 많이 싸웠는데,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아이들이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밉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녀석들이 부모를 잘못 만나서, 시절을 잘못타고 난 이유로 거친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짠해보여서 측은한 마음만 앞섭니다. 그저 하나라도 못해줘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 명 한 명 개별적으로 만나지 못해 미안할 따름입니다.

 

한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왜 기분 나쁘게 쳐다봐요?" 하고 빽 소리를 지릅니다. "그냥, 좋아서!" 라고 대답하지요.

 

오늘 성목요일입니다. 성목요일은 저희 사제들에게 아주 각별한 날입니다. 오전에는 각 교구마다 사제들이 함께 모여 성유축성미사를 거행합니다. 주교님들께서는 근사한 점심도 한 끼 내십니다. 또 저녁 만찬 미사 때는 세족례 예식을 통해서 저희 사제들 삶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자각합니다.

 

세족례 예식은 우리에게 사제직은 다른 무엇에 앞서 봉사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교님은 사제들 앞에 무릎을 꿇을 것, 사제들은 신자들 앞에 허리를 굽힐 것, 저희 같은 살레시안들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아쉬움과 서운함을 접습니다. 그간 당신께서 가장 중요한 직무로 생각하셨던 제자교육을 마무리하십니다. 종강을 하시면서 당신의 가르침을 최종적으로 요약정리하셔서 제자들에게 제시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세족례인것입니다.

 

결국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 총 정리는 세족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죄 많고 나약하고 가엾은 인류를 위한 섬김과 봉사, 그것이 메시아로서 사명의 본질이었습니다.

 

오늘 성목요일 세상의 모든 사제들이, 또한 교회나 사회 지도자들이 자신의 직책이 오로지 백성들, 특히 가난한 백성들을 위한 섬김과 봉사, 헌신과 자기증여를 위한 직책임을 다시 한번 크게 자각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